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모종의 흙이 모종(某種)의 자양분으로

봄날의 분갈이

by autumn dew

봄이 되면 살아나지 않을까 했던 테이블 야자가 끝내 유명을 달리했다. 혹시 모를 희망에 물을 주며 놔뒀거늘, 이미 죽어버린 줄기에 약간의 힘만 가했는데 쏙-하고 뿌리째 뽑혀버렸다. 그렇게 주인을 잃고 흙만 덩그러니 남은 빈 화분은 원래의 자리에 그대로 두기엔 심히 어색하여 베란다에 가져다 놓았다. 봄이니 꽃을 사서 심어야지-하고 생각만 해두었다가 얼마 전, 우연히 눈에 들어오는 식물을 발견했다. 이름은 '아비스'. 푸릇푸릇한 연둣빛 잎이 마음에 들었고, 집에 있는 빈 화분이 생각 나 옮겨 심을 생각으로 그렇게 새 친구를 입양했다.


마음은 앞섰지만 초보 식집사다 보니, 마땅한 가드닝 도구가 없어서 신문지를 펴고 고무장갑을 낀 채 분갈이를 했다. 식물들도 이사를 하면 몸살을 하고 처음 심겨있던 흙과 같이 옮겨져야 잘 살 수 있다 하여, 최대한 원래 모종에 있던 흙들을 살려 화분에 옮겼다. 그리곤 이전에 갖고 있던 화분의 흙으로부터 새 화분의 흙을 보충했고 그러고도 남은 흙은 갖고 있던 화분들 중 그간 물을 주다 흙이 소실되었던 화분들에 보충했다.


어느 곳의 흙이 옮겨져 또 다른 곳의 흙이 되고 그곳에서 또 다른 생명체를 키워낸다.

터전이라는 곳에 뿌리내려 영영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죽어가고 그 자리에 또 새로운 것들을 맞이한다. 어쩌면 그 화분에 있던 흙이 이리 옮겨지고 저리 옮겨지다 제자리로 간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한 생명체의 터전을 쥐락펴락한 내 손의 영향력이 적지 않음을 깨닫는다.



첫 발령지에서 만난 나의 첫 사수였던 선배와 종종 안부 연락을 주고받는다. 내가 사택으로 이사를 했다는 소식에 냉장고를 샀는지부터 물어보던 그녀는 얼마 전, 내가 드디어 냉장고를 샀다고 말하자마자 동시에 집 주소를 부르라며 보채더니 기어코 또 피와 살이 될 만한 국거리들을 하루 만에 택배로 보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지만 가끔 그녀는 이렇게 나를 먹여 살린다.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동안, 낯선 곳에서 헤매지 않게 함께 따라다녀준 모종의 흙처럼.


실 뿌리를 많이 만들고 그 안에 머금고 있는 흙을 많이 만들어놔야 어디든 옮겨 다녀도 잘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어느 곳에 가서든 이방인이되, 이방인이 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제는 7년 전이 되어버린, 2018년 여름. 리투아니아를 여행할 당시, 한국인이 드문 그곳을 여행하며 4일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매일 오가던 길목에 있던 어느 라멘 집을 여러 번 갔던 기억이 난다. 한국인이 먹기엔 다소 짠맛이기도 했지만, 조금이라도 칼칼한 음식이 먹고 싶어 찾아갔던 곳. 두 번째 갔을 때는 마치 현지 유학생 마냥 자연스럽게 착석해 주문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그런 느낌이 좋았다. 이곳이 낯선 곳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그 느낌이.



수도인 빌뉴스에서 머물렀던 숙소가 있었는데, 조식을 먹으러 갈 때마다 동양인이라곤 나와 동생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하루, 빌뉴스에서 멀지 않은 카우나스라는 근교 도시를 여행했던 날. 일정 중 방문한 어느 성당에서, 독일인 부부가 먼저 말을 걸었다. 우리 오늘 아침 호텔 식당에서 보지 않았냐고. 그 수많은 외국인들 중 동양인이라곤 우리뿐이었으니, 그들은 우릴 단번에 알아보았고 그제야 나는 며칠간 호텔 식당에 많았던 외국인들이 독일인 단체관광객임을 알았다. 그들은 그날이 리투아니아에서의 마지막 일정이라고 했고, 우리는 하루 더 묵어야 했기에 서로 즐거운 여정을 기원한다며 인사하고 헤어졌다. 이방인들이 다시 만나 이방인이 아닌 것처럼 헤어졌다. 낯선 곳에서 누군가와 재회하며 아는 사이인 것처럼 인사를 주고받는 그 느낌이 참 좋았다. 그럴 때마다 이곳이 낯선 곳이 아닌 것처럼 느껴져서. 그렇게 가는 곳마다 조금이지만 그곳의 흙을 묻혀 다음 날을 보냈고, 그렇게 일부는 내 것으로 만들어 돌아왔다.



사람도 분갈이에 분갈이를 거듭하며 이곳저곳에 흙을 묻혀오면 이 잔뿌리에 얼마나 다양한 흙을 머금게 될까. 흔한 말로 사람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고 하였는데, 마지막에 자리할 곳에선 내가 가진 자양분과 여기저기서 묻혀 온 갖가지 흙들로 인해 그곳이 어디든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고 평온하게 뿌리내릴 수 있기를 바란다.




평소보다 이른 금요일의 조기 퇴근.

사무실에 두었던 빈 화분이 눈에 들어와, 조심히 챙겨 퇴근했다. 그렇게 일찍 퇴근한 김에, 꽃집에 들러 새로운 모종을 샀고 집으로 돌아와 옮겨 심었다. 이렇게 또 다른 생명체의 터전을 쥐락펴락한다. 하지만 여전히 원래의 흙을 최대한 보존한 채 새로운 흙을 더한다. 이렇게 경험치를 넓혀가는 거야-하고 혼잣말로 새로운 곳에서 잘 적응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그렇게 이 친구의 잔뿌리에 나를 묻히며.

이 일은, 이 글은, 또 나의 잔뿌리에 묻나고 있을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