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문제를 풀 때
결혼식을 앞둔 날, 한 학생이 수학문제를 질문했다. 꽤 어려운 문제였는데 풀기 좋은 문제였다. 나에게 풀기가 좋다는 것은 풀이가 금방 생각난다는 것이 아니라 푸는 과정이 전혀 생각이 안 나서 이런저런 시도를 해봐야 하는 문제이다. 하도 생각이 안 나서 문제를 정말 물리적으로 멀리서 보기도 할 정도였다. 이 문제를 만든 사람을 만나고 싶을 만큼 이 문제에 하루종일 빠져있었다. 내용이 아주 어렵지는 않았다. 그냥 수열의 문제였다. 다만 그 수열에서 규칙성이 거의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이런 경우 문제를 만드는 것은 쉽다. 규칙을 만들고 그에 맞게 수를 나열하면 되니까. 하지만 반대로 그 결과물을 보면서 규칙을 찾아내는 것은 훨씬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물론 만드는 것도 아주 쉬운 일은 아니다. 길게 보면 풀리지 않는 암호는 만드는 것은 암호를 푸는 일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수학문제는 암호까지는 아니다. 정답률 0%가 목표인 문제는 있을 수 없으니까. 결국 이런 문제는 출제자와 풀이자의 적당한 수싸움일 때가 많다. 출제자는 “풀어줘. 풀 수 있어. 풀 수 있을 만큼의 조건과 자료를 문제 속에 남겨뒀어”라는 마음으로 출제하고 풀이자는 ”대체 어디에 숨겨둔 거야. 잘 안 보여. 하지만 꼭 찾아낼게 “라는 마음으로 풀어나간다. 시간이 정해진 시험이라면 예외다. 이런 문제는 시험에 출제하면 안 된다. 이건 수학 문제풀이가 취미인 사람들을 위한 문제다.
어쨌든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은 나의 결혼식이었다. 학생에게도 설명을 해줘야 하니 약속했다 결혼휴가을 마치고 오면 알려주겠다고. 그전에 네가 혼자 풀이해도 휴가 이후에 서로의 풀이를 비교해 보자고 양해를 구했다. 학생은 이미 이 문제에 일주일의 시간을 쓴 후였기에 일주일 더 기다랴도 괜찮다고 했다. 학생도 답지가 없었기에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고 충분히 즐겁게 풀이에 몰두할 수 있었다.
어쨌든 결혼식날이 되었고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
거의 하루종일 그 문제풀이는 떠올리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도 주례사를 듣고나 축가를 들을 때, 폐백을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문제생각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 신혼여행지에서의 첫날의 꿈에 문제가 나왔다. 꿈속의 나는 문제를 풀고 있었고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거의 답이 나올 듯할 때 꿈에서 깨버렸다. 잠결에 백지를 찾으니 찾을 곳이 없었다 우선 메모지에 꿈에서 본 아이디어를 적었다.
아이디어는 곧 풀이였다. 문제 속의 규칙을 찾는 것이 곧 풀이의 전부인 문제였으니 그럴밖에.
난 그 문제를 풀었다.
새벽의 공기는 시원했다.
하지만 조금 찜찜한 것도 있었다.
내가 푼 것인가, 꿈속의 내가 푼 것인가.
찜찜함은 금방 사라졌다.
당연히 둘 다 나니까
깨어있는 내가 실수라면 꿈꾸는 나는 허수이고
둘이 모여 복소수의 나를 완성하는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