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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만소리 Mar 25. 2020

메콩강에서 수영해보실래요?

라오스에 나와쓰 4화. 오지 마을에 낯선 손님이 찾아왔다


모기장이 있다고 해서 좋아하면 안 돼. 벌레가 많다는 걸 뜻하는 거니까.


 ‘끼익-’     


    나무 문이 열렸다. 단촐한 방 안에는 가구 없이 구멍 난 모기장과 침대만 덜렁 놓여 있었다. 맨 살로 눕고 싶지 않은 이불과 베개였다. 나도 모르게 한 숨이 세어 나왔다. 침낭이 있으니 침대는 어찌됐든 참아낼 수 있었다. 내게 중요한 건 화장실이었다. 마음을 다잡고 검지로 화장실 문을 조심스럽게 밀었다. 제발 없어라! 없어라!를 되뇌였지만 화장실 바닥엔 예상했던 그 친구가 있었다. 까맣고 큰 라오스 바퀴벌레가 불청객의 소식에 놀라 사사삭 부리나케 도망갔다. 분명 해가 중천에 뜬 시간이었지만 방 안에는 서늘한 긴장감이 맴돌고 있었다. 어둠이 찾아오면 온갖 벌레떼들이 새로운 손님을 보기 위해 몰려들 게 분명했다. 밤손님을 맞이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털이 쭈뼛 섰다. ‘하아, 여기서 잘 수 있을까.’ 


의미 없는 고민이었다. '여기서 잘 수 있을까'가 아니고 '여기서 밖에 못 잔다!' 였으니까. 쏩잼에서 유일한 숙소가 바로 여기였다. 게다가 이 방도 주인 아저씨에게 부탁을 해서 잘 수 있었다. 주인 아저씨는 방을 빌려주면서 신신당부했다. 단 하룻밤밖에 잘 수 없다고. 내일 미국에서 오는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방을 비워줘야 한다고. 




라오스에 나와쓰! 4화 글/키만소리
"오지 마을에 낯선 손님이 찾아왔다."



 그렇다. 쏩잼은 몇 년 전부터 미국 자원봉사단체가 영어와 학교를 지으러 오는 오지 마을이었다. 이따금씩 마을에 관광객이 가이드와 함께 아주 짧게 찾아왔다. 관광객을 받을 자본도 없는 이 마을 사람들은 베틀로 짜서 만든 천을 팔면서 근근히 생계를 유지했다. 덕분에 그 흔한 숙소도 식당도 없었다. 


눈에 보이는 이 길이 마을 전부였다.

 

 오늘 우리의 집이 되는 이 허름한 숙소도 자원봉사자들 때문에 세워진 곳이라며 숙소 주인이자 이 마을에서 가장 큰 슈퍼를 운영하는 ‘티쳐’가 말했다. 티쳐는 말 그대로 선생님이었다. 영어도 잘하고 눈치도 빨라서 선착장에서 방황하는 우리에게 말을 먼저 건 것도 그였다.     


쏩잼 마을은 오십 가구 조금 넘는 집들이 길 하나를 두고 나란히 붙어있었다. 나무로 지어진 이층 나무집부터, 대나무 잎으로 엮은 집, 좋은 집 뒤로 숨겨진 비가 오면 물이 샐 것 같은 판자촌까지. 슬프지만 오지 마을에도 빈부격차는 존재했다. 시간에 닳아버려 방 안이 휑하고 보이는 나무 벽과는 달리 잘 사는 사람들의 집은 벽돌로 틈새 없이 튼튼하게 지어져 있었다. 티쳐의 집은 깔끔한 벽돌집이자 부의 상징 슈퍼까지 겸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의 집에서 한 끼를 해결하기로 했다. 쏩잼의 제일가는 슈퍼집답게 없는 게 없었다. 자동차 배터리로 냉장고를 돌려 시원한 코카콜라까지 만드니 말 다했지 뭐. 하지만 그 부잣집 내부를 아무리 둘러 봐도 주방이 보이지 않는다.    


“티쳐, 요리는 어디서 해?”

“저기서 하지.”     


쏩잼 마을에서 가장 잘 사는 슈퍼집 부엌. 그땐 몰랐다. 이게 얼마나 좋은 부엌이었는지.


 그가 가리킨 곳은 타다만 나무 재가 모여 있었다. 응? 저기서 요리를 한다고? 티쳐는 웃으며 빠른 솜씨로 불씨를 만들더니 조선시대에서 볼 법한 이상한 도구를 손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불어온 바람이 작은 불씨를 커다란 요리용 불꽃으로 바꿨다. 프라이팬을 쇠 틀에 올리고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 충격적인 주방이 이 마을에서 최첨단 시설에 속했다. 우리는 훗날 입으로 바람을 불어 불씨를 피우고 돌 덩어리를 주워 요리를 하게 된다.


다행인 것은 라오스 밥은 찰기가 있는 쫀뜩쫀뜩한 찹쌀밥이라서 포만감이 금방 왔다.


 티쳐가 해준 요리는 모닝글로리 볶음과 계란 프라이가 전부였지만 아침부터 쫄쫄 굶었던 우리 넷에게 진수성찬이었다. 라오스 밥은 숟가락 위에서 날아다니는 다른 동남아 쌀과 다른 쫀쫀함이 있었다. 쌀보다 우리나라 찹쌀에 가까웠다. 찹쌀의 단맛이 찰기와 함께 입 안에서 미끄러졌다. 반찬이 부족해도 밥맛으로 배가 찼다. 허겁지겁 밥을 해치우는 우리를 신기하게 쳐다보던 티쳐는 물었다.     


“너네 이 마을에 얼마나 있을 거야?”

“모르겠어.”     


 이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오긴 왔는데 뭘 할지도 모르겠고, 숙소도 내일이면 비워줘야 했으니까. 쏩잼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전기도, 인터넷도, 가스도 심지어 관광객도! 


 그런 마을에 큰 배낭을 메고 갑자기 관광객 네 명이 나타났으니 고요했던 마을이 들뜨는 건 당연했다. 가장 먼저 소란을 감지한 것은 마을 아이들이었다. 크고 맑은 눈을 가진 아이들은 거리낌 없이 우리에게 다가왔고,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진 민과 옌은 단박에 아이들과 가까워졌다. 수줍음에 제대로 말도 못 하고 그저 방긋방긋 웃기만 하던 아이들은 우리의 손을 끌고 메콩강으로 향했다.    

아이들이 행복한 것은 순간에 충실하기 때문일지도 몰라.


“언니! 언니도 얼른 들어와요!”

“어?”     


 메콩강은 모두가 알다시피 짙은 진흙 색이었다. ‘머리에 진흙이 사이사이 끼며 어떡하지. 화장실에 바퀴벌레 있어서 샤워하기 싫은데. 옷도 엉망이 될 것 같은데...’ 갖가지 핑계를 대며 망설이는 동안 민과 옌은 이미 아이들과 함께 푹 젖었다. 선뜻 진흙탕에 빠져들 자신이 없었다. 그때 한 아이가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나를 잡으러 달려오는 아이들의 표정. 어떻게 안 들어갈 수가 있겠는가.
물속에 빠트리는 건 전 세계 다 똑같은 가 보다.

 

 뻔한 드라마의 설정. 예측 가능한 남녀 주인공의 행동들. 그것은 발전 없는 드라마 작가의 문제가 아니고 사람마음의 단순함 때문이었다. 작은 손 하나가, 나를 보며 웃어주는 그 아이의 순수한 미소가, 이방인에서 곁을 내주는 고마움이 나를 움직였다. 그래! 티 하나 더러워지면 뭐 어때. 여기까지 달려왔는데!     


  나는 그대로 아이의 손을 잡고 메콩강으로 뛰어들어갔다. 개구진 남자아이들은 우리에게 물장난을 치고는 강물 속으로 쏘옥 숨어 들어가 버렸다.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마냥 사라지더니 예상하지 못하는 곳에서 팍! 튀어나왔다. 어릴 적부터 메콩강 앞에서 살던 아이들은 수영 천재였다. 너무 놀란 우리가 박수를 치며 크게 웃자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물속으로 숨어들었다. 갑자기 물속 숨바꼭질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놀아본 적이 언제였더라.


  한 번은 물에 들어오지 않고 부끄러워하는 여자 아이의 손을 잡았다. 그때부터 눈치 보고 있던 여자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서로 나 좀 보라며 물속에서 재주넘기와 다이빙을 선보였다. 어느새 쏩잼 메콩강 운동회가 되어있었다.     


정신 차려보니까 여기저기서 난리가 났다!


  세계 여행을 하면서 천국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바다를 봤지만, 나는 라오스의 메콩강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그 찬란한 기억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아무런 적의도 보상도 계산도 없었다. 영화 속 슬로우 모션처럼 웃음소리 하나하나가 알알이 터져 마음속에 들어왔다. 신이 내린 천국의 섬, 모리셔스에 가도 나는 라오스 메콩강에서 웃었던 것처럼 순수하게 웃을 수 없을 것이다. 그건 내 힘이 아니고 아이들의 힘이었기 때문이다.     



형광색 축구복을 입고 있던 녀석이 '던'이다.

 


 쏩잼 아이들은 오지임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곧잘 알아들었다. 미국 자원봉사자들이 매년 영어를 가르친 덕분이었다. 녹초가 되어버린 우리에게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던’이 더듬더듬 영어로 말을 걸었다. 청년부의 대장처럼 보이는 던은 부끄러움을 타는 다른 아이들과 조금은 달랐다. 그때는 그 다름이 그런 다름인 줄 몰랐지만.


“너네 우리 집에서 지내지 않을래?”

던이 흔쾌히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아이들과 메콩강에서 뛰어놀면서 마음이 활짝 열린 우리들은 하룻밤이 아닌 더 많은 시간을 이곳에 쏟고 싶다고 생각하던 터였다.


“진짜 그래도 돼??”

“물론. 우리 집 티쳐네에서 엄청 가까워.”     


  쏩잼 아이들과 우리의 마음이 통했던 걸까. 던은 자신의 집으로 우리를 초대했고, 우리 넷은 들뜬 마음으로 망설임없이 “예쓰!”를 외쳤다. 내일 아침에 숙소 앞으로 데리러 오겠다며 던은 활짝 웃었다. 메콩강에서 정신없이 뛰어놀던 아이들 사이에 새로운 소란이 일었다. 라오스 말은 모르지만 대충 "쟤네 여기 더 있을거래? 와 대박!!" 이런 느낌이랄까. 


모든 게 갑작스럽게 시작되었다. 메콩강에서 수영도. 던네 집에서의 홈스테이도. 그렇게 쏩잼이라는 급류를 탄 우리의 라오스 여행이 '홈스테이'라는 새로운 경로로 들어섰다. (계속)


 


키만과 효밥. 2년간 부부 세계 여행 기록을 <여보야, 배낭 단디 메라> 웹툰으로 옮기다가 작가가 너무 게으른 탓에 영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아무래도 그림보다 글이 빠를 것 같아서 여행 하이라이트를 뽑아 연재하기로 했다. 그 첫 번째 여행 이야기는 라오스 메콩강 북쪽 오지 마을에서 일어난 <라오스에 나와쓰!>다.  



키만소리 (김한솔이)

2년간 남편과 세계 여행을 하다가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곳 출판 스튜디오 <쓰는 하루>를 만들었다.

여행자에서 이제는 작가와 글방 에디터, 출판사 대표를 맡고 있다.

제3회 브런치 출간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엄마야, 배낭 단디 메라」를 출간했다.

세계 여행하면서 받은 엄마의 메일을 엮어 「55년생 우리 엄마 현자씨」를 출간했다.

다수의 작품을 그리고 쓰며 활발히 연재 중이다.

인스타그램 @ki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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