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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May 07. 2023

묘(猫)한 행보

on the catwalk

나는 동물을 막 그렇게 좋아하지도, 또 그렇다고 막 싫어하지도 않는다. 일곱 살 무렵 동네강아지에게 쫓긴 이후로 를 무서워하게 되었고, 고양이는 알아서 나를 피해주니 친해질 겨를이 없었다. 그렇다고 정말 얘네들에게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머-얼리서 보거나 영상으로 보는 건 좋아한다. 귀여운 건 참기 힘드니까.


와 고양이 중 무엇이 더 좋냐 물으면 항상 를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 정 많고 조금 더 관계지향적인 가 유아독존의 고양이보다는 나아 보였거든.



그러던 얼마 전, 어느 묘한 하루. 유독 묘한 고양이를 여럿 만났다. 그것도 심지어 도망가지 않는 고고한 고양이들을. (하루동안 얘네들을 다 만난 것이 좀 신기하긴 했다.) 다가오지 않고 그저 내가 내민 카메라 렌즈를 응시해 줘서 고마웠다. 는 목줄을 하고 있지 않는 한 무서워서 사진 찍을 엄두를 못 내는데, 고양이는 달려들지 않을 걸 알아서 두렵지 않았다.


도도하게 제 자리를 지키거나, 유유히 제 갈 길을 가는 그 녀석들이 그날따라 유독 부러웠다. 그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밀고 한참 사진을 찍어대고 나서 깨달았다. 여태껏 내가 고양이보다 를 좋아했던 건, 사실 고양이의 그 도도한 유아독존 살짝 질투했기 때문이란 걸. 관심을 갈구하지 않고 간섭받지 않고,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 고양이의 태도가 사실 난 부러웠던 것이다. 난 그들과 반대로 여태껏, 그리고 지금도 눈치를 많이 봐서 다소 피곤한 인생이거든. 그 부러움에 대한 반대급부로 를 더 좋아 말했던 것 같은 느낌.



세상 안락한 자세, '뭘 봐?'하고 따질 것 같은 눈빛


태초의 순수함과 자유분방함은 살아가며, 많은 관계와 상황 속에서 다듬어지고 일부는 상실된다. 어린 시절 갖고 있던 꿈이나 바람들이 얼마나 가공되고 덧대어져, 눈치 보며 저장된 걸까.

때 묻고 가끔은 형체가 뒤바뀌어진 상태를 원래 내 것인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왔을 테다. '다른 이름으로 저장'을 했어야 했는데, 그냥 덮어쓰기만 해 왔던 거지.




고양이처럼 살고 싶어 졌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제갈길을 가고 싶다.


살아오며, 그나마 눈치 보지 않고 꾸준히 이어온 일이 글을 쓰는 일이었다. 학창 시절, 예술제 때마다 그림보다는 시 쓰는 일(사실 준비물이 많은 것을 싫어했다)을 좋아했고, 내성적이었어도 인간관계를 유지해 나갔던 건 차마 말로 하지 못하는 진심을 담은 정제된 문자와 편지 덕분이기도 했다.


그래서 어쩌면 이곳이, 이 글들이 내겐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고양이 왈츠가 아니려나. 하기 싫은 일만 가득한 세상, 그나마 내가 좋아한다 생각하는 일 하나쯤은 하기 싫은 일들에 밀려 잊히거나 뒷전이 되게 하진 말아야지.


주로 내가 내려다봤는데, 그날은 얘네들이 날 내려다봤다


화려한 모델들이 걷는 패션쇼 runway의 다른 이름이 catwalk던데, 그렇게 나도 그들처럼 당당하게, 꾸준히, 꿋꿋이, 도도(가능할까)하게, 흔들림 없이 하나쯤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이어나가고 싶다. 주춤하며 눈치 보고 도중에 멈추지 말고, 저 끝까지 무리 없이. 그리고 언젠가 반환점을 돌아 마지막까지 완주하는 것을 목표로.






[속마음]

그래도 뭐, 주는 관심 사양할 필욘 없잖아?

아무리 마이웨이라도 가끔은 오아시스처럼 츄르를 건네줄 귀인을 만난다면 기쁘긴 할 거야, 호호호.


묘(猫)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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