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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승이 Jul 16. 2023

오랜만이지?

스파이더맨 이야기는 아니다

새로 나온 스파이더맨은 언제나 가슴 뛰게 만든다.

가장 좋아하던 마블코믹스의 캐릭터도 스파이더맨이었다. 슈퍼히어로의 삶만큼 다른 삶도 있는 모습이 좋았다. 피자배달하다 사람을 구하느라 피자를 망가뜨리는 것처럼 이번영화에선 아빠를 위한 축하케이크를 같은 이유로 망가뜨린다. 때로는 그런 이중적인 삶이 싫어서 슈퍼히어로로서의 삶을 그만두는 때도 있지만 결국엔 스파이더맨은 뉴욕하늘을 날고 있다. 스파이더맨에게 거미는 운명이고 숙부의 죽음은 필연이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나온 시리즈에선 스파이더맨이 필연을 막는 선택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선택을 달리하면 정말 기존의 세계는 붕괴하고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지는 것일까.


학교에서 교사들과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다. 내가 선택한 것이기도 하다. 사이가 좋으면 싸워야 할 때 싸울 수 힘들까 봐. 그리고 내가 하는 행동과 말들이 사람들이 날 꺼리게 만들기도 했다. 오래전의 일들이긴 하지만 사립학교 교사들의 기억은 오래간다. 학교에서 나의 이미지는 대충 말 잘 안 듣고 제멋대로 하는 교사다. 그 외에 좋은 이미지들도 있지만 위의 이미지가 모든 것을 덮어버린다. 나의 신념에 따라 학생들과 평어를 쓰고, 학생인권조례에 맞지 않는 학교 규칙을 없애려 하고, 학생회의 민주적인 구성을 위해 학생회장선거에서 교장이나 교사의 개입을 막는 과정에서 교사와 싸우기도 하고 교장과 싸우기도 했다. 대개 그들의 논리는 전통이었으니 논리는 빈약했고 논리에서는 내가 이기는 싸움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난 항상 힘겹게 싸워야 했고 쉽게 이기지도 못했다. 오래 걸리고 지치고 외롭고 울다 또 힘내보는 일들의 반복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 곁엔 별로 사람이 없게 되었다. 혼자인 게 편하긴 하지만 가끔은 둘이고 셋이고 싶은 날도 있는데 그것도 쉽지 않다. 사립학교는 교사마다 평생의 단짝친구들이 있다. 매일 같이 밥을 먹고 매일 수다를 나누는 모임들이 있다. 난 어디에도 끼어있지 않은 상태다. 물론 나를 좋게 평가하는 분들도 여럿 있긴 한데 그분들의 단짝이 나는 아니다. 언젠가부터 이런 고립이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늘 익숙하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학교에 문제가 있어도 크게 싸움을 벌이지 않게 되고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곤 했다. 이건 좀 싸워서 바꿔야겠다는 문제가 보여도 넘어갈 때가 있었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 퇴근을 앞둔 시점에 갑자기 화가 났다. 진작 싸워서 바꿔냈어야 하는 문제였는데 계속 내일이 아니라며 모른 척했는데 사람들이 보인 반응이 나를 터뜨려버렸다. 자기 일이 아니면 비아냥대는 교사들, 그 속에 내가 머물고 있을 수는 없었다.


사실 별 대단한 일도 아니고 큰 싸움도 아니다.

하지만 이건 시작일 거라 믿는다.

교무실 내 자리 앉아 피자만 배달할 수는 없다.

이미 내 피자는 망가져있었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해야 한다.

학생인권조례 폐지도 막아야 하고

교장은 슬리퍼 신으면서 학생의 슬리퍼는 금지하는 교칙도 바꿔야 한다.

또 뭐가 있더라

이제 학교에 가면 예전처럼 돌아다니면서

내가 싸울 거리들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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