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utumn dew Apr 16. 2023

엄마와 그녀의 엄마, 그 딸과 그녀의 딸에게

Frei Aber Froh

엄마가 돌아왔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외할머니를 돌보러 집을 떠났던 엄마. 친정엄마와 2박 3일을 몇 회차나 찍었는지 모르겠다. 할머니 집에서 2박 3일을 보내고, 하루는 집으로 돌아와 잠만 자고, 다시 할머니집에서 2박 3일.

돌이켜보니 그새 보름 정도의 시간이 되었다고 했다. 엄마 없는 시간 동안 남은 세 식구는 서로를 챙기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챙겼다. 평소 홀로 저녁을 먹어야 할 때 라면 밖에 모르던 아빠는 을 데워 밥을 먹었고, 나와 동생도 어떻게든 끼니를 챙겨 먹고 퇴근 후 각자 하던 운동 이어갔. 별다른 노력보단 스스로를 챙기며 평소다운 삶을 이어가는 것만이 서로를 안심케 하는 일이었기에.

한없이 나약했던 할머니는 주말에 할머니집을 찾아간 아빠와 우리 손을 잡으며 아기처럼 울기도 했다. 좀처럼 우는 일이 없던 아빠도 맨 얼굴 세수를 연신하며 눈물을 참아내는 듯 보였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드라마는 가을마다 다시 찾아볼 만큼 굉장히 좋아하는 드라마인데, 그중 특히 마음에 와닿았던 대사가 있다.

주인공인 송아와 준영은 브람스의 F.A.E 소나타를 함께 연주한다. 연주를 끝낸 송아는 평생을 독신으로 산 고독한 음악가, 브람스를 닮은 준영에게 진심 어린 이별을 고한다.


"오늘 우리 연주한 곡이요.
F.A.E(Frei Aber Einsam) 소나타
'자유롭지만 고독하게'라는 뜻이잖아요.

하지만 나는 준영 씨가 자유롭지만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

나중에 알았다.

그날 우리가 연주한 곡은 자유롭지만 고독한 소나타였지만,

브람스가 좋아했던 문구는 F.A.F(Frei Aber Froh).
'자유롭지만 행복하게'였다는 것을.



자유롭지만 행복했으면 좋겠다니.

어떤 곳, 어떤 순간이든 그를 아끼는 사람이라면 그가 자유롭기는 바랄 테지만 고독하기는 바라진 않을 테다. 자유롭되, 다만 행복하게. 그리고 자유롭지만 행복하라는 인사, 이보다 더 상대의 자유의지를 인정하면서 그 앞날이 외롭지 않기를 바라는 완전한 인사말이 있을까.



그녀들이 함께 보낸 시간은 서로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가 되면서부터 계속 건강이 나빠졌던 할머니. 맏딸로 다른 형제들이 다 알지 못하는 녹록지 않은 엄마의 생을 홀로 더 일찍, 더 오래 기억하고 있는 딸. 그렇게 서로의 자유를 위한다는 이유로 드러내지 않았던 각자의 고독이 함께했던 그 시간에 조금은 채워졌던 걸지도 모르겠다.

보름 간의 갸륵한 보살핌 덕분이었을까. 할머니는 다행히, 다소 기적에 가까운 느낌으로 건강을 회복하셨고 비로소 딸에게 집으로 돌아갈 것을 주문했다. 서로로부터의 자유를 다시금 되찾게 려는, 다만 '자유롭지만 고독하게'에서 '자유롭지만 행복하게'를 표방한 선언. 할머니는 다니시던 주간보호센터를 다시 나가게 되셨는데 마치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용사처럼(그들에겐 전쟁에 버금가는 일이 맞다) 다른 할머니들의 환영을 받았다 하고, 엄마도 덕분에 조금씩 일상을 회복하고 있다.




그들이 그렇게 고군분투하고 있는 동안 나도 나대로 공장을 돌리느라 바빴다. 하- 혼자 사무실을 쓰는 곳으로 발령받아 왔을 때엔 사실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살고 싶었는데 아마 고독하게 살긴 이번 생에 틀린 듯하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리도 바쁜지 고독할 겨를이 없다.

그래도 '자유롭지만 행복하게'는 계속 도전해 봐도 되지 않을까. 지나고 보니, 다행히 지금껏 살아온 생이 고독보단 행복에 더 가까웠던 것 같아서.



자유롭지만, 행복하게.

친애하는 나의 엄마와 엄마의 엄마, 그리고 그녀의 딸과 그 딸의 딸. 그렇게, 우리 모두, 이제 자유롭지만 행복해지자. 생의 마지막까지 각자의 진정한 자유를 응원하면서.


그것만으로 이미 우린 고독한 삶은 아니니.

작가의 이전글 머리를 질끈 묶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