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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승이 Jun 05. 2023

여행지에서

포즈

여행지로 출발하는 날 아침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빙부상이라고

장례식장은 부산

내가 서울에 있으니, 연휴엔 기차표도 구하기 어려우니 굳이 내려올 필요없다 했다. 가족장으로 조용히 치르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마침 나의 여행지는 경주였다

부산까지 가난 기차표를 구하는 건 연휴여도 어렵지 않았다

첫날의 여행을 마치고 이튿날 아침 부산행 첫차를 타러 가족들이 자는 사이에 집을 나섰다

낮공기에 비해 새벽의 것은 청량했고

구름의 모양도하늘의 색도 스키마의 그것과 같았다


이 모양을 담아두면 다음에 이 느낌을 다시 느낄 것 같아 사진도 한장 찍어두었다 사진이란 그런 정도의 역할이니까


여행 첫날의 한 사람이 생각나서 웃었다

저녁 조명이 켜진 동궁과월지에서

한 젊은 분은 어머니에게 사진을 찍어달라 했다

그 자리가 사진이 잘 나오기로 유명한 자리인지 줄도 길었다

어머니가 사진을 찍으니 자식은 짜증을 냈다

“엄마, 그냥 찍으면 어떡해. 내가 포즈를 취하면 찍어야지 우리 줄서서 찍는거야 급하게 찍지마 우리 줄서서 찍고 있는거라고!!”

어머니가 알았다고 하며 포즈를 취하라고 했다

그 광경이 재밌고 대체 어떤 포즈를 취하려하는건가 몹씨 궁금했다


그런데 갑자기 뒤로 휙 돌아버렸다

화가 난건가?

이제 옷에서 뭘 꺼내서 대단한 포즈를 하려는건가


“엄마, 됐어!! 이제 찍어”

다른 포즈는 없었다

정말 뒤로 돌아섰고 손은 아래로 쭉 뻗었다.

어머니가 사진을 찍고 돌아섰다

자식은 어디가냐 했다 사진 확인도 안하고 다른 포즈도 안했는데

사진을 보더니 더 심한 짜증을 냈다

“엄마, 우리 줄서서 찍은거야!!! 빨리 다시 줄서!!“


사진은 찰나의 순간을 남기는 거라 배웠는데

브레송의 사진을 보며 그래 이것이 사진이구나 했었는데


묘한 웃음이 한동안 멈추질 않았다

포즈의 형태에 대한 비웃음이 아주 살짝

어머니에 대한 애잔함이 조금 더 살짝

그 모습을 이해 못하는 내가 이상한건가 싶은 마음이 나머지


경주의 포토존에선 다 줄을 선다

경주뿐 아니겠지

장례식장에 다녀온후 가족과 만나 대릉원에 갔다

한낮의 땡볕에 능 앞에선 어떻게 줄을 설까 궁금해하며 대능원에 가며 생각했다

역시 인간은 대단하다

너무 더워 줄을 안서겠지 생각했던 나는 미물이었다

담옆의 나무그늘에서 긴 줄이 보였다 순서가 되면 한팀씩 능 앞으로 가서 찍고싶은 만큼 여러장을 찍는다


줄도 긴데 한두장만 찍지 싶은데 그런법이 없다

어제의 그 엄마와 자식의 대화를 이제야 이해했다

“우리 줄서서 찍은 거야”


뒷사람 기다리는거 눈치볼 필요없어

우린 공정하게 줄을 섰고

그렇게 얻은 촬영의 시간은 온전히 우리의 것이니

마음껏 써도 되는거야

우린 새치기 한거 아냐 우린 정당한 권리를 기다림을 통해 얻은거야!


아마도 그런 의미였던 것 같아 어제 웃음의 기억에 슬픔도 추가되었다.


부디 모두 그렇게 줄을 서서 찍은 수많은 사진들이

인스타의 하트 백개씩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몇년이 지나 다시 구글포토가 알림으로 몇년전 오늘이라고 알려주면 줄서더 날의 더위, 엄마와의 실랑이도 다 기억나면 좋겠다


사진은 기억을 돕는다

좋든 싫든 우린 기억을 잃고 사진만 우리의 기억을 품을 것이다.


(어제의 그 포즈가 요즘 유행인가 싶어 나도 찍어보고 싶었다 두 딸에게 뒤로 돌아달라 부탁하고 찍어보니 조금 이해됐다 ㅎㅎ 괜찮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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