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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승이 Jun 30. 2023

꿈 2

잠을 깨는 순간

어릴 때 꾼 꿈이 생각날 때가 있다. 특히 한 꿈이 오래도록 기억난다. 꿈속의 나는 독립운동가였고 나의 애인도 함께 운동가였다. 둘은 만주에서 만났고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몇 년이 지난 후 둘은 상해로 이주했고 독립운동은 계속되었다. 만주에선 총을 들었고 상해에선 주로 펜을 드는 것 정도만 달랐다. 사람들을 설득하고 협상하는 일들에 지쳐갔다. 몇 년 이 지나 둘은 다시 본토로 돌아가서 서울에서 독립운동을 이어가기로 했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은 상해로 오는 과정보다 힘들었고 순탄치 못한 위기의 순간들도 많았다. 일본의 수배에 놓인 상황이었기에 변장을 계속해야 했고 삼엄한 경계를 피하기 위해 여러 곳을 경유해야만 했다. 그래도 결국 우린 서울에 도착했다. 떠나던 때와는 달라지 서울의 모습 때문에 서로가 서있는 자리가 서울이라는 것을 실감하지 못할 정도였다. 서울에서의 운동도 쉽지는 않았다. 만주와 상해에서와는 또 다른 위험성이 있었다. 만주에서는 전투 중임에도 사랑하는 사람이 동지라는 생각에, 그리고 사랑이 시작되는 단계였기에 독립에 대한 희망도 사랑에 대한 기대처럼 컸기에 전투의 과정을 견딜 수 있었고 상해는 사무실에서 나와 애인과 걷다 보면 죄책감을 느낄 만큼 순간의 평안이 찾아올 만큼 안락함이 느껴지는 거리들이 보였다. 커피와 차를 마시는 사람들 속에 앉아 우리도 커피를 마시다 보면 이곳에서 우리는 독립을 위해 일분도 헛쓰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으로 인한 자책 위에 앉아있었기에 커피는 더 쓰기만 했다. 하지만 쓴 커피에 익숙해질 때쯤 우린 우리를 모르는 망명지에서의 안락을 느끼는 지점에 다가가기도 했다. 어느 날은 커피가 더 썼고, 어느 날엔 덜했다. 그래서 상해를 떠나기로 결심한 것이기도 했다. 더 이상 커피가 쓰지 않아서.

나를 깨운 것은 애인이었다. 사실 난 영국인의 거리를 걸으며 국제도시에 이미 익숙해져 버렸고 이곳에서 가정을 이루며 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날이 많았다. 내색할 수 없었지만. 여기에 온 이후로도 애인은 독립의 희망을 놓지 않았기에 난 드러낼 수 없었다. 그러기에 서울에 오는 과정은 안락을 포기하는 과정이었고 죽음으로 귀결되는 이야기로의 전환이기도 했다. 이제 우리 둘 사이엔 사랑이 시작되던 때의 희망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랑의 자리엔 결의가 자리해야 했다. 서울의 삶은 고되고 고되고 또 고되었다. 그리고 끝엔 애인의 체포로 이어졌다. 그리고 난 자수했다. 고문을 받는 다면 둘 다 받아야 했고 죽는다 해도 같이 죽어야 했다. 이미 독립은 희미한 꿈이었다.

고문의 잔인했다. 상해시절부터 들어본 고문을 대부분 겼었다. 그런데 가장 공포스러웠던 것은 끓는 기름에 손을 담그는 것이었다. 그것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내 손을 지워버리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음을 의미했고 사랑하난 사람을 만지던 촉감의 남은 기운을 지우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결국 내 손은 강제로 기름으로 향해갔다.

손끝에 뜨거운 기름의 방울이 톡 튀던 그때,

내 손은 버티려는 힘으로 굳어져만 갔다.


악!


난 꿈에서 깨어났다.

난 베개대신 팔을 베고 있었고 팔이 저려서 움직이지 못했다 어깨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난 얼마나 긴 꿈을 꾼 것일까

만주에서의 설렘, 상해에서 느낀 온난의 기운.

그리고 서울에서의 체포와 마지막 고문.


이 긴 이야기는 언제 시작된 것일까.

베개대신 팔을 벤 순간 그 저림을 표현하기 위해 난 만주로 떠난 것일까 그리고 대하소설 같은 십여 년의 이야기는 팔이 저린 시간만 큼 동안 진행된 것이고 실제로 뇌에서는 오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벌어진 일일까.


아니면 만주와 상해까지는 베개 위에서 잘 자고 있었는데 그렇게 이야기가 완결될 수도 있었는데

갑자기 팔베개로 전환되자 스토리도 급히 변경되어 고문의 결말에 이르게 된 것일까.


또는 깨어나기 전 수많은 꿈을 꾸었고 깨는 순간 너무 팔이 저려서 여러 꿈들 중 딱 맞는 그 꿈이 깨는 순간 떠올리게 된 것일까.


항상 그렇지만 난 첫 번째를 선호한다.

미래가 과거에 영향을 미치는 가설이기에.

미래는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그건 꿈에서도 마찬가지였으면 좋겠다.



며칠 전 비슷한 꿈을 또 꾸었다.

이런 꿈과 깸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살면서 두 번째였다.

이 두 번째의 경험으로 인해 이십 대 때 꾸었던 독립운동의 꿈과 깸을 다시 떠올렸다.


두 번째 꿈은 어떤 교사의 수업을 보고 평가하는 시간이었다.

실제로 며칠 전 그 선생님의 벡터 수업을 보고 평가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워낙 평가하는 자리는 듣는 사람에게 지적하는 자리만은 아니기에 많은 것을 다 따져 묻는 자리는 아니다. 그게 아쉬웠는지 꿈에서 재연되었고 난 그날 묻지 못한 질문을 하나 더 했다.


왜 세 개의 벡터의 합을 이야기할 때, 무게중심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요. 무게야 말로 벡터이고 무게는 중력의 방향으로 작용되는 힘인데 그것을 왜 삼각형의 무게중심이라고 말하는 지를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인데 왜 무게중심을 벡터로 해석하지 않았나요


이것이 꿈속에서 한 질문이었다.

그 선생님은 답을 하려고 입의 근육을 움직였고


늘 똑같은 그 시간의 그 알람소리에 깼다.


꿈에서 우린 시간계산도 잘하고 있는 것일까?


난 역시 첫 번째 가설을 믿는다.

난 대학 다닐 때 문득 무게중심을 역시 벡터로서 설명할 때 의미가 있음을 깨닫고 즐거웠던 적이 있었다.

그 후로 기하학을 수업한 적이 거의 없었기에 거의 잊고 지냈다.

그런데 꿈에 그 말을 하고 있었다.

난 며칠 전 본 수업이 좋았다. 오랜만에 내가 좋아하는 기하의 이야기들이 반가웠다. 사실 그 선생님께 묻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날 난 기하를 떠올리며 대학시절의 기하공부하던 날의 기쁜 날들을 내 뇌 안의 허수공간에 떠올렸을 것이다.

꿈속에서 그 허수는 여러 번 제곱을 하였고

어제의 꿈에서 드디어 실수로 바뀌면서 나타난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하면 누군가는 내가 다른 사람의 대답을 들을 필요는 없었기에 상대가 입을 벌리는 그 시간에 꿈을 끝낼 필요가 있었고 딱 그 시간에 맞게 꿈속의 이야기를 진행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그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첫 번째의 가설은 항상 미래에 알람은 울렸고

그 알람이 나의 꿈의 스토리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학생들이 수학시험을 보는 날이고

이번 시험범위엔 허수가 포함되어 있다.

허수는 계속 곱하면 결국 실수가 되는 시점이 있다는 것을 학생들이 잘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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