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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May 05. 2024

가만의 감화(感化)

가끔은 가마니가 되기로

출장이 잦다 보니, 출근하는 날엔 밀린 일을 쳐내기 바쁘다. 그래서인지 회식이 아닌 이상 저녁마다 시간외 근무를 하지 않 날이 거의 없었다. 일도 밀리고, 수도권의 퇴근길 장난 아니게 밀리니. 여기저기 꽉 막힌, 밀도가 높은 것들이 주는 압박감으로부터 벗어나기엔 18시 이후의 사무실 썩 나쁘지 않았다.


이번 주 어느 하루는 곳에 온 뒤 처음으로 까운 곳에 출장이 잡힌 날이었고, 새벽에 일어나 아침 일찍부터 출장 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덕분에 몸은 피곤했지만 지 않은 곳에서 일을 마치고 곧바로 퇴근할 수 있었다. 이른 퇴근 이후, 무얼 할까 고민하다 미뤄두었던 겨울 이불 빨래를 하기로 했다. 두꺼운 이불들을 고이 개켜 장보기용 카트에 싣고 근처 빨래방으로 향했다.


빨래방은 처음인지라 내 기준, 오랜만의 신(新) 문물 도전이었다. 키오스크 앞에서 자연스럽고 싶었는데, 버벅대기엔 주말보다 평일이 덜 붐 테니 안전했다. 그나저나 카트를 끌고 빨래방에 가는 동안, 빨래가 다 되기 전까지 무얼 해야 하나 고민했다. 책을 들고 갈까, 근처 식당에서 밥이나 먹고 올까.


막상 무거운 카트를 끌고 가다 보니, 일단 빨리 세탁기 안에 무거운 빨래들을 넣어놓고 생각하자 싶었다. 처음이라 조금 어설프긴 지만 무사히 세탁기를 작동시키고 한숨 돌리려 아무도 없는 빨래방의 의자에 앉았다. 그리곤 한참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세탁기만을 바라봤다. 시간이 아까운 걸까 생각하기엔, 내가 너무 편안했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그저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탁기만을 바라봤다.



가만히 있는 것에서 오는 어떤 위로. 저녁을 먹을 만큼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한참을  정면을 응시하며 용히 음악만 들었다. 그래, 생각해 보니 몸을 가만히 두어야지만 위로도 충전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텐데, 그동안 나는 무선 충전기 위에서 몸을 뒤척이거나 그 시간마저 아까워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충전기 전원을 꽂았다 뺐다를 반복하 낸 듯했다.


보송해진 빨래와 함께 돌아온 기숙사에선, 다시 기동력 있게 움직다. 그렇게 시 잠에 들었다 깨어 출근, 회식, 출근, 출장. 꽉 차있던 일정의 끝 금요일 출장이 예정돼 있었고 목요일 저녁 일찍 출장지로 내려갔다. 저녁을 먹고 숙소에 들어와 씻고 푹신한 침대에 누웠는데 한참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침대에 누워있는 동안 알 수 없는 해방감 밀려왔다. 정적은 TV가 신 메꿔주었고,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그렇게 멈춰 있어도 괜찮았다.



다음 날, 출장 업무를 마무리하고 연휴를 보내기 위해 대구로 가는 기차를 탔다. 얼마 전 깨달은 사실이 있다면, 언제부턴가 내가 기차를 예매할 때 버거운 짐함께 빨리 이동하기 위해 통로에 앉는다는 점이었다. 예전에는 무조건 창가자리를 예매하고 밖을 보는 것을 즐겼거늘, 어느샌가 그런 여유를 포기하고 통로에 앉아 재빨리 몸을 구기고 책을 보거나, 피곤을 예상하고 눈을 붙인 채 먼 길을 오가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저 내려야 해서요, 하고 말을 걸어야 하는 상황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창가에 앉으면 가끔 내 얼굴이 유리에 비친다. 오늘의 얼굴이 이랬었구나.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지, 멀리 다녀왔지만 그래도 금의 에너지를 얻진 않았는지 풍경을 지나 터널 속 잠시 비치는 얼굴에서 나의 생기를 확인하곤 했다. 짧지만 스스로를 향한 안부의 시간.




얼마 전, 겨우 시간을 내 오랜만에 머리를 잘랐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잘랐던 손톱은 그 사이 초승달 모양으로  자라 있었다. 할머니의 시간은 멈췄는데 나는 그새 또 자라 있었다.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음에도 살아있는 한, 사소한 것들은 가만히 자란다. 소리 내지 않고.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두 자라고는 있다. 살아있음을 증명해 주는 작은 것들에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나에게 없었을 뿐.


때가 되어 머리와 손톱을 다듬듯, 가끔 그렇게 가만히 자란 나와 조용히 마주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그래야 어떻게 다듬을지도 생각해 볼 테니. 분주함을 뒤로한 채 기절 같은 잠보다, 밀어 넣는 책의 글자들보다, 나를 읽어주고 싶다. 그래서 글을 쓴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탁기를 멍하니 바라보듯, 정확히 어딘지 모르지만 순식간에 스쳐가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듯, 가만의 시간을 나에게 내어주고 싶다. 패널 속의  숫자들은 어느새 줄어들어 세탁기는 멈췄고, 기차는 늘 목적지에 도착했으며 옆사람은 날 위해 일어나 잠시 기다려주었다. 가만히 있다고 해서 지나치는 것들이 아니었거늘.



여름날. 선풍기를 켠 채 방바닥에 드러누워 음악을 틀어놓고 천장을 바라보는 일을 좋아한다. 그러다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까무룩 낮잠에 드는 걸 좋아한다.


만춘(晩春)의 끄트머리. 비가 그치고 흩날리던 꽃가루 모두 휩쓸리듯 고요히 내려앉기를. 그렇게 나도 부산스럽게 흩뿌려지던 마음을 내려놓고 맑은 하늘과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




목요일 저녁, 출장지에 함께 간 선배와 저녁을 먹던 도중에 양치세트를 챙겨 오지 못한 것을 깨달았다. 이 정도 출장을 다녔으면 빠트리는 게 없을 법도 한데, 그런 당연한 걸 잊어서야 되겠냐고 그에게 푸념을 내뱉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그런 사소한 것 하나 정도는 잊을 수 있는 여유를 주고.


그의 말대로 그런 일말의 여유조차 부여하지 않았던 건 나 자신이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따라오나 싶어, 뒤를 보면 언제나 내 그림자뿐이었던 것처럼.



얼마 전의 퇴근길, 신호에 걸려 멈춰있는 동안 옆차에서 창밖을 바라보던 멍뭉이와 마주했다. 자유분방한 모습에 웃음이 나왔지만, 밤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녀석이 행여 놀랠까 창문을 내리지 않고 몰래 지켜보기만 했다. '그래. 가끔은 너도 달리는 것보다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는 게 좋지?'하고 물어보고 싶었다.


다음 주엔 선배들이 모두 출장지로 떠나고, 홀로 사무실을 지킨다. 여럿의 몫을 해내느라 혼자 고군분투하겠지만, 그 와중에 어떤 가만의 시간을 나에게 내어줄 수 있을지 찬찬히 생각해 봐야겠다.


저도 이젠 좀 청사에서, 그리고 내 마음 안에서 덜 뛰어다니고 싶거든요. 가끔은 가만히 있다 가마니가 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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