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의 3월
평일 저녁, 전화벨이 울렸다. 분명, 평소처럼 가게가 끝난 시간이었는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혹시 무슨 일이 있으신 건가? 짧게나마 든 생각이 잦아들 무렵, 수화기너머로 아빠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퇴근을 했냐는 짧은 한 마디였지만, 한층 낮은 음과, 비음이 섞인 듯한 목소리에 가슴이 살짝 뛰기 시작했다. 엄마가 검강검진 결과가 좋지 않다는 소식. 내일 당장 큰 병원에 가야한다는 상황이었다. 일단은 수화기너머로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에,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 순간엔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당장은 의지하고 싶은 사람이 필요한게 느껴졌다. 언제나 강해보였던 두 분의 모습이 약해보이는 순간이었다. 일단은 바로 다음날 함께 병원으로 올라가기로 결정했다.
이른 아침부터 우리 가족 셋은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애써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했지만 누가 봐도 셋 다 잠을 설친 상태였다. 이미 전날부터 건강검진 결과를 듣고, 주변 지인들을 통해 병원 진료예약을 급히 수소문했던 둘은 더욱더 기력이 없어 보였다. 검진결과를 들고 서울을 향하는 길, 두 시간여의 막히는 출근길을 뚫어가며 병원을 향해 달려갔다. 그렇다고 나도 슬퍼하면 안되지, 아들이니까. 절대 이순간 적막이 있어선 안되. 애써 분위기를 바꾸고 싶은 마음에 시덥지 않은 이야기들로 순간들을 메웠다. 같은 회사에 들어온 대학교 동기이야기부터, 전세 사기 이야기까지. 서로 연관되지 않은 주제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그러면서도 옛날에 가족들간 추억들을 한번씩 더 되새기며. 차를 타고 가는 그 순간만이라도 잠시동안만이라도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예상되는 검진 결과를 지레짐작해보는 것을 막고 싶었다. 가끔씩 터져나오는 웃음소리가 오히려 내 마음을 위로했다.
도착한 병원은 평일 아침부터 인파로 북적였다. 사람도 많고, 차도 많았기에 병원에 도착한 그 순간만큼은 주차할 곳을 찾는데 집중했다. 주차를 끝내고 나니 다음 미션들이 계속 도착했다. 진료 예약 시 발급된 환자번호로 출입증을 만드는 것부터, 진료를 접수하기위해 필요한 서류들을 접수하는 것까지. 사람도 많고, 복잡한 공간 속에 패닉상태의 두 분이 혼자 감내해야했을 과정들을 생각하면 아찔했다. “처음 오신 분”이라는 글이 크게 써져 있는 안내 문구 아래로 수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다들 대기표를 뽑고, 자신의 순서를 대기하고 있었다. 접수하는 곳 앞에는 건강검진을 한 병원으로부터 결과 내역을 받은 CD를 병원 시스템에 입력하는 기계가 있었고, 진료 접수를 마친 우리가족은 기계앞으로 향했다. X-ray 부터 CT 검사결과까지 방대한 양의 자료들을 병원 시스템에 업로드 해야했기에, 약 5분여간 대기를 해야 했다. 업로드 버튼을 누른 후 대기하는 사이, 옆으로 노부부 두 분이 기계로 다가왔다. 역시나 그들은 도움이 필요했다. 아무리 간소화해 큰 글자로 써놓은 화면도, 힘든 몸과 마음을 끌고 온 두사람에게 충분한 설명을 해주진 못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라는 물음과 함께 가져오신 CD를 시스템에 입력하는 것을 도와드렸다. 한편의 마음에선 여기에서 쌓는 덕과 평상시에 쌓아온 덕들이 제발 우리 가족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오기를 간절히 바랬다.
병원의 시스템은 신속했다. 대학병원에서는 앉아서 기다리는 시간이 두세시간이 넘는다는 말은 이제는 아니였다. 진료 접수까지 해야 할 미션들을 하나 둘씩 하다 보면 어느새 진료시간에 가까워지는 시스템이었고, 대기하는 시간 동안 10분이상을 앉아있을 수 없을 정도였다. 바쁘게 움직여야하는 시간 덕에 잠시나마 걱정은 잊혀졌다. 접수를 마치자, 친척 누나가 병원에 온다는 전화를 받았다. 우린 공원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며 기다리기로 했다. 엄마와 난 벤치에 앉아 진료실의 위치와 예약시간을 한번 더 확인했다. 자리를 잠시 비웠던 아빠는 밥먹을 곳을 찾았다며 벤치로 돌아왔다. 아빠의 한 손엔 돋보기가 들려 있었다. 병원 앞 노점에서 20년간 돋보기를 파는 사람으로부터 가볍고 좋은 물건을 사왔다고 했다. 귀여운 아빠. 아빠덕에 한번 더 웃을 수 있었어. 혹시나 병원에서 복잡한 서류들을 건네준다면 아빠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서성이던 우리는 누나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병원 입구 쪽으로 향했다. 누나는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작은엄마를 소리치며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아뿔싸. 순간적으로 꾹꾹 눌러왔던 마음이 풀렸다. 부모님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누나를 본 순간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확 들었는지 감정이 요동쳤다. 목까지 차오르는 울음을 서둘러 삼키고 반갑게 누나를 맞이했다. 갑자기 넷이 된 우리는 병원 내 한식당으로 향했다. 평소라면 실컷 고민하다가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골랐을 텐데, 입맛이 전혀 없었다. 대충 아빠를 따라 초당순두부를 시켰다. 양념이 되지않은 순두부가 따뜻한 뚝배기에 담겨져 나왔다. 원래부터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는 맹맛의 순두부였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자극적인 음식도 맛이 안느껴 졌을 것 같았따. 식당에 있는 모두가 다들 비슷할까? 다들 점심시간이니 그냥 삼키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입맛이 없는 게 느껴질까 시간이 지남에도 비워지지 않는 공기의 뚜껑을 서둘러 닫고, 물을 연신 마셨다. 결국 누나도, 아빠도 모두 순두부를 남긴 채 식당을 나왔다. 진료를 예약한 시간이 다가오자 서둘러 진료실이 있는 건물로 걸어갔다.
진료실은 보호자 한 명과 환자, 두 명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한 명의 환자를 걱정하는 가족이 얼마나 많으랴. 한편으로 네 명의 가족을 들여보내주지 않는 병원에 아쉬운 마음도 잠시 들었으나,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될 수도 있는 진료실이 될 수도 있는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진료시간이 다가워졌고, 엄마의 이름이 호명됬다. 진료실이 아닌 상담실로 먼저 향해 지금까지의 엄마의 진료 기록들을 천천히 살폈다. 다행히 이름을 호명한 간호사 선생님도, 상담을 진행한 선생님도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보았던 주인공들처럼 따뜻한 목소리로 안내를 도와주셨다. 그 말 한마디에서 느껴지는 마음들이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 충분히 놀라고 걱정되는 마음들을 이해하고 있다는 표현과 혹시나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는 앞으로의 진료 과정들을 일부러 천천히 또박또박 안내하는 말의 속도 속에서 그 마음들이 느껴졌다. 약 5분여간의 설명 후 곧이어 진료실에 들어갔다.
진료실을 들어가자 사전에 받은 X-ray사진과 CT 자료를 보고 있는 의사선생님을 마주했다. 2주간 항생제를 먹어보며 관찰을 하고, 그 후에 조직검사를 해 정확하게 확인을 하자는 답변을 받았다. 그래도 드라마 속에서나 보던 암울한 상황이 펼쳐지지 않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제발 별일 아니길. 저 녀석들이 2주후에는 싹 없어져 있기를 바랬다. 1분여 밖에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조금은 긍정적인 답변에 큰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진료가 마친 후에도 바삐 몸을 움직여야 했다. 진료실에서 나와 간호사 분과 스케쥴을 잡고, 상담실로 다시한번 들어갔다. 조직검사를 하는 방법과, 2주간 항생제를 먹을 때 주의해야하는 점들에 대해 충분히 물어볼 수 있었다. 진료비를 수납한 후 서둘러 약국으로 향하며, 마음 졸이며 기다리고 있었을 아빠와 누나에게 진료 내용들을 천천히 설명했다.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도와준 지인과 저녁식사를 하기 전, 잠시 누나 집에 있다 가기로 했다. 죽과 간단한 빵, 과일들을 사들고 올라갔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조카가 웃으며 반갑게 가족들을 반겨줬다. 귀엽고 밝은 조카 덕에 다들 웃음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틀간 마음졸이며 제대로 식사를 못했던 가족들에게 입맛이 잠시 돌아왔다. 포장된 죽의 반절밖에 되지 않는 양이 었지만, 엄마도 오랜만에 제대로된 식사를 하고 있음에 안심이 되었다. 나도 그제서야 배고픔이 느껴졌고, 샌드위치를 하나 해치웠다. 누난 참외를 깎아 엄마와 아빠에게 건넸다. 누나덕에 아빠도 엄마도 나도 충분히 위로받고 있음이 느껴졌다. 엄마와 아빠는 사랑하는 딸 덕분에 그래도 좋은 결과를 들은 것 같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따뜻한 공간을 내어준 누나에게 고마움을 연신 표현하며 인사를 하고 문을 나섰다. 사랑하는 우리가족. 오늘 하루도 정말 고생 많았다. 정말로 길게 느껴졌을 하루를 잘 헤쳐나갔다. 앞으로도 우린 잘 해낼 수 있을거야. 힘들 때마다 내가 엄마아빠한테 의지했던 것처럼 나도 든든히 힘이 되어 줄게. 엄마도 아빠도, 나도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