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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Apr 28. 2024

안녕, 할머니

영원이라 믿는 노래로 그대를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우리는 꽤 긴 터널을 지나가고 있었다. 주말을 맞아 네 가족이 홀로 계신 외할머니를 모시고 또 어딘가 근교로 바람을 쐬러 가던 차 안. 뒷 자석, 내 옆에 앉은 할머니는 조용히 내 손을 잡았고 할머니의 손가락은 연신 내 손을 쓰다듬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언젠가 분명 이 순간이 그리워질 거라고. 그리고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그 시간을 생각하며 눈시울이 붉어졌었다. 이어 또 생각했지. 어두운 터널 안이라서 다행이다. 게다가 터널이 꽤나 길어 다행이다, 하고.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날이 오고야 말았다. 갑작스러운 새벽의 전화 한 통에 나는 인천에 올라온 지 하루 만에, 다시 대구로 내려야 했다. 근 한 달간 이어졌던 가늘고 기다란 줄다리기는 그날 새벽, 소리소문 없이 잠자듯 끊어졌고 할머니는 비로소 모든 걸 내려놓고 평안의 길로 떠났다.


발인일 아침, 장례미사를 위해 들어간 성당 모니터엔 할머니의 이름이 크게 떠 있었다. 미사가 끝나고 화장장으로 옮겨진 할머니의 마 지나지 않아 철문 안으로 사라졌고, 화장이 끝나기 전까지 모니터 화면엔 할머니의 이름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모니터에 송출되는 그녀의 이름들을 바라보며, 8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온 그녀의 실존을 이제는 이름만이 증명해 주는 것 같아 허무하고 허망했다. 저 이름의 주인은 이제 어디에 있나.




이슬아 작가의 <날씨와 얼굴>, 안드리 나이어 마그나손의 책 <시간과 물에 대하여> 중 일부를 소개하는 장면이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덧셈의 장면을 소개하고 싶다. 마그나손은 자신의 아이에게 묻는다. 아직 살아계신 증조할머니의 나이와, 아이가 증조할머니 나이가 되었을 때의 연도와, 세월이 흘러 아이의 증손녀 역시 증조할머니가 되었을 때의 연도를. 그럼 아이는 종이에 숫자를 적어가며 계산한다. 2008년에 태어난 자신이 아흔네 살이 되고, 자신의 증손녀가 다시 아흔네 살이 되는 미래를 상상하며. 그리고 마그나손은 다시 묻는다. 증조할머니가 태어난 해에서 아이의 증손녀가 증조할머니의 나이가 되는 해까지는 전부 몇 년일지, 덧셈을 마친 아이는 262년이라고 대답한다.

마그나손은 아이에게 말한다. 상상해 보렴. 262년이야. 그게 네가 연결된 시간의 길이란다. 넌 이 시간에 걸쳐 있는 사람들을 알고 있는 거야. 너의 시간은 네가 알고 사랑하고 너를 빚는 누군가의 시간이야. 네가 알게 될, 네가 사랑할, 네가 빚어낼 누군가의 시간이기도 하고. 너의 맨손으로 262년을 만질 수 있어. 할머니가 네게 가르친 것을 너는 손녀에게 가르칠 거야.
2186년의 미래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리 할머니의 이야기를 내 딸에게, 그리고 딸의 딸에게도 전할 수 있다면 좋겠다. (......)
1940년대에 태어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얼굴을 그리워하며 이 글을 쓴다. 아직 만나보지 못했지만 사랑하게 될 미래의 누군가를 생각하며 쓴다. 나는 그들 생의 이야기를 소중히 품고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한 사람의 이야기가 대를 이어 무려 200년이 넘게 이어질 수 있다는 엄청난 이야기.  이야기로라면 나 또한 재적으로 우리 할머니를 꽤 오랜 시간, 이 세상에서 잊히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 수 는 것 아닐까.



학부 시절, 노인심리학 수업 시간에 가까운 노인 한 을 인터뷰하라는 과제를 받았었고 나는 그때, 외할머니인 그녀를 인터뷰이로 정했다. 다른 질문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는데, 단 하나의 질문과 그 답만이 기억에 남아있다. 젊은 시절 중 언제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 과제와 별개로 내심 개인적으로도 궁금했던 나의 질문에, 그녀는 고민의 여지없이 딱 잘라 대답했다. 아무 때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살아온 생이 너무 힘들었다며. 그래서 난, 그때 할머니 몰래 속으로 다짐했다. 앞으로 언제고 할머니와 시간을 보내게 된다면, 그러한 날들 중 하나를 그녀의 삶에 있어 다시 돌아가고 싶은 날 중 하나로 만들겠다고.


화장장으로 가스 안.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주말 나들이를 위해 함께 다녔던 길들을 지나갔다. 이제와 떠난 그녀에게, 그렇게 다녔던 날들 중에 돌아가고 싶은 날이 있냐 물어볼 순 없었다. 그리고 그 길들에 이 공교롭게도 그녀가 내 손을 쓰다듬으며 잡고 있었던, 그때의 그 터널을 지나갔다. 역시나 내 예상은 적중했고, 갑자기 밀려든 그리움과 때의 내 손을 어루만지던 그 촉감이 다시금 떠올라 버스 안에서 몰래 한참을 울었다.



최근 들어 즐겨 듣던 곡, 강아솔의 'Dear'.

한참 이어지는 피아노 반주에 이, 짧지만 긴 여운의 노랫말.


사랑
사랑하는 그대를 나 노래해요
우리의 사랑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언젠가 모두 사라지겠죠
그래서 나 노래해요
영원이라 믿는 노래로 그대를


누군가의 사랑을 알고 증명해 줄 수 있들도 언젠가 다 사라진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이야기가 음을 품고 품어 200년이 넘게 이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노래하는 방식로 그녀를 이곳에 남긴다.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던 입관 때에, 돌아가면서 그녀의 얼굴을 만지한 마디씩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나의 마지막 인사는 단했다.

"안녕, 할머니."

'안녕'은 내가 참 좋아하는 단어라서.


평범한 인사이기도 하지만, 상대의 무사와 평안한 기원하는 말이니까. 그러니 사랑하올 우리 할머니, 이제 비로소 안녕하를. 그리고 나만의 방식대로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를,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인사를 계속 것이다. "안녕, 할머니"하고, 오래도록. 그렇게 오래 그녀가 살아있었음품고 명하 살아갈 것이다.



20대 반의 젊은 엄마가 나를 낳아, 50대의 젊은 할머니를 만났고, 그 이후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녀의 손녀로 살았음에 감사할 따름다. 이 안으로 굽었다 할지언정 리 할머니여서가 아니라, 누가 봐도 참 예쁘고 고왔던 그녀. 나는 얼굴도 마음씨도 고운 어른의 사랑이 넘치는 손녀로 살았다. 운이 좋았다.



할머니. 우리 엄마를 낳아줘서, 그리고 우리 엄마의 엄마여서 고마웠어요. 우리 할머니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당신이어서 행복했어요.



분한 줄 몰랐던 시간 종료.

이젠 기억하는 자에게 바통이 넘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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