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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Mar 31. 2024

이방인의 욕심

날개 젖은 새

"감사합니다."

"저를요?"

감사부에 함께 근무하는 부서원들 간에 말장난처럼 주고받는 농담. 처음 감사부로 발령이 났을 때, 혹자는 앞으로 '감사한다'는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되니, '고맙습니다'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고 했다. 나에겐 추임새와도 같은 감사의 말이 이렇게 무섭게 변하다니.


출장이 잦은 탓에 발령이 나고도 한 달이 지나서야, 전·현 부서원이 모여 송별회 겸 환영회 회식을 했다. 회식의 마무리에 선배들이 나더러 건배사를 하라고 했다. 신입도 아닌데, 건배사라니. 입사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이곳에선 다 쓸모없는 경력이었다. 다시 막내가 되었으니까. 갑작스러운 주문에 머리를 쥐어짜 내다,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그 말로 건배사를 했다. "오늘도 대단히! 감사했습니다!"


건배사는 단순했지만, 나름 이중적인 의미가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각자의 역할에 열심이었던 그날에 대한 짧은 소회와, 환영에 대한 고마움을 담은 언어유희였다고나 할까.




내가 여행을 좋아했던 이유는 여행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방인스러움'이 좋아서였다. 이방인이 되면, 내가 몰랐던 내 모습이 나오기도 하니까. 미숙하고 낯선 시선들을 즐기며, 익숙한 곳에서는 절대 시도하지 않았을 법한 것 도전하기도 했다. 한국에선 절대 입지 않았을 짧은 옷을 입기도 하고, 무턱대고 현지인에게 길을 묻기도 했다. 그렇게 낯선 사람들 속에서 낯선 나를 만나는 일이 사뭇 즐거웠다. 그곳에서 만난 누군가가 나에 대해서 물을 때면, 내가 알고 있는 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대로 늘어놓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설명 속의 나는 세상에 실존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명확한 목적지가 선사하는 낯섦 속에서 이방인으로서의 모호함을 즐기다 다시금 익숙한 곳으로 다시 돌아왔고, 모호함과 익숙함 사이를 오가며 나는 내가 되었다가, 내가 되지 않았다가를 반복했다.



감사 업무를 맡게 되니, 새로운 의미의 이방인이 되었다. 어느 순간 바뀌어버린 내 소속지로 인해 사람들은 나를 어려워했다. 얼굴을 알고 있던 이가 낯설어지는, 이 애매모호함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감사하는 나를 전혀 감사해하지 않는 감사기간의 연속. 다행히 이 일을 행하는 이방인은 나 혼자가 아니었기에, 애매한 사람들끼리 더 돈독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애매한 사람끼리 모여 익숙해진다. 모두가 각자 근무하던 곳에서 발령을 받아 이곳에 모인 사람들. 고향도 말투도 제각각인 사람들과 '우리'가 되어 따로 또 함께, 익숙함과 애매함을 오간다.


5박 6일간의 출장지에서의 마지막 밤. 저녁을 먹고 일찍 숙소로 들어 가, 각자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숙소로 들어가자마자, 부랴부랴 챙겨간 트레이닝 복으로 갈아입고 홀로 숙소 근처의 호수공원으로 향했다. 산책을 좋아하는 나에겐, 이곳에서의 시간 중 일부를 여행으로 기억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그곳의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길을 걸었다. 마치 퇴근을 하고 운동을 나온 양, 자연스럽게. 하나의 소속에서 자유로워지니, 또 이곳의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는 욕심을 부린다. 이방인의 욕심이란. 


우리의 삶과 정체성을 증명할 수 있는 단서들이란 어쩌면 생각보다 지나치게 허술하거나 혹은 실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의도와 관계없이 맺어지는 사회적 관계들, 관습 혹은 단순한 호감에 의해 만들어지는 수많은 커뮤니티, 실체도 없이 우리 삶의 테두리를 제한하고 경계 짓는 국적이나 호적 같은 것들은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는 줄 수 있겠지만 그 위로는 영원하지도 않고 진실하지도 않다. 회사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프린트된 명함이나 우리의 출생과 죽음, 결혼과 건강을 기록하는 관공서의 수많은 서류들도 개인의 절대적인 존재감을 증명해주지는 않는다. 지갑 속의 기념사진, 일주일 단위로 약속과 일과를 적어 내려간 수첩, 이국의 어느 공항 출입국심사대에서 경쾌한 소리와 함께 찍힌 여권 속의 스탬프들, 어딘가로 들어갈 수 있는 녹슨 열쇠나 읽고 있던 책의 접힌 페이지 같은 것들 역시 우리 삶의 부분적인 단서는 될 수 있을지언정 생애 전체를 관통하지는 못한다. 심지어 아침 7시면 눈이 떠지고 저녁 6시가 되면 온몸이 피로해지는, 시스템에 길들여진 몸의 리듬마저 변하지 않는 소속감을 약속해주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는 그저 나무둥치에 주저앉는 날개가 젖은 새처럼 하늘을 날아갈 수도 땅으로 떨어질 수도 없는 순간순간을 살고 있는 것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 조해진, '로기완을 만났다' 中 -



출장을 마치고 다시금 인천의 기숙사로 돌아왔다. 익숙함을 찾아 돌아온 곳이지만, 나는 이곳에서도 여전히 이방인이다. 캐리어를 끌고 기숙사로 돌아오는데,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누군가의 이름을 크게 외치는 선거유세 차량이 눈앞에 서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받을 투표용지엔 그의 이름이 없을 지니, 여전히 나는 이곳에서 이방인이다. 그러나 어차피 아무도 엄밀한 소속감을 약속지 않는 삶의 여정에서, 나는 소설 속의 글처럼 날개 젖은 새가 되기로 한다. 이런 이방인은 나 혼자가 아닐 테 모두가 날개 젖은 새라면, 나는 그저 다른 이들보다 날개가 조금 더 젖어있는 새일뿐이니까.




출장지에서의 마지막 아침.

10년 전 내가 써 드렸던 손 편지를 발견한 선배가, 오랜만에 편지를 찾았다며 편지 사진과 함께 나의 안부를 물었다. 편지 속에는 조금 앳된 티가 묻어나는 글씨의 내가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있었고, 오늘의 그녀는 '이번 주도 고생 많았지?' 하며 나의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언니처럼 따르는 또 다른 선배가 간밤의 꿈에 내가 나왔다며 안부인사를 건넸다. 출장지에서의 일정을 잘 마무리하고 올라가라는 인사가 연이어 전해졌고, 갑작스러운 따스한 전언들에 오늘이 무슨 날인가 싶어 복권을 사야 하나 고민했다.



뿌옇고 탁한 주말을 끝으로 나는 다음 주 또다시 새로운 곳에서 방인이 된다. 권은 됐고, 머나먼 곳에서 전해진 안부 인사들이 복으로 둔갑하였으니 이만하면 이방인이어도 괜찮을 것 같다.


모호하고 애매한 곳에 놓일지언정, 익숙하고 정주(住)하는 마음들 함께 옮겨 다닐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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