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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Mar 17. 2024

행복에서 평온, 그리고

평온에서 만족으로

본가에 내려가지 않고 나 홀로 주말을 보내야 할 때면, 이곳에서 시간을 유익하게 보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곤 했다. "이제 수도권에 있데, 주말이면 서울 가서 구경도 하고 그래. 여행도 다니고." 작별인사와 더불어 조언처럼 따라왔던 말들. 당연히 내가 있던 대구에 비해 모든 면에서 누릴 것도 즐길 것도 많은 곳이기에 나도 그 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곳에 온 초반에는 혼자 대중교통을 타고 인근 여행을 즐겼다. 즐겼다고 하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저곳 다니며 '누가 놀러 오면 여기도 데리고 가야지.' 하는 느낌의 사전답사처럼. 그러나 혼자 들어가기엔 난이도가 있어 보이는 식당은 어쩔 수 없이 지나쳐야 했고, 가끔 감탄에 가까운 물음이 터져 나올 때에도 함께 나눌 이가 없어 자문자답에 그치곤 했다. 러다 가끔 그런 강박의 여행들이 무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지하철을 타고 막상 도착한 곳에서 수많은 인파를 만날 때면, 그곳에 갔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얼마 되지 않아 순식간에 그곳을 빠져나왔으니까.



긴장 속의 평일들이 마무리되고 나니, 언제부턴가 이곳에 있을 때 주말을 유익하게 채워야 한다는 내 강박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주말에 근교로 여행을 다녀올까 알아볼 때면, 주변에선 차가 많이 밀릴 테니 아침 일찍 나서야 한다고 했다. 잠을 어느 정도 양보해야만 부지런한 수도권 사람들과 나란히 내가 원하는 경험을 누릴 수 있는 것 같았다. 이곳엔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다. 아니, 인구가 절대적으로 많으니 부지런한 사람도 많은 거겠지. 그렇다한들 무리해서 주말에 내가 가장 누리고 늦잠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곳은 사는 것뿐만 아니라, 여가생활에도 인내와 경쟁이 있다. 다들 존경합니다.


부서의 선배님들께 이번 주말에 집에 내려가지 않는다고 말씀드리니, 주말 동안 무엇을 할 거냐고 물으셨다. 수많은 선택지가 머리를 어지럽혔다. 새벽에 일어나서 여행을 떠나볼까. 아침 일찍 나서서 서울구경을 할까. 하지만 그러다 다시금 든 생각. 내가 대구에 있었다고 한들, 매주 주말을 이렇게 다양한 경험들로 채워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을까. 대구에 있었을 때의 나는, 이틀 중에 하루는 이렇게 게을러도 될까 싶을 정도로 일과가 먹는 것과 자는 것뿐인 사람이었는데.


사실 그런 강박이 아니라면, 무언가 뚜렷하게 하고 싶은 것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조급한 마음을 조금 내려놓기로 했다. 내가 나를 육아는 마음으로 살고 있는 나에게, 주말의 살인적이며 고독한 스케줄은 또 다른 의미의 자기학대일지도 모른단 생각에. 뭐 얼마나 대단한 경험을 주입하겠다고,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들려 하는 건가. 지금 당장 끌리지도 않은 것들에.




살며, 추구하는 가치가 바뀌곤 한다.

등바등 최선을 다해 살았던 20대 때는, 그렇게 해 내가 바라는 '행복'을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얻어낸 영광 뒤에, 행복이라 느껴질 만한 뚜렷한 기쁨은 아주 잠시였30대가 되어 '행복'은 '평온'이라는 말로 대체됐다. 무사함과 무탈함이 가져다준 짧지 않은 평온이야말로, 내가 추구하는 행복의 다른 이름이었음을.


"에밀리는 무슨 소원을 빌고 싶지?"
"응?"
그러고 보니 난 무슨 소원을 빌고 싶은 걸까.
"글쎄. 행복해지기를, 일까?"
"그러냐."
"할아버지는? 뭐 빌고 싶은 소원 있어?"
그러자 할아버지는 뜻밖의 말을 꺼냈다.

"특별히, 없구나. 단지-."
"단지?"


"행복해지는 것보다는 만족하는 것이 중요한 거다."

- 모리사와 아키오, '에밀리의 작은 부엌칼' 中 -


화려한 도쿄에서 숨기고픈 생채기를 얻은 에밀리는, 모든 것을 그만두고 할아버지가 계시는 낡은 어촌 마을 내려온다. 그곳에서 에밀리는 낚시와 요리를 하며 행복이 아닌 '만족'을 추구하며 살고 있는 할아버지와 함께 상처를 회복해 나간다. 사실 번잡한 도시에서 받은 상처를, 한적한 시골에서 회복해 나간다는 이야기는 소설이나 드라마에 흔히 등장하는 서사이기에 또 뻔한 이야기겠거니 하고 소설을 읽어나갔다. 그러다 갑자기 할아버지와 손녀의 이 대화에 나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행복해지는 것보다, 만족할 줄 아는 것. 내가 행복을 대체한다 생각했던 평온 과만족이라고도 수 있었을까. 돌이켜보니, 무사안일을 만족이라 생각하진 않았다. 다행이며, 이 정도면 되었다고, 더 욕심내지 말자 스스로를 달래는 느낌에 가까웠으니.




이번 주말에는 늘 출퇴근 시간에 지나쳐보기만 하고 가본 적은 없었던 기숙사 근처 대형마트에 가서 쇼핑을 하고,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었다. 이제는 주말의 혼밥 제법 자연스럽다. 그리고 주말 사용하라며 부서 선배님들기프티콘을 보내주신 덕에 커피 공짜로 마셨다. 지극히 평온하며, 만족스럽다. 내 눈에 크게 새로이 와닿는 경험은 없지만, 이번 주는 이런 일상들로 만족하려 한다. 욕심을 뒤로한 채 겨우겨우 달래받아들였던 평온이 아니라, 순수한 만족 그 자체로.



소설의 말미에, 에밀리는 할아버지로부터 그 어떤 재료도 맛있는 음식으로 만들 수 있던 작은 부엌칼을 선물로 받아 다시 도쿄로 돌아간다. 그렇게, 어디에 있든 지금 있는 곳에서 지금 이 순간을 만족할 만한 요리로 만들어낼 수 있는 무기 각자 하나씩 갖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나에겐 지금처럼 글을 쓰는 일이 그러할 테니.


무기가 있으, 충분히 호신(護身)이 가능하다. 그 안심의 상태가 평온으로 이어질 것이고, 평온이라 하면 지금껏 내가 믿어왔던 행복이지 않나. 그러니 가끔은, 널리 그리고 새로이 보지 않아도 괜찮다.




대구에 내려가지 않는 주말엔 이곳 근처의 성당에서 주일미사를 드린다. 이번 주 미사 중에 그런 기도를 했다. 눈앞의 광경에 부족한 부분을 찾아 스스로를 채근하기보다, 부디 만족스러운 부분에 더 시선 머무 해달라고.



반경 2km 안에서 보낸, 주말의 끝.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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