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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의 서른 May 08. 2023

[가족] 화목한 가정의 1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나…

현재의 3월

  공교롭게도 내 글이 브런치에 5월 8일 어버이날에 업로드 되게 되었다. 예전에는 이런 어버이날 기념일도 꼬박꼬박 챙기고 손편지도 쓰고는 했었는데 요즘에서는 괜히 낯간지럽다. 그래서 다들 용돈으로 해결을 보려는 것일까? ‘어차피 엄마 아빠가 나보다 더 잘 사는데!(?)’ ‘내가 잘 살면 그게 효도지!’라는 다소 불경한 마음가짐으로 불효를 저지르는 중이다. 효도란 무엇일까. SNS를 보다 보면 부모님께 너무 잘 하는 자식들이 있어 괜히 주눅이 들다가도, 크게 부모님 속 썩이지 않는 게 어디냐며 자기 위안 중이다.


 예전에는 "가족"이라고 하면 괜히 마음이 울컥하는 게 있었다. 감수성이 폭발하던 학생시기, 수련회에서 흔한 레파토리인 부모님 감성팔이를 하면 여지없이 눈물이 차오르던 나다. 그런데 아무래도 어느새 사회에 찌든 탓인지, 나이 탓인지 요즘은 많이 시니컬해지고 무덤덤해졌다. 가족이라는 주제를 받아들고도 다른 주제와 달리 뭘 써야할지 막막해진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쑥불쑥 부모님은 내 눈물버튼이다. 특히 결혼식을 다니다보면 내 눈물 포인트가 두 군데 있는데, 첫 번째는 아버지와 딸이 함께 행진할 때, 그리고 두 번째는 신부가 부모님께 인사할 때다. 눈물 타율 100%라 그 때마다 나도 모르는 내 모습이 낯설어지기도 한다. 왜 우냐고 묻겠지만 나도 묻고싶다. “대체 왜 우니?” 이상한 비약일지 모르겠는데 이런 이유로 딱히 나는 결혼식을 하고 싶지 않다. 통제할 수 없는 내 감정이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게 싫달까. 울고 있는 걔는 제가 아니란 말이에요! 이중인격도 아니고 원..


  가족이란 신기하다. 어쨌든 나란 존재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태어나자마자 관계를 형성하게 된 것이니 말이다. 가끔 가족 모임에 가면 조부모님에서부터 시작해 이렇게 많은 가정이 탄생했다는 게 너무 신기할 따름이다. 나도 그 중의 한 일원인데 어쩐지 관찰자시점에서 보게 된다. 우리 가족도 오빠가 세 명의 자식을 낳았으니 오빠네만 다섯 식구, 총 8명이 되겠다. 우리 네 식구가 어느덧 8명이 되어버렸네. 불어나는 이 가족 구성원들이 감개무량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만 홀로인 듯 해 가족 안에서도 외로워져 버렸다. 그렇다고 결혼을 하고 싶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평범한 가족이다. 이렇게 써놓고는 평범함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꽤나 고민했었다. 사전적 정의만을 보면 평범함이란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다’라고 하고, 보통이란 ‘특별하지 아니하고 흔히 볼 수 있음. 또는 뛰어나지도 열등하지도 아니한 중간 정도’라고 한다. 과연 나는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자랐으니 평범하게 자랐다고나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내 기준 적당히 화목하다. 화목의 기준은 또 뭘까하고 찾아보는데 ‘서로 뜻이 맞고 정다움’이라고 한다. 사실 뜻은.. 글쎄.. 잘 안 맞는다. 하지만 나름 정답다.


  내가 우리 가족이 평범한 게 맞나?라고 의문을 가지게 된 건 우리 가족이 꽤 일찍부터 뿔뿔히 흩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밖에 없는 오빠랑은 3살 차이이지만 4학년 차이가 나 초등학교를 제외하고는 같은 교과과정을 밟은 적도 없고 그 마저도 오빠는 고등학생 때부터 기숙사에 살았기 때문에 중학생 이후부터는 얼굴을 잘 본 적도 없다.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에 산 건 나도 마찬가지인지라 네 가족이 함께 집에 있었던 적은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적까지랄까. 아빠도 타지에 발령받은 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집에서의 소소한 기억들은 잘 없는 것 같다. 맞벌이 가정의 평범한 가정환경일 수도 있지만, 빈 집에서 혼자 텔레비전을 보거나 컴퓨터를 하며 놀았던 기억이랄지, 엄마가 밥 챙겨 먹으라며 쪽지를 놓고 간 기억들이 많이 난다. 그래서 오히려 가족들보다 친구들과의 추억들이 더 많은 것 같고, 연락을 자주 하거나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편도 아니어서 가족들과 낯가릴 때도 있다. 그래도 가족이란 신기한 게 큰 일이 있으면 제일 먼저 연락을 하게 되고, 제일 많이 의지를 하게 된다는 점이다. 떨어져있어도 존재만으로도 의지가 된다는 것이 가족의 큰 의미가 아닐까 싶다. 가족이 남보다도 못한 경우도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생판 남보다는 아무래도 더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들 아닐까.


  다 각자 가정의 사정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의 어떤 점이 평범하고 어떤 점이 특이한 부분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또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족의 특이점은 우리 아빠는 오형제의 셋째임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다는 것이다. 나의 대부분의 유년시절을 할머니와 함께 했고, 할머니를 꽤 따랐다. 얼마나 따랐는지, 할머니 없이 가족 여행을 갔던가. 한 사진에는 빈자리에 그 어린 아이의 글씨로 ‘할머니’라고 싸인펜으로 적어놓기까지 했다. 일을 했던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신 분이다. 그래서 대학생 때 유럽여행을 하면서 할머니께 엽서를 부치기도 하고, 카카오톡을 하지 못하는 할머니를 위해 가족보다도 오히려 할머니와 먼저 통화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세 번째 포인트. 내가 대학생이 되자마자 부모님은 은퇴를 결정하시더니 제주로 귀농하셨다는 것이다. 이제 너희들 다 키웠다~ 이건데, 지금 생각해보면 파이어족까지는 아니더라도 정말 빠른 은퇴다. 당시에는 나도 사회경험이 없어 잘 몰랐고, 부모님 인생에 대하여 이래라저래라 할 처지는 아니었지만 50대 중반에 나란히 은퇴라니. 그로부터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시점에 와서야 부모님 친구들은 아직도 일을 하거나 이제 은퇴를 하기 시작하시거나 하니 정말 이른 은퇴였다. 이른 은퇴도 이른 은퇴인데 제주로의 귀농도 꽤나 파격적이었다. 귀농이야 은퇴 이후의 간간히 있는 현상이라고는 하나, 제주로 귀농해도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다반사라던데 부모님은 벌써 8년째 제주 살이 중이시다. 그리고 두 분의 만족도는 꽤 높다. 주변에서 부모님 뭐하시냐라는 질문을 들을 때 제주에서 그냥 놀고계신다고 하면 다들 놀라곤 하니 과연 내가 평범한 집안에서 자라온 게 맞나 라는 의구심이 들고는 한다.(사실 가장 가까이 지인의 부모님은 베트남으로 이사하셨으니 지인의 가족에 비하면 우리 가족은 평범한 편일수도)


  본가가 제주도라고 하면 으레 따라오는 말이 “집에 갈 때마다 여행가는 것 같아서 좋겠다!”이다. 사실 반대다. 한국인에게 제주도라는 여행지가 갖는 의미가 있는데, 이제는 제주도에 갈 때마다 여행을 간다기보다는 집에 가는 느낌이라 좋은 여행지를 빼앗긴 느낌이다. 게다가 우리 집은 제주공항에서도 1시간은 떨어져 있어서, 최소 편도 4시간은 잡아야 집에 도착할 수 있는지라 가기 전부터 지치는 느낌이다. 가격도 비싸고, 한 번 갈 때 길게 일정을 잡아야 하므로 자주 가지도 못한다. 그래도 좋은 점을 찾아보자면, 비싼 숙소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특히 2020년도에 코로나 기간에 해외여행 대신 강제로 제주도에 있으면서 시간을 보냈던 약 4개월의 제주살이 기간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평생 캥거루족으로 살고싶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우리 부모님은 무척이나 보수적이신데 또 이렇게 제주로 훌쩍 떠나버린 부분과 같은 경우에 있어서는 꽤 급진적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여행을 좋아하게 된 것도 이런 부모님의 영향이 크다. 부모님이 여행을 좋아하셔서 고등학교 2학년 때는 가족과 함께 동유럽을 패키지로 한 일주일가량 다녀온 기억이 난다. 그 이전에도 동남아를 다녀온 것 같은데 기억은 잘 안 난다. 우리 가족이 ‘나름’ 화목하다는 점이 여기서 보이는 게 대학생이 되어서도 오빠의 리드로 같이 태국여행을 가기도 했고, 오빠와는 단둘이 인도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이 때 내가 오빠한테 해외여행 하는 법을 배웠다. 다소 무계획이긴 하나 좀 더 자유롭게 여행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여행 경험이 쌓이고 한 번은 내가 리드해서 엄마 아빠와 호주와 뉴질랜드 여행을 꽤 장기로 떠나기도 했는데 다시는 부모님과 함께 자유여행을 떠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아빠랑은! 이 때 왜 가족들이랑은 자유여행을 가면 안 되는지 깨닫게 되었다. 저는 가이드가 아니란 말이에요!


  다른 자식들은 어떨지 모르겠다. 존경받아야 마땅한 부모님이지만, 머리가 큰 이후로는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하늘같은 부모님이라기보다는 그냥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동반자로서의 느낌이 강하다. 부모님과는 워낙 살아온 경험도 다르고 가치관이 달라서 깍듯이 순종하는 착한 자식이라기보다는 나도 나름대로 인생을 살만큼 살았다고(?) 나만의 논리로 대드는 반항아적인 면모가 자주 등장한다. 특히 자기주장이 강한 아빠와 자주 부딪히고는 하는데, 그 사이에서 엄마는 꽤나 난감해한다. 그래도 존경스럽고 본받고 싶은 점은 두 분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이다. 두 분의 이러한 점이 태생적인 것인지, 태생적인 것이라면 왜 나는 게으른 것인지 의문이다. 잠도 많고, 게으르며, 귀차니즘 가득한 내가 어떻게 두 분 사이에서 태어났을까. 나도 나름대로 친구들은 부지런하다고 하는 편인데, 부지런함의 끝판왕인 우리 부모님한테서는 한심스러운 딸일 뿐이다.  


  우리 가족의 최근 공통 관심사는 부모님에게는 손자, 손녀들이고, 나에게는 조카다. 오빠가 결혼을 해서 무려 세 자녀를 낳았다. 카톡방에 조카들 사진이나 영상이 올라오면 부모님은 그걸 하루종일 돌려 보신다. 오빠는 그 어렵다는 사회의 평범함을 해내며 취업, 결혼, 그리고 육아까지 착착 클리어 중이다. 사회 모범생인 오빠 덕분에 나는 살짝 엇나가며 내가 살고싶은대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 중이다.


가족이란 뭘까, 부모란 뭘까, 자식이란 무엇이고 또 형제란 무엇일까. 인생이 그러하듯 이 도한 정해진 답은 없는 듯하다. 누가 답을 정할 수 있을까? 아무튼 평범한 듯 특이한 가정에서 크게 모나지 않은 지금의 내 모습으로 자랄 수 있었음에 나는 감사할 따름이다. 가족의 연은 내가 내 가족을 새로 꾸리는 것 이외에는 이미 정해진 것이고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겠다. 그게 무엇이든.


마침 이번 달, 제주의 이른 봄을 즐기러 본가에 다녀왔다. 제주들불축제를 즐기러 갔으나, 산불로 인해 들불없는 들불축제가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이 핑곗김에 1년에 몇 번 없는 부모님과의 시간을 보내고 왔다. 시간이 너무도 빠르게 흘러가는 듯해 가끔은 덜컥 겁이 나지만, 그럴 시간에 현재의 시간을 소중히 하기로. 3월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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