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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의 서른 May 01. 2023

[가족] 늦게 피는 꽃

3월의 지인

  올해는 유난히 꽃들이 빨리 만개했다. 목련과 벚꽃 몽우리가 함께 터졌다. 출퇴근길이 새삼 밝아지고, 기분이 몽글몽글해지는 시즌이었다. 싹을 틔우고 꽃잎을 피워내듯 내 인생에도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었다. 꽃이 피는 계절처럼 자연의 변화가 눈에 보이면 빛의 불공정을 마주한다. 말이 너무 어려웠는데, 쉽게 말하자면 모두에게 찾아오는 봄 같지만, 해가 자주 비치는 양지의 꽃이 훨씬 먼저, 활짝 피기 마련이다. 그에 비해 음지에 있는 나무의 꽃은 나중 나중에나 작게 핀다. 그것은 그 꽃을 마주하는 사무실에도 똑같았다. 앞에 운동장이 있고 학교의 입구 전면에 있는 본관 창으로는 화려한 꽃들이 피었다. 내가 일하는 수업을 듣는 건물은 본관 뒤에 자리해 원래도 해가 잘 들지 않는데, 창 밖으로 보이는 꽃들은 아주 더디고 작게 피었다. 굳이 발견하지 않아도 될 것을 발견해버렸다. 우스운 것은 나는 그닥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이마저 보이지 않는 창 없는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제대로 된 꽃구경이나 갈 수 있을까 싶도록 주변에 사람이 유독 없다고 느껴졌다. 아무튼 봄은 왔다. 


  새로운 계절에 적응이라도 하듯 요 며칠은 크게 앓았다. 자취생에게 가장 서러운 순간이 몰아서 왔다. 증상은 역시 연이은 과로로 인한 컨디션 난조로 시작되었다. 봄학기와 가을학기에 한 번씩 있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사경회(일종의 수련회)와 그에 앞서 만원하고도 0이 세 개는 더 붙는 큰 예산이 드는 기금모금 행사를 치뤘다. 매일 밤을 새며 아이디어를 짜고 일을 쳐내도 할 일이 쌓였다. 방학은 야근의 연속으로 지나갔다. 3월엔 좀 쉬겠지 했지만 그게 뭐 내 맘 같았겠나. 새로운 학기에 새로운 일거리가 왔다. 학교 리모델링에 앞서 대대적인 홍보용 영상이 많이 필요했다. 열심히 찍고, 열심히 편집하고, 열심히 수정을 반복했다. 그 와중에 자취방을 옮겨야 했다. 겨울을 지나며 결로가 생겨 벽지에 얼룩덜룩 핀 곰팡이를 제거하려다 세제가 밑으로 들어갔다. 장판을 살짝 들어 맨 바닥을 보는데 바닥이 전부 갈라져 있는 것이 아닌가. 사연인 즉, 이사를 오고 나서 시작된 인근 아파트의 리모델링 재건축 공사의 진동으로 인해 노후화된 인근 주택들에게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여름에 아랫집에 누수가 되어서 주인 아저씨가 급하게 찾아와 집을 살펴보고 간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우리 집에 혹시 물을 틀어놨냐고 물으셔서 그런 일 없다고 했고, 주인도 점검하고 갔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곳의 균열 때문에 배관이 터진 것이었다. 발견 전에도 휴일에 집에서 누워서 쉬려고 하면 어김없이 땅이 울리고 골이 울리는 공사 소리에 계약보다 빨리 이사를 나가는 것을 고려하고 있던 참에 결심할 구실이 생겼다. 빨리 떠나지 않으면 바닥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나는 지켜줄 사람이 나 밖에 없는 1인 가구니까. 빠르게 결정하고 아저씨에게 전화로 이유를 설명 드린 후 이사 준비가 시작되었다. 직장에서는 야근까지 해가면 일을 했고, 야근으로 시간외수당 대신 받은 30분 단위의 시간 휴가로 부동산에서 연락이 오면 잠깐 나가서 집을 보고 오기를 반복했다. 맘 같아서는 이사라도 방학 이후에 진행하고 싶었지만, 집을 수리하고 다른 세입자를 들여오기를 원하는 아저씨에 의해 오히려 서두르게 되었다. 이런 스케쥴을 견디지 못하고 몸이 먼저 백기를 들었다. 


  그 날은 만성적인 이사와 업무 스트레스에 관계적 스트레스까지 더해진 날이었다. 아무개의 말실수로 던져진 돌을 지나가던 개구리인 내가 맞은 상황이었다. 컨디션이 안좋은 상태에서 푸팟퐁 커리를 시켜 먹었는데 점심 이후로 급격히 몸이 가라앉더니 급기야 퇴근하자마자 그날 먹은 모든 것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그저 스트레스성 두통과 미열이라고 생각했고, 그로 인해 몸살이 오나 했다. 대학원 수업으로 등교한 언니는 내가 걱정되는 마음에 따뜻한 국물이라도 먹자고 저녁을 함께 먹었는데 도저히 먹히지 않았다. 그렇게 언니와 헤어지고 집에 도착했다. 집에 혼자 남겨진 순간이었나, 아니면 집에 와서 긴장이 한 번에 풀어진 순간이었나. 시야가 흐려지고 복통이 시작되었다. 그리고는 화장실과 방을 오가며 데굴데굴 굴러가며 아팠다. 꽃 몽우리를 보며 생각한 무슨 일이 이런 일이었나.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람. 작년 이맘 때 코로나19에 감염되어 혼자 앓았던 때만큼 아팠다. 너무 아파서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앉아도 아프고 서도 아프고 누워도 아팠다. 정신이 들 때마다 가족들과 친한 사람들에게 연락했다. 혹시 혼자 있다가 실신할까 두려웠다. 그중 예찬이는 응급실에라도 가라고 했다. 배를 움켜쥐고 생각했다. 응급실은 어떻게 가는거지? 119를 부를까? 아니야 그 정돈 아니잖아. 정신이 멀쩡해서 오히려 들 것에 들려 나가는게 더 민망하겠어. 나보다 더 급한 환자가 있겠지. 응급실을 그렇다고 보호자도 없이 내 발로 들어가는게 맞는거야? 그럼 별로 응급하지 않은 거 아니야? 등등 처음 겪어보는 통증에 여러가지 대처 방법과 그 타당성에 대해 생각했다. 새벽 3시가 넘어가니 정말 혀 끝에 상스러운 욕들이 맺혔다. X발 진짜  X나 아프네!! 역시 사람은 극한 상황일 때 본성을 드러낸다. 나는 인성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닌 것 같다. 해가 뜨자마자 병원 갈 시간 만큼의 시간 휴가를 사용하고, 상사인 실장님께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가면서 허구와 현재가 있는 단체 톡방에 물었다. 우리는 모두 혼자 살고 있어서 친구들의 안부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응급실은 도대체 어떻게 가는거야? 나 죽다 살아남.


  허구는 AI 채팅봇처럼 응급실에 대한 정보를 술술 이야기했다. 그런 걸 알게 된 경험들을 들으면서 또 한 번 불안감을 느꼈다. 응급실 정보를 받아보고 있자니 진찰실로 들어오라고 호명했다. 집 앞 내과 원장님은 우연하게 만나게 된 교회 집사님이다. 나는 그저 집 앞에 병원을 간 것인데 알고보니 같은 교회를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원장님은 나 혼자 정한 나의 주치의였다. 증상이 이야기하고 열을 재고, 청진기를 통한 진찰을 하셨다. ‘바이러스 장염’에 걸렸다고 했다. 엄청 아픈데, 엄청 좋은 약이 없다고 했다. 당장 열도 내려야 하고, 몸 안에 든게 없을 테니 수액처방을 받았다. 병원 침대를 누우며 오늘 해야 했을 일들에 대해 생각했다. 휴가를 늘리며 수액 치료를 받고 있다고 보고도 드렸다. 출근을 하지 말라고 한 실장님과 다르게 미리 만들어 둔 영상의 자막 수정이 급하게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고민했다. 워커홀릭이라서가 아니다. 간 밤 너무 아파서 굴렀던 집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내 기준에는 아파서 쓰러진다면 학교가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집에서 아픈 건 아무도 모르고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학교에서 아프고, 비상시 도움을 요청하겠다는 생각으로 수액 치료가 끝나고 출근했다. 


  가족들이 있는 단체 톡방에 상황을 설명했다. 간호사 출신인 엄마는 멀리 천안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집에 갈 순 없었다. 본가의 대부분이 아팠기 때문이다. 거기는 또 다른 바이러스인 아데노 바이러스의 감염이 의심되는 증상으로 다들 뻗어 있었다. 작년에 내가 먼저 증상이 심한 코로나19를 앓은 후 같이 살지도 않는 가족들 전부가 2~3일을 두고 전부 다 코로나19에 감염되었었다. 그때의 악몽이 이상하게 오버랩 되면서 정신을 다잡았다. 그렇지만 외로웠다. 아픈데 퍼지지 못하고 힘을 더 내야만 하는 상황이 어려웠다. 기대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눈을 위로 치켜뜨게 하는 서글픔 같은 것이 느껴졌다. 이 와중에 부동산에서는 전화가 왔다. 집을 보러 오라며 이번에도 어김없이 좋은 집이며 늦으면 다른 사람이 채가서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화려한 언변으로 정신을 못 차렸다가, 나를 덮은 서글픔의 힘으로 오늘은 보지 않겠다고 거절했다. 


  사실 미리 가계약금까지 걸어둔 집이 있었다. 그러나 나의 야근과 외근으로 대출 실행에 필요한 서류가 늦게 접수되면서 내가 계약하려던 전세가 아닌 월세를 내겠다는 사람과 집주인이 계약을 원해 한 차례 계약이 불발된 상황이었다. 그 과정에서 지금 살고 있는 집은 계약이 성사가 되었고, 나는 그 기간 내에 새로 계약할 집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가진 예산은 한정적인데 이사하고 싶은 동네에는 마땅한 집이 없었다. 학교에서 멀어지려니 교통비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집 없는 설움과 몸이 아픈 설움이 합체해 이대로 모두 때려치고 본가로 내려가고 싶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했다. 가족들이 보고 싶었다. 근데 동시에 가족들이 안보고 싶기도 했다. 혼자서 동굴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나는 결혼할 사람도 없다. 앞으로의 2년이 그려지지 않았다.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할것인지. 나라는 주체를 제외하고는 채워진 게 없었다. 언니들이 결혼을 하면서 언니들에게는 원가족이라는 말이 생겼다. 말하자면 본진 같은 것이다. 결혼한 부부(당사자)를 중심으로 만든 가족. 즉, 언니 내외와 조카들로 이루어진 가족이 중심이라는 것이다. 그럼 나는? 과년한 딸이 부모님을 중심으로 한 가족으로 남아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집다운 집에서 혼자라도 가족처럼 살고 싶어졌다. 어디라도 좋다는 마음으로 찾던 매물을 ‘자취방’아니고 ‘집’같아 보이는 매물로 기준을 세우기로 하고 처음부터 다시 매물을 보기 시작했다. 


  아픈 몸이 가끔은 생각을 덜 아프게 할 때가 있다. 물론 시작은 어김없이 몸이 아프면서 멘탈도 잠시 함께 무너졌지만, 이를 통해 일말의 기준을 세울 수 있었다. 컨디션 조절의 실패,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내몰리는 것 같은 내 모습, 도움을 요청하지도 해결책을 찾아내지도 못해서 오는 자괴감이 잠시 나를 덮쳤다. 그러나 이내 다음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다음에는 조금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나만의 로그를 짰다. 양지의 꽃들은 만개해서 꽃잎을 휘날릴 때 이제서야 새순을 내는 나무를 보았다. 이 음지의 나무는 꽃을 늦게 피운 만큼 당연히 열매도 늦게 맺을 것이다. 그러나 이게 서글플 일인가 생각해보았다. 아프느라 꽃구경을 놓쳤다. 며칠 동안의 씨름으로 조금 기력을 회복해 산책을 나갔다. 어느 양지의 나무는 벌써 초록잎을 내놓았다. 올해도 아프느라 꽃구경을 놓쳤구나 실망하고 있을 때 음지에 나무의 꽃을 보았다. 주변이 다 그 꽃나무도 아니고 딱 두세 그루가 조용히 꽃을 피우고 있었다. 순간 위로를 받았다. 환경이 양지라서 이른 때에 혹은 제 때에 꽃을 피워내는 나무만 잘난 게 아니다. 내 환경은 마치 음지 같았고, 나는 그 자리에 심겨진 나무 같았다. 마땅한 환경과 적절한 도움이 없어서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보니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다시 보니 꽃을 틔움으로 인한 늦은 만큼 절정으로 피우기까지 오래 볼 수 있다. 조금 늦고 조금 작은 꽃이여도 피워내 내게 위로를 준 것처럼 그렇게 살아보는 게 어떤가 생각했다. 그리고 그마저도 낼 수 있도록 허락한 조금의 볕과 바람과 공기가 있음에 감사하며 몸을 추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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