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이 또 있을까
오랜만에 파주에 갔다.
희한하게도 나의 예상 출장지 목록에 없는 파주를 한 해에 한 번씩은 꼭 다녀왔다. 감사실로 발령받아 온 첫 해에는 초보 감사인답게 감사교육원에 교육을 받으러, 그 이듬해에는 어버이날을 기념해 상경한 부모님과 나들이로. 그리고 이번 주말, 다른 곳보다 더딘 봄을 맞고 있을지 모를 곳에서 마지막 겨울볕을 쬐러.
2년 전, 감사교육원에 교육을 받았던 5일 동안은 말할 일이 없어 입에서 단내가 날 것만 같았다. 각기 다른 기관에서 온 사람들과 친분을 쌓을 수도 있었지만, 맡고 있는 일의 특성상 서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곤 각자가 소속된 곳의 흉을 보는 일이 될 것만 같아, 일부러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그렇게 마침내 5일간의 교육을 끝내고, 이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쉬워 홀로 점심을 먹고 출판단지에 들렀다 돌아간 기억이 있다. 역시나 타인과 말할 일이 없는 것은 매한가지였지만, 말을 하지 않는 것도 애를 써야 하는 사회인에게,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묵언에는 오직 평온함 뿐이었다.
이듬해에 부모님을 모시고 다시금 파주를 방문했을 때에는 보양식을 먹고 임진각에 갔었다. 가정의 달, 5월이라 그런지 어디나 사람들로 붐볐고 조금은 정신없었지만 또 언제 이 먼 곳까지 부모님과 와보겠나 싶어 알뜰하게 시간을 채워 머릿속에 그곳의 흔적을 남겼다. 감사교육원을 다녀올 때에도, 부모님과 다녀왔을 때에도 파주에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길은 물리적으로는 먼 거리가 아닌데도 정체구간이 꽤 길었고, 발을 계속 뗐다 붙였다 해야 하는 오랜 운전이 버거웠다.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왔음에도 돌아오는 길, 정체에 지쳐버려서 다음에 또 갔다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럼에도 또 다녀온 파주. 이렇게 매년 오게 될 줄은 몰랐다. 마침 방문한 카페에 비치된 서적이 내가 너무나 애정하는 폴란드의 그단스크를 담고 있어서 그 우연마저 소중했다. 그렇게 책도 읽고 음악도 들으며, 이번에도 시간을 꽉꽉 채워 머릿속에 흔적을 남겨 돌아왔고, 돌아오는 길은 역시나 정체되었다. 아, 이러니까 다시 올 엄두를 내지 못했지, 하고 길 위에선 내내 투정을 부렸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선 그럼에도 또 다음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난달, 본가에서 설 명절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출장과 연휴를 연이어 보내고 온 탓에 집에서 키우던 화분들이 하나를 제외하고 모두 죽어있었다. 보일러가 아닌 중앙난방 식의 오래된 아파트인지라 나는 언제든 들어와도 따뜻하다는 점이 나쁘지 않았는데, 화분에게는 아무리 따뜻해도 물을 주는 이가 없다면 건조한 사막과 다름없던 듯했다. 한 달에 한 번 물을 주면 되는 것 하나를 제외하고, 나머지 화분들은 모두 바싹 말라죽어있었고 그 광경은 처참했다.
미안한 마음과 달리 죽은 화분을 그대로 방에 두고 싶지는 않아 그것들을 모두 베란다에 옮겨 두었다. 그러다 얼마 전 어느 주말. 죽은 화분들을 통째로 비닐에 담아 꽁꽁 싸맨 뒤, 차에 싣고 화원 단지에 갔다. 새로운 아이들을 입양하면서 화분에 모두 새로 옮겨 심어 올 참이었다.
화원에 들어서자 사장님이 물어보셨다
"어떤 거 찾으세요? 꽃?"
나는 단칼에 답했다.
"아뇨. 잘 안 죽는 화분이요. 물을 자주 안 줘도 되는 걸로요."
봄이라 화원에는 알록달록한 꽃화분이 많았지만, 이제 내 취향을 반영할 수는 없었다. 오래 견딜 수 있는 것들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사장님의 추천으로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되는 것들로 빈 화분들을 다시 채웠다. 사장님은 어떻게든 식물들을 잘 키워보려고 이것저것 물어보는 나를 기특하게 여기시는 듯했고, 마지막에 계산을 하는데 웃으며 말씀하셨다.
"아가씨, 잘 키워보고 다음에도 또 와요."
다음에 또 오라는 말은 어느 가게에서나 듣는 당연한 인사말인데, 그날따라 그 말이 조금 이상하게 들렸다. 다음에도 또 오라는 것은, 이번에 데려간 녀석들이 또 죽는다는 말인데. 사장님, 전 얘네랑 오래 같이 살고 싶은데 다음에 또 오라고 하시면 어떡해요.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사장님의 다정한 마지막 인사를 곱씹으면서 생각했다. 병원에서 만난 친절한 의사 선생님이 다음에 다시 만나자 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다시 만나면 안 되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그 마음이 갸륵해 또 봤으면 하는 사람. 그렇다면 나도 나의 일로 마주하는 이들과 이렇게 될 수 있을까. 다시 보면 안 되는 감사인이지만, 그럼에도 그 노력이 가상해 사람으로서는 다시 봤으면 하는 사람으로. 하고 있는 일로 인해 사람들과 불편을 느낄 때마다, 화원 사장님을 떠올리기로 했다. 사장님도 나의 정성이 갸륵해 나를 손님으로 더 보고 싶었을 뿐, 내가 키우는 녀석들이 죽기를 바라지 않으실 것이다.
'다음에 또 오세요.'란 말을 들은 적도 없었고 또 갈 일이 있을까 싶었던 파주를 다시금 다녀왔다. 그리고 오늘, 역시나 '다음에 또 오세요.'란 말을 들은 적도 없었고 또 갈 일이 있을까 싶었던 곳으로 다시금 출장을 떠나왔다. 그럼에도 이곳을 찾아온 목적에 충실하고자 한다.
키우던 화분이 죽으면, 다시 또 사장님을 찾아 화원에 갈 것이다. '이번에 또 왔어요.' 하고. 그렇게 이번 주의 일정을 다 마치고 나서, 차마 입으로 말할 순 없겠지만 떠날 때엔 속으로 홀로 조용히 인사를 건넬 것이다. 부득이하게 왔지만, 잘 있다 간다고.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우연으로 다음이 있다면 그때 또 오겠다고도.
'다음에 또 오세요.'란 말을 듣지는 못하였어도, '다음이 있다면 또 갈게요.'하고 혼잣말을 되뇌어본다. 다음이 없다는 것은 단정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