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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Sep 22. 2024

늦여름 빨래

어린양의 휴식 시간

추석 연휴의 끝무렵, 본가에 있을 때만 실컷 볼 수 있는 TV를 틀어 이리저리 채널을 돌렸다. 추석 특선 영화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어느 영화 채널에서 내가 좋아했던 영화인 '비긴어게인'의 마지막 장면이 나오고 었고 리모컨을 누르던 손놀림은 멈췄다. 주인공 그레타가 자신이 만든 노래 'Lost stars'를 옛 연인 데이브가 열창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장면. 노래 가사가 번역되어 자막으로 나오고, 예나 지금이나 다시 들어도 시적인 가사들이 계속되는 가운데, 그레타의 눈물이 차오르는 때에 뜬금없이 나도 눈물이 차올랐다. 정확히 어느 부분에서 울컥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연휴는 오롯이 휴식을 위한 시간으로 소진했고, 할머니의 납골당을 다녀온 것과 추석 당일 둥글게 뜬 보름달을 보러 밖을 나간 일 이외에는 집에 콕 들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마치 다음 해의 자동차 보험료를 절약하기 위해, 그동안 출장 다니느라 훌쩍 늘어나버린 내 주행거리를 잠시나마 줄여보려는 것처럼. 주로 먹고, 자고, 책을 읽고, TV를 보는 데에 하루를 썼다. 찌뿌둥했던 몸도 제자리를 찾아갔고, 거칠었던 피부도 어느새 부드러워진 느낌이었다.



그렇게 일주일에 가까운 휴식을 취하고 다시 몇 km를 달려 인천으로 올라왔다. 다시 마일리지를 쌓아야 할 시간. 부장님은 날 보시자마자, 얼굴이 좋아졌다고 했다. 연휴기간 중에 좋은 일이 있었냐며. 다른 사람이 알아차릴 정도니,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휴식 성공(?)한 느낌. 각자의 출장지로 떠났다 연휴까지 보내고 돌아와, 오랜만에 얼굴을 뵙게 된 선배들은 모두 나를 반가워했다. 놀리는 뉘앙스였지만, 누군가는 그리웠다고까지 표현했다. 오랜만의 출근이 두렵기도 했지만 이러나저러나 반가워해 주니 다행이었다. 넉넉히 잘 쉬었고, 동료들이 반가울 만큼의 충분한 시간이었다. 더할 나위 없이 적당했던 기간.


고작 이틀 근무였지만 업무량은 만만치 않았고, 곧이어 다시 맞이한 주말과 함께 찾아온 휴식. 밤새 내린 비로 늦게까지 갈피를 못 잡던 계절의 나침반은 이제야 제자리를 찾는 듯했다. 마침내 제대로 된 가을이 이제야. 다행히 비는 그쳤고, 빨래를 해도 될 것 같은 날씨였다. 고작 이틀의 근무여서 빨랫감이 없는 듯했으나, 생각해 보니 그간 덮고 있었던 여름 이불과, 신발, 크게 오염되진 않아서 더 입을까 싶어 놔두었던 여름 바지들. 아직 남은 여름의 흔적들이 눈에 띄었다. 몸을 일으켜 빨랫감을 챙기고 세탁실로 가 세탁기를 돌렸다.



빈 빨래바구니를 들고 방으로 돌아온 후, 빨래가 다 되길 기다리면서 글을 썼다. 연휴 기간 중 눈시울을 붉히게 했던 'Lost stars'를 틀어놓고.


다음 주엔 또 오랜만의 장거리 출장이다. 이번 출장부터는 내려간 기온만큼 부디 덜 피로하기를, 덜 지치기를 간절히 바랐다. 잘 보충한 에너지를 가지고 새로운 곳으로 멀리 떠나야 할 때, 귀에 노랫말이 딱 맞게 들려온다.


사냥 시즌이에요, 이 어린양은 또 달려야 해요.




기숙사 세탁실에는 안내 문구가 붙어져 있다. "다음 이용자를 위해 시간 맞춰 세탁물을 찾아가 주세요." 세탁기의 종료음 음악 소리가 '이제 쉴 만큼 쉬었잖아, 또 움직여야지?'하고 말하는 것 같다. 휴식이건 일이건 적당한 타이밍에 치고 빠져줘야 한다고. 그래야 무엇이든 충분하고 다른 이들에게 폐가 되지 않은 채 적당히 아쉽고, 그우니까. 그러면서 어느 순간엔 만족할 수 있지 않으려나.


가져온 빨래들은 탈탈 털어 가지런하게 널었다. 눈에 보이진 않는 여름의 찌든 흔적들까지 깨끗하게 잘 세탁되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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