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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Apr 23. 2023

밥 먹자고 해줘서 고마워

뜻밖의 제안

본디 나는, 보여주기 식의 친분을 꺼리는 편이다. 그래서 가끔 "나 이 사람도 잘 알고, 저 사람도 잘 알고, 그 사람도 잘 알지."하고 자신의 인맥을 과시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속으로 불편했다. 그들도 과연 당신을 그렇게 생각하겠냐고 따져 묻고 싶기도 했다.


나에게 친분이란 "그 사람 잘 알아"하는 것보다, "그 사람 좋은 사람이지."라고 말하는 거라. 그리고 그가 좋은 사람이니까 내가 친하게 지내고 좋아하는 것이지, 친한 사이라 내가 그를 잘 안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나 자신도 잘 모르겠는데, 누가 누굴 잘 안다고 말하는 건지.




직장생활을 하며 다행히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돌이켜보니, 그들과 진정으로 가까워지는 데엔 직장 외의 시간과 장소에서 마주한 순간들이 필요했다. 9 to 6의 피상적인 시간만으론 누군가와 진으로 가까워질 수 없었다. 지금껏 틈틈이 연락하며 지내고 있는 들은 모두 따로 만나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이니까.


그러나 이런 대상이 후배로 바뀌게 되었을 때엔 이야기가 달라졌다. 나도 나름 개인적인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세대인데 단순히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후배에게 개인적인 시간을 내달라고 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욕심이었기에. 나이가 어릴수록, 연차가 멀어질수록 그들은 더 어려워졌다.


항상 각하길, 나는 평일 9시간 동안만 저들과 연락하는 관계라고. 그 외의 시간은 그냥 지인 정도? 아니, 그것도 과하다. 그냥 같은 대구시민.



그러다 지난주 주말, 오전에 출장업무가 생겼다. 명이 조를 맞춰하는 일이었고, 지난번에도 같이 짝을 맞췄던 후배와 또 한 번 짝이 되었다.


출장을 앞둔 어느 날, 파트너 후배를 복도에서 만났다. "그날 우리 같이 나가는 거 알 있?" 하고 인사를 건넸는데, 후배가 으며 말했다.


"과장님, 저희 그날 끝나고 점심 먹을까요?"






세상에- 아기주임(심지어 나와 띠동갑)이 나에게 점심을 먹자고 하다니. 어른스럽게 할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던 어여쁜 친구데, 그런 그녀가 나에게 점심식사 제안! 예상 밖이었어서 그런지 다소 감동적(?)이었다고나 할까.


"!" 하고 그녀의 제안을 덥석 물었다.

그리고 지난주, 후배와 을 끝마치고 점심을 먹고 커피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집으로 돌아와서씩씩하게 직장생활을 잘하고 있는 친구에게 조언이랍시고 너무 꼰대같이 말한 건 아닌가 살짝 후회가 밀려오긴 했지만, 그래도 훈훈한 일과였던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불현듯 궁금했다. 그간 내가 시간을 내어달라 선배들에게 내밀었던 제안들은 그들에게 어떤 느낌이었을까. 이 정도의 기쁨은 아니었어도 그들에게도 귀찮음보단 반가움이었어야 할 텐데. 나도 그녀처럼 그런 후배이고 싶어졌다.


그리고 또 한 번 느꼈다.

종종 후배들은 내 직장생활의 거울이 된다는 걸.



이러나저러나,

먼저 밥 먹자고 해줘서 고마워.

시간을 내달라고 해줘서 고마워.


사실 그날 후배에게, 먼저 밥 먹자고 말해줘서 고마웠다고 말했다. 그녀는 되려 자신의 제안을 내가 흔쾌히 받아줘서 다행이었다고 답했, 난 그 말에 또 한 번 고마웠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속에서, 야속하지만 어떤 관계 그와 만나는 시간에 대한 '기'가 없으면 나의 시간을 할애하는 이란 쉽지 않다.



그들과 내가 함께한 시간이 의미 있 바란다.

난 이곳에 돈만 벌온 게 아니라,

사람도 벌온 거라.


바쁘다고 핑계를 대고 만나주지 않는 사람과 바쁘더라도 흔쾌히 시간을 내주는 사람의 차이가 관계의 진정성을 가른다.

시간이야말로 확실한 진심의 지표다.

- 림태주, '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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