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을 보내러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몇 페이지 넘기지 못한 채 자꾸만 전자책을 무릎 위로 떨어뜨렸다. 연휴 직전까지 출장이었고 몸은 점점 축이 나는 듯했다. 기차역까지 오는 시내버스 안에서도 꾸벅꾸벅 졸았거늘, 당연히 기차 안에서 졸지 않을 수 있었을까. 후다닥 전자책을 끄고 머리를 기댄 채 잠을 청했다. 내 옆자리엔 앳되고 살짝은 슬퍼 보이는 얼굴의 군인이 앉아있었는데, 그 친구는 자기 몸집만 한 큰 군용 가방을 베고 자고 있었다. 출장을 다니며 외지 생활을 하고 있는 나와, 당연히 외지생활 중일 군인 친구가 나란히 앉아 있으니 떠돌이 영혼들이 안쓰럽게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행히 집으로 내려가는 기차는 당일 앞 시간대 열차에 자리가 나서, 후다닥 열차를 바꾸어 예상시간보다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혹시나 집에 일찍 도착하면 놀랄까 싶어 엄마에게 미리 전화를 걸었건만, 엄마는 통화 중이었다. 긴 연휴를 앞두고 긴장의 끈이 풀렸던 건지, 피곤에 지친 몸은 점점 더 쪼그라들었고 갑자기 문득 연휴 기간 중에 탈이 났다간, 지금의 이 시국엔 응급실에 함부로 가지도 못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대구에 도착하면 동네 병원에 들러 수액이나 맞아야겠다 싶었다. 어차피 엄마는 지금 이 시간보다 내가 더 늦게 올 거라고 알고 있을 테니, 괜한 걱정은 뒤로 미뤄줘야겠다 생각하고 역에 내리자마자 택시를 타고 늘 다니던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 선생님은 그냥 몸살 정도의 약을 지어주고 말려고 하셨는데, 수액을 맞고 싶다고 재빨리 말씀드렸다. 과잉진료 의뢰(?). 그렇게 대구에 도착하자마자 무거운 출장 가방을 내려놓고 한 시간 동안 수액을 맞았다. 기차에서 내내 졸았던 탓에 잠은 오지 않았지만, 눈은 점점 떠지는 느낌. 역시 익숙한 곳에 오면 긴장의 끈이 풀리지만, 다행히 대처능력은 올라간다.
집에 도착한 다음날은 밀린 일을 하느라 반나절을 보냈고, 저녁엔 최근 승진한 아끼던 후배를 만나 승진턱을 얻어먹었다. 다행히 나아진 몸 덕분에 빈틈없는 하루를 보냈다. 돈을 좀 더 주더라도 수액 맞기를 잘했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탓에 잠을 설치긴 했지만,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깼다가 다시 잠에 드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바깥 음식만 주구장창 먹다가 엄마가 해주는 집밥을 먹으니, 적은 양을 먹어도 완전한 듯했다. 쉽게 배가 부르고 쉽게 잠에 들었다. 가을방학이라고나 할까. 생각해 보니 바삐 살던 나에게 갑자기 한 일주일 정도의 가을 방학이 주어진 듯했다. 다행히 방학 숙제는 없는.
업무특성상 출장 시에 항상 노트북을 갖고 다닌다. 어느 정도 일정량 충전이 돼있으면, 나는 일부러 노트북의 충전기를 빼고 사용한다. 전기를 잘 모르지만, 충전에 익숙해지면 언젠가는 충전기 없이는 잘 사용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렇게 노트북의 수명을 다루듯, 나는 스스로를 다뤘다. 잦은 충전보다는 한 번의 에너지도 어느 정도 제대로 소진하고 충전해야지만, 오래 나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러나 어떤 날은 완충인 줄 알고 길을 나섰지만 자세히 보니 에너지가 절반도 남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그러다 가끔은 이번처럼 수액을 맞는 극약처방을 내려야 할 때도 있고. 몸을 사려 최소한의 에너지는 남겨두려고 하는데 그 시점을 명확하게 알 수 없다. 더 쥐어짜고 써야 할지, 아니면 지금에 멈춰야 할지.
적정한 때에, 적당한 양을 충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면 갈수록 내 몸과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그러니 점점두려워진다. 노트북처럼 몇 퍼센트가 남았는지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적당한 시점에 맺고 끊는 것을 잘 해낼 수 있을 텐데.
기숙사에서 사용하는 화장거울 바로 옆에는 외할머니와 찍은 대학 졸업식 사진이 있다. 올봄에 하늘나라로 떠나신 할머니. 그래서 아침마다 세수를 하고 화장품을 바르며, 늘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곤 했다. "할머니, 안녕? 나 잘 살고 있지요?" 왜 그 질문을 건네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늘 그렇게 물었다. 의문으로 가득 찬 하루를 시작하며, 내가 잘 살고 있는지를 확인받고 싶었던 걸까. 어쩌면 그 질문으로 지금 나의 용량이 몇 퍼센트쯤에 와 있는지를 자문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추석 이틀 전, 일찌감치 납골당에 들러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뵙고 왔다. 그간덥고 버거웠던 이 여름의 기세를 모른 채 조용한 산속에서 평온하셨기를 바랐다.
두 번의 절을 올리며, 한 번은 그녀의 안부를 물었고, 한 번은 역시 또 내가 잘 살고 있는지를 물었다. 속으로 조용히 건넨 질문에, 오랜만에 마주한 그녀는 답을 하는 것만 같았다.물론이지, 넌 열심히 잘 살고 있다고. 그리고 할머니 눈엔 여전히 예쁘고 곱다고. 모두 이 뜨거운 여름을 살아내느라 고생이 많았다고도.
연휴가 끝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할 때에는 그저 충전만 된 것이 아니라, 부디 내 품의 용량이 더 커져있으면 좋겠다. 몸은 어쩌지 못하더라도 마음의 품은 좀 더 여유롭게 늘릴 수 있지 않으려나. 그렇게 적당히 완충된 몸과 마음으로 다시금 기차에 올라탈 수 있기를.
기숙사로 돌아가 나는 또 매일 그녀에게 같은 질문을 건넬 것이다. 그러나 바라건대 언젠가는 그녀보다 바로 옆 거울 속의 내가 먼저 답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듣고 싶은답은 정해져 있고, 나는 그 답만 해주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