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K9, 중고차 시장서 ‘가성비 대형 세단’으로 재조명
한때 기아의 기술력을 상징하던 플래그십 세단 K9. 출시 당시에는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를 정조준하며 고급 대형 세단 시장을 겨냥했지만, 2025년 현재 신차 시장에서는 그 존재감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중고차 시장에서는 이 K9이 ‘제네시스보다 낫다’는 찬사까지 받으며 독보적인 가성비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기아 K9이 신차 시장에서 외면받기 시작한 배경에는 K8의 등장이라는 결정적 변수가 존재한다. K8은 더 낮은 가격대임에도 고급스러운 디자인과 풍부한 옵션을 갖추고 등장했으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굳이 더 큰 금액을 지불하면서 K9을 선택할 유인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2025년 상반기 판매 실적을 보면 K8은 월평균 2,500대 이상이 팔린 반면, K9은 고작 100대 남짓에 불과했다. 가격 대비 상품성이라는 측면에서 K9은 이미 경쟁력을 상실한 셈이다.
현대차가 제네시스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독립시켜 프리미엄 이미지를 굳힌 반면, 기아는 K9을 독자 브랜드로 육성하는 데 실패했다. 여전히 ‘기아’라는 대중 브랜드의 틀 안에 갇혀 있었고, 이는 플래그십 세단으로서의 상징성과 차별화를 약화시켰다.
더불어 ‘K9’이라는 이름 자체도 문제로 지적돼 왔다. 영미권에서 개를 뜻하는 ‘Canine’을 연상시키는 발음은 고급차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결국 이러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K9은 소비자에게 외면받게 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K9이 외면받은 이유는 중고차 시장에서는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낮은 브랜드 인지도와 K9이라는 네이밍의 한계는 감가율을 높이는 원인으로 작용했고, 이는 곧 소비자들에게 '가성비 대형 세단'이라는 기회를 제공했다.
2025년 7월 기준으로, K9 중고차는 2천만 원대에서 쉽게 검색된다. 특히 2018년식 차량 중 주행거리 10만 km 내외의 모델은 약 2,400만 원대에 구매가 가능하다.
이는 동급 수입 세단은 물론이고, 국산 중형 세단의 신차 가격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여기에 대부분이 법인 임원용으로 사용되며 관리 상태가 우수한 경우가 많다는 점은 구매 매력을 더욱 높여준다.
제네시스나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와 달리, K9은 '기아 엠블럼'을 달고 있다는 이유로 '하차감'에서 불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이 차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브랜드 파워 부족이 높은 감가율을 만들어냈고, 덕분에 소비자는 후륜구동 기반의 정통 대형 세단이 주는 고급스러운 승차감과 정숙성, 다양한 고급 편의사양을 훨씬 낮은 가격에 누릴 수 있다.
신차 기준으로 5,800만 원이 넘는 모델을 절반 이하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은, 소비자 입장에서 더할 나위 없는 ‘합리적 선택’이 된다.
K9은 신차 시장에서 플래그십의 위상을 잃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지만, 중고차 시장에서는 그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브랜드보다는 실질적인 상품성과 가격 대비 만족도를 중시하는 소비자라면, 지금의 K9은 놓칠 수 없는 매력적인 선택지다. ‘알아보는 사람만 아는’ K9의 가치는 지금, 중고차 시장에서 비로소 빛을 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