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만소리 Apr 07. 2020

전셋집을 구하다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결심하다.

평수가 중요한 게 아니었어.


"집 구하러 왔는데요."


 집을 구하는 사람들이 썰물과 밀물처럼 들어왔다가 쭉 빠지길 반복했다. 코로나 19 때문에 집을 볼 수나 있을까 싶었는데 이 재난 상황 속에서도 우리처럼 집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 예산으로는 그런 집 못 구해요.'라는 답변을 담담히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어라? 부동산 아주머니는 찡긋 웃으며 '아유, 구할 수 있어요. 걱정마요."라며 수화기를 들었다. 그땐 그 말이 좋은 매물이 있다는 말인 줄 알았지.


 부동산 아주머니는 신혼부부라는 이유로 모든 집의 불편한 점을 긍정적인 자세로 되받아쳤다.


가령 숨이 턱 막히는 적은 평수 매물을 소개할 때는 '둘이 살기 딱 좋아.' 같은 논리라던지. '여기서 살다가 애기 생기면 청약받아서 나가는 코스지.' 같은 미래지향적 멘트를. 또 한낮에도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촘촘한 빌라에 들어설 때는 '요즘 맞벌이 부부들은 낮에 집에 있을 시간이 없어서 막상 살면 불편한 거 잘 몰라.'라고 했다. 차마 이 집을 못 받아치겠지 싶은 집에선 '이러니 저러니 해도 직장 다니는 사람들은 역이랑 가까운데 최고지. 더블 역세권!'라며 어필했다. 총알이 넉넉하지 않으니 대놓고 마음껏 실망하기도 뭐했다. 모든 세입자들이 그렇듯 예산은 언제나 모자라고 따질 건 많았다. 역세권, 남향, 평수, 외관까지. 따지려고 마음먹으면 한도 끝도 없는 게 집이라는 존재였다.


통화목록에 공인중개사 전화번호가 쌓일 무렵, 반가운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같은 금액에 넓은 쓰리룸이 하나 나왔어요!"


  누군가 이런 말을 남겼다. 남자와 부동산은 많이 만날 수록 좋다고! 남자는 잘 모르겠지만 부동산은 정말 그랬다. 같은 예산에 더 좋은 컨디션의 집들이 나오기 시작했으니까. '저층이긴 해도 아파트야. 관리도 되고 택배도 받을 수 있고 음식물 쓰레기도 언제든 버려도 돼.' 부동산 아주머니의 경쾌한 설명을 들으며 한 층, 한 층 가까워졌다. 매물을 보지 않아도 벌써부터 마음이 여기가 우리 집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저희가 살림이 많아서...."

 멋쩍게 웃으며 문을 열어 준 세입자는 서둘러 싱크대 위에 있는 잡동사니를 치웠다. 세입자의 분주한 손 뒤로 부동산 업자의 맞장구가 따라왔다. "아유. 애 키우고 살면 다 살림이 많지 뭐." 우리는 예의상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큰 평수의 귀한 전세 매물이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웠으니까. 지금까지 보던 집과 달리 평수가 꽤 컸다. 정남향으로 찬란한 햇살이 거실 끝까지 들어와 있었고, 앞 뒤로 베란다도 있었다. 쓰리룸 중 하나를 터서 거실로 만들어 둔 집이라 시야가 시원시원했다. 지금까지 봤던 집 중 가장 마음에 쏙 드는 구조였다.


 그런데 살림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싱크대를 가득 채운 잡동사니, 밥 먹을 자리가 없는 식탁 위, 주방 한 벽을 차지하고 있는 가전제품들, 옷들로 미어터지는 서랍장들, 베란다 창고에 꾸역꾸역 채워져 있는 물건들. 순간 전자레인지 속에서 돌고 있는 팝콘이 된 기분이었다. 어떤 한 기점으로 집 안의 모든 물건들이 파파파팍! 튀겨져서 터져버릴 것 같았다. 두 발과 두 눈을 갈 곳을 잃었다.



  숨이 턱턱 막혔다. 이렇게 많은 물건들을 제대로 쓸 수나 있을까. 옷장을 가득 채운 옷과 신발들을 네 번의 계절이 지나가는 동안 평등하게 세상 구경을 할 수 있을까. 고작 2명 사는 집에 냉장고는 왜 세대일까. 창고 문이 닫히지도 않을 만큼 쌓여있는데 저 속에 뭐가 있는지 다 기억은 할까. 그동안 집을 보러 다닐 때마다 알 수 없는 체기를 느꼈다. 단지 평수가 적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체기의 원인은 취향 없이 소비로만 가득 채워놓은 집 때문이었다. 소비가 이 시대의 유일한 기쁨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많은 물건들을 설명할 수가 없을 테니까.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면 앞다투어 홈쇼핑에서 소비를 조장한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명분을 지어내 구매를 자극해댄다. 집순이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 어머! 아직도 없으세요? 유용템! 필수템! 같은 현혹들. 서른 곳이 넘는 집을 돌면서 에어 프라이기가 없는 집은 고작 다섯 집뿐이었다. 올해는 에어 프라이기였지만, 내년에는 또 다른 가전제품이 식탁 위에 올라온다고 생각하니 목구멍이 죄여 왔다.




 집을 채우는 건 물건이 아니라 주인의 인생철학이다.

 허나 나는 서른 곳이 넘는 집에서 어떠한 철학도 보지 못했다. 그저 유행과 소비를 쫓는 심리만 잔뜩 봤을 뿐. 넓은 아파트 청약에 당첨된다고 해도 목적 없이 사는 사람은 또 그렇게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나는 그게 내가 될까 봐 몹시 두렵다. 그래서 결심했다. 미니멀 리스트가 되기로. 최소한의 물건으로 살아가는 미니멀 리스트가 아닌, 소담한 기쁨을 줄 수 있는 취향이 확고해 여타의 물건이 필요치 않는 미니멀 리스트를 목표로 잡았다.



미니멀리스트로 살기 위하여


 우리의 전셋집 요구 사항부터 '미니멀리스트'의 시각으로 바꿔야 했다. 역세권, 남향, 깨끗한 내부, 저렴한 시세처럼 누구나 원하는 그런 어정쩡한 포지션 말고 진짜 우리 집을 위한 리스트 말이다.


 '미니멀리스트'의 첫 번째 시작은 나의 일상을 녹여낸 주거공간에 대한 그림이었다. 아침에 눈을 뜰 때 어떤 풍경이 펼쳐지면 기분이 좋을까. 퇴근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문을 여는 순간 어떤 그림이 그려지는가. 주말의 휴일은 어떻게 보낼 것 인가. 사랑하는 이와 함께 기억을 쌓고 싶은 집은 어떤 모양인가. 주택, 빌라, 아파트 같은 주거 분류가 아닌 나의 일상과 공간을 결합해서 생각했다.


두 번째 시작은 '나를 기쁘게 하는 것'과 '나를 슬프게 하는' 리스트였다.


집에서 하고 싶은 세 가지를 정했다.

맛있는 끼니 만들기, 해를 받으며 아침 요가, 퇴근 후 포근한 이부자리 취침.


우리를 기쁘게 하는 세 가지는 이랬다.

빨래가 보송보송 잘 마르는 남향의 베란다, 화장지를 적시지 않는 샤워 구조, 설거지가 용이한 넓은 싱크볼.


포기할 수 있는 세 가지도 정해보았다.

큰 안방, 역세권, 옷으로 꽉 찬 드레스 룸.


절대 타협할 수 없는 것들도 골라보았다.

우리 부부가 운영하는 점을 자전거로 출퇴근할 , 예산, 싱크대.


세 번째 시작은 평수와 상관없는 기쁨의 집중도 높은 물건 고르기였다.

"이 물건에는 이런 기능이 있대!"라고 구입하는 것보다 "여기서 이런 부분이 있으면 하루가 조금 더 쾌적할 것 같아."의 관점으로 물건을 보기로 했다. 쓰지 않는 기능들로 얼룩진 물건이 아닌 볼 때마다 웃음이 나고, 기특한 기분이 드는 것들. 예를 들면, 칼 6종 세트가 아닌 날이 제대로 선 손에 착 잡히는 한 자루의 주방 칼. 두 식구에 비해 덩치와 무게와 공간을 차지하는 700리터 냉장고가 아닌 신선 식품 위주와 먹을 만큼의 음식물을 보관하고 처리할 수 있는 일문형 냉장고. 퇴근 후 디지털 디톡스 라이프에 집중하고 싶어 인터넷과 텔레비전을 과감히 삭제했다. 대신 책 읽기 편안한 소파와 조명을 두기로 했다.



  물건으로 가득 찬 넓은 쓰리룸을 포기하고 투룸을 개조한 1.5룸 아파트를 선택했다. 평수도 훨씬 적고 방 개수도 줄어들었지만 우리 라이프 스타일에 더 어울렸다. 들일 물건이 없으니 부동산 아주머니 말처럼 '둘이 살기 딱 좋았다.' 작은 방을 오직 숙면을 위한 안방으로 만들기로 했고, 안방을 튼 거실에는 퇴근 후 책을 읽을 수 있는 소파와 작은 테이블만 두고 빈 공간에서는 아침 요가를 하기로 했다. 마침 계약한 집에 빌트인 옷장과 신발장이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게다가 서점으로 출근할 때마다 벚꽃과 내천 사이의 공원 길을 달려 나가는 것도 참 마음에 들었다.


 배낭 하나 메고 2년간 여행하며 살았듯, 그렇게 다시 가볍게 살아보기로 했다. 어느 누가 와도 이 집에는 어떤 사람들이 사는구나를 한눈에 알 수 있게 그렇게 취향의 향기를 짙게 뱉으며 살아보려 한다. 부디 홈쇼핑의 유혹과 기능성 물건들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살아낼 수 있기를.




키만소리 (김한솔이)

2년간 남편과 세계 여행을 하다가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곳 출판 스튜디오 <쓰는 하루>를 만들었다.

여행자에서 이제는 작가와 글방 에디터, 출판사 대표를 맡고 있다.

제3회 브런치 출간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엄마야, 배낭 단디 메라」를 출간했다.

세계 여행하면서 받은 엄마의 메일을 엮어 「55년생 우리 엄마 현자씨」를 출간했다.

다수의 작품을 그리고 쓰며 활발히 연재 중이다.

인스타그램 @kim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