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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Apr 09. 2023

머리를 질끈 묶고

선인장의 물 한 모금

데이브레이크의 '머리가 자란다'라는 노래를 한창 힘들었던 20대의 한가운데, 취준생부터 사회초년생에 이르기까지 참 많이 들었었다. 가사는 생각이 많아 자꾸 머리를 떨구게 되는 화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머리가 무거운 것 같은 그는 그 무게를 덜어내고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네 미장원에 들러 머리를 자른다. 그렇게 엉켜버린 머리를, 청춘의 일부를 잘라낸다고 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자려고 누웠는데, 불쑥 눈물이 흐른다. 왜 눈물이 흐르는지는 모르겠지만 문득 흘러내린 눈물이 머리를 다시 자라게 하진 않을까(누워서 울면 눈물에 머리가 젖으니, 나무에 물 주는 느낌으로)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나오면서- 빨리 잠에 들어야겠다고 한다. 그리곤 꿈을 꾼다고(꿈의 두 가지 의미를 다 내포한 듯하다), 아직 나는 자라고 있다고- 하는 뭐 이런 내용이다.


청춘의 한가운데에서 깊은 밤, 눈물로 베갯잇을 적셔본 경험이 없는 사람 있으랴. 눈물이 머리를 또 자라게 해 머리가 무거워질까 봐 빨리 잠에 들어야겠다는 6분 여의 그 노래는 힘들던 그 시절, 나에겐 자기 전에 듣는 자장가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10여 년이 흐른 지금.

어느 순간 눈물 흐를 겨를 없이 피곤에 절어 잠에 드는 모습을 보며, 얼마 전 그 노래가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그 노래를 잊고 살았다는 것도. 사실 울 일 없이 잠에 든다는 건데, 어쩌면 다행인 걸까.



눈물을 먹고 더 자라 버린 생각만큼 머릿속이 복잡했던 그때에 비해, 지금은 그 생각을 다 붙들어 매질 못하고 있다. 그땐 시간의 속도에 비해 너무 많은 생각을 했다면, 지금은 생각을 담는 일이 시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 불현듯 깨우치는 깨달음과 다짐들이 쉽게 잊히고 기억조차 남아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과연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번쩍이듯 나타났다 사라지고 있나. 얼마나 많은 것들을 흘리고 다니는 걸까. 사실 실체가 없는 생각이었던 건 아닐까.


그렇다고 그때처럼 눈물로 생각을 키우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이젠 예전만큼 생각을 많이 하지 않지도, 담아두지도 않는다는 게 문제인데 그렇다고 그때처럼 아프고 싶진 않다. 단지, 예전보다 생각의 겨를이 없어진 지금에 그나마 몇 안 되는 나를 위한 생각의 조각들, 그마저도 잃지 말자는 뜻이지. 그게 나를 얼마나 또 키워낼지는 모르니까.



나이를 더 먹었다고 해서, 자라지 않는 건 아니지 않나. 단지, 물을 적게 먹는 꼿꼿한 선인장처럼 아주 더디게 자라는 것뿐.


그래서 그 생각의 조각들을 지금처럼 자주 써둔다. 흘려보내지 않으려. 이젠 짧은 시간 5cm의 성장을 할 수 있는 때가 아니라, 1cm의 성장을 오래 지켜내야 하는 때니까.




날씨가 따뜻해졌다.

흐드러졌던 머리를 높게 묶어, 답답해 보였던 얼굴의 커튼을 걷어내야 할 때다.

흘리고 다니지 말자. 꼭 묶어 정돈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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