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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승이 Jun 10. 2023

수학 수업을 공개하다

컨설팅장학

며칠 전 컨설팅장학 위원 세분을 모시고 수업을 공개했다

일면식도 없는 분들이라 당일에 처음 뵙는 거여서 어떤 피드백을 주실까에 대해서는 걱정도 기대도 크지 않았다.

원래 컨설팅장학을 더 의미 있게 하려면 수업 구성단계부터 위원들과 소통해야 했는데 그럴 필요를 못 느낀 탓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소통을 미리 했다면 더 좋았겠구나 싶고 컨설팅장학, 수업코칭은 꽤 좋은 기회다.


하지만 그건 결과론적인 생각일 뿐, 처음 나의 마음가짐은 ‘우리 학교의 관례적인 컨설팅 장학을 올해 내가 순서가 되어서 하는구나’ 정도로 수업준비를 시작했었다.


그래도 대충 준비할 수는 없었다.

가장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하기 어려웠던 수업을 하고자 했다. 수학으로 시를 쓰는 수업!!

아, 그런데 구성을 짜다 보니 이런 수업은 한 차시의 수업으로는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대여섯차시는 필요했고 그만큼의 여유는 없었다. 기말고사 앞둔 상황에서 다섯 시간을 빼놓고 진도를 나갈 수는 없으니 포기할밖에.

그래서 시험범위 진도도 나가면서 하고 싶은 얘기도 하려고 다시 수업을 구상했다 공개시점의 진도는 연립이차방정식이었고 난 연립방정식도 꽤 좋아하니 이야깃거리는 충분히 많을 것 같았다.


하고 싶은 아야기를 몇 가지 정했다

1. 연립방정식은 둘 이상의 방정식에서 각각의 방정식의 해 중 공통의 해를 찾는 방정식이다. 그렇다 보니 항상 변수가 둘 이상이 나오거나 이차 이상의 차수를 다룬다. 이것이 첫 번째 학생들에게 나누고 싶은 첫 번째였다


2. 두 번째는 연립방정식의 풀이법은 아주 오래전부터 대수학의 영역이었다 그런데 좌표평면이 만들어지면서 그리스수학에서부터 다루던 유클리드 기하학을 좌표, 방정식, 함수로 표현하게 되었다 18세기쯤 되면 대수기하학, 해석기하학의 기초들이 모두 완성된다. 갈릴레이, 뉴튼, 오일러, 데카르트 등등의 수학자들이 중간중간 큰 역할들을 하기도 했지만 이 과정은 마치 르네상스를 거치며 그리스 문화를 다시 인간의 눈으로 해석하는 것과 비슷한 양상이기도 하다. 당연히 현대미술과 현대수학도 비슷한 양상을 이후에 보이기도 하고. 이러니 수학 교과서는 어떻게 서술하냐에 따라 음악이나 영화가 되기도 하고 회화가 되기도 한다.

부연하면, 수학책의 하나의 단원엔 수세기의 걸친 역사적 결과물이 나오는데 이것을 역사적 단계를 생략하고 배우면 시간의 축을 지운채 보는 회화여서 이해가 쉽지 않고 역사적 단계를 같이 배우면 음악이나 영회처럼 시간의 축에 따라 내러티브를 읽어낼 수 있으니 역사적 만남의 이야기를 느낄 수 있다. 그러니 수학수업은 수학사를 함께 할 때 더 즐거울 수 있다. 수학은 여러 시기의 만남들이 불연속적으로 이어져서 발전해 온 학문이기에 더 그렇다.


3. 그런데 이런 과정들을 설명 듣는 것이 수학 문제를 풀고 시험을 보는 데엔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수능은 수학풀이기계들을 위한 시험이다. 그러니 쉽고 빠른 논리로 문제를 해석하고 답으로 가는 최적을 길을 찾는 것이 수학수업의 목표가 되곤 한다. 그런데 그런 거라면 이제 a.i 가 다 해주는 것 같은데 왜 인간이 그걸 하는가, 인간이라면 인공지능이 빠르게 구해주는 답이 아니라 그 과정과 역사를 알아야 하는 게 아닌가, 그래야 인공지능이 틀렸을 때 알아차릴 수 있고, 인공지능을 개발할 때 오류에 빠지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인공지능의 우리가 과정을 이해하는 시간에서 느낄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새로운 무언가를 지켜내기 위해, 그 시간 속에서의 즐거움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우린 인공지능을 이해하고 활용을 하되 전적으로 믿지 않고 적대적이지도 않을 정도로 인공지능과 빅데이토의 시대를 맞이해야 한다. 이것이 내 수업의 마지막 이야기 주제면 좋겠다고 결정했다. 그리고 제목도 정했다.

역시 수학은 만남의 역사이고 지금도 수학은 인간의 세계를 서로 연결해 주는 언어이기에 적절한 제목 같았다.


지도안은 금방 만들었다. 대수기하학을 다루는 인공지능도 많고 수학 ai도 많아서 자료 찾기는 쉬웠다.

그래프를 잘 떠올리기 어려운 학생들도 있어서 geogbra 사이트를 활용하기도 했는데 여긴 이름부터 지오지브라다 정말 잘 지은 이름이다.


그리고 결론 부분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수업은 잘 끝났다

전하고 싶은 말도 잘 전했던 것 같다


다행히 컨설팅위원 분들의 평가도 괜찮았다

그중 한 분은 가끔 수학수업을 하다 보면 수학기계가 되는 느낌일 때가 있는데 이런 수업은 그럴 때 필요한 수업같다고 하셨다.

너무 공감되는 말이었다


수업을 자평하며

왜 이런 수업을 구상했는지 말했다.

장학위원 선생님들께 보여주고 확인받고 싶었다고

이런 수업을 좋아하고 즐겨하는데

입시랑은 점점 멀어져서 학생들도 잘 안 듣는 수업이 되는 것 같기도 한데

이런 수업 계속해도 될는지, 수학적으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긴 한지..


수석교사분의 눈에서 다른 수학교사의 눈에서

조금은 답을 들었다.

수학교사들은 어느 정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구나.

공감의 마음을 읽었다.


특히 컨설팅 위원 중 한 분은 이미 수학과 생태전환교육, 민주성을 연결하는 시도를 하고 계신 분이었다.

우연하게 만난 분들이었는데

그 세분의 선생님을 만난 것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대학에서도 교사로 일하면서도 내 세계는 작았었다.

학교 수학선생님들하고 잘 안 통할 때도 있고 대학에서도 수학교육의 방식이 나와 잘 안 맞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내 세계가 작아서 그랬나 보다.

내가 좋아할 만한 수학선생님들은 어딘가에 있었다.

역시 수학은 세계와 만나는 학문이니

자꾸 나아가면 결국 무언가와 만날 확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정말 수학을 정을 떼고 싶을 때도 정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이 있어서 어쩌지를 못하겠다

죽을 때까지 수학공부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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