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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Sep 10. 2023

마음의 보건실

보건실의 방학을 앞두고

언젠가, 그들과 보내는 시간을 '마음의 보건실에 다녀오는 시간'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우리는 지역의 직장인 모임 플랫폼 중, 글을 쓰는 모임에서 만났다. 많은 사람들 중 희한하게도 셋이 집이 가까웠고, 내가 차가 있다 보니 임이 끝나고 매번 그들을 집까지 바래다주곤 했다. 그 짧고 소소한 시간의 힘이 꽤나 컸나 보다. 사정상 모임이 이어지기 힘들어졌을 무렵, 아쉬운 마음에 우리는 다른 이들 모-올래 우리네 집 근처 모이기로 하 자발적인 모임을 만들었다.


한 달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씩 쓴 각자의 글 네 편을 갖고 동네에서 모이기로. 그렇게 시작한 만남이 1년을 훌쩍 넘겼다. 날짜가 조금 미뤄질지언정 모임 자체가 취소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우리는 서로의 글을 좋아했다. 퇴근 후 동네에 모여 하루를 버겁게 채웠던 시간들과는 전혀 다른, 3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의 글을 공유했다. 차마 가까운 이들에게조차 보여줄 수 없는 글들을 시험적으로 선보이며, 서로의 글에 베타테스터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말 못 할 고민을 각자의 언어로 풀어내며, 숨겨둔 상처와 흉터들은 바람을 쐤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의 시간을 '마음의 보건실'에 다녀오는 일이라 생각했다. 보건실은 원래 학교 다닐 때, 몸이 아프고 힘들 때 잠깐 내려가서 쉬다 오는 곳이잖나. 그들과의 시간은 나에게 그런 시간이었다. 직장인으로서의 내 일상과는 사뭇 다른 성격의 완전한 휴식.


예쁜 데다 씩씩하고 싹싹한 막내 '진'은 본인만의 문체로 가장 그녀 다운 글을 전한다. 나는 색깔이 뚜렷한 그녀의 시선과 화법이 좋아, 가족들에게 그녀의 글을 읽어준 적도 있다. 그리고 듬직한 데다 다정하기까지 한, 직장에서도 동료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용'. 그의 글은 우리만 보기에 아깝다고 자주 느낀다. 나는 그가 꼭 책을 내서, 그의 세계를 널리 알리기를 바란다.


회사에서 후배들에게도 '자꾸 나이 든 척 그만하라'는 잔소리를 듣기는 하는데,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그런지 나에게 나이는 어떤 측면에서는 자랑이자, 어떤 측면에서는 직급에 못 미치는 부끄러움이다. 한 살이라도 어린 사람들이 나를 친근하게 대해주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이들도 나를 편한 동네 언니, 누나처럼 편하게 대해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어찌 생각해 보면 신기한 인연이다. 친구도 아닌, 회사 밖의 사람들과 이렇게 오랜 기간, 정기적으로 만나오다니. 셋이 따로 모이기 이전까지의 시간을 합하면 아마 알고 지낸 지는 2년도 더 넘은 듯하다. 아무래도 서로의 성향도 잘 맞았을뿐더러, 다른 이들에게 쉬이 보여줄 순 없는 공통분모의 취미가 있어 지금껏 이렇게 인연을 이어왔을 테지.


파일명을 계절에 따라 짓다보니, 저런 모양으로 쌓였다


얼핏 다른 이들의 눈에는 대학(원)생 (양심이 찔린다) 스터디 모임처럼 보였을 우리는, 그간 동네의 여러 식당과 카페를 전전하며 저비용 고효율의 보람을 선사하며 헤어졌다. 얼마나 소중한 시간과 인연들인가. 다시 생각해 봐도 고맙고, 사랑스러운 사람들.


우리는 매번 모임 말미에 다음 달 4주의 글감을 정했다. 마지막 넷째 주는 자유주제로 두고, 3가지 주제를 항상 미리 정하고 헤어졌다. 그 주의 주제는 '붕대'였고, 주제에 대해 생각하다가 우연히 우리의 만남을 '마음의 보건실'로 지칭하며, 모임에 헌정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때 쓴 글의 일부를 아래와 같이 덧붙인다.


<한 달에 한 번, 보건실엔 불이 켜진다>

한 달에 한 번, 세 사람은 한 자리에 모여 각자의 붕대를 푼다. 꼭꼭 숨겨둔 비밀과 상처를 각자의 언어로 풀어낸다. 주변인들에겐 무던한 사람인 척 에피소드의 한 조각이 되어, 말하는 순간 공간에 흩어져버리고 마는 이야기들이 이곳에선 정제된 감정, 기록된 감정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그들이 모이는 곳은 한 달에 한 번, 치유를 위한 '마음의 보건실'이 된다.

'낫고 있는 중이야. 나아질 거야. 누구나 이렇게 상처받으며 살아.'하고 베이지색의 붕대에 쓰인 메시지가 벗겨지고 나면, 이들은 붕대 속 비밀과 상처를 공유하며 마침내 생채기는 공기를 쐰다.

다들 말했다. 꽁꽁 싸매지 말고, 자주 환기를 시켜줘야 빨리 낫는다고. 그러나 대놓고 환부를 드러내지 못하는 세 사람은 붕대를 풀어내는 방식이 비슷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글을 쓰는 일을 사랑했다. 그리고 이 일은 나아가 글을 쓰는 자신을, 이렇게 붕대를 풀어 공기를 쐐 회복해 가는 자신을 더 사랑하게 했다.

세 사람은 각자의 어설픈 지인들보다 실로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간 써 내려간 수많은 이야기들로 한 달에 한 번, 3시간 남짓 되는 시간 동안 말로 나눈 대화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된 걸지도 모른다.

고마운 사람들. 지나온 흉터를, 깊게 파인 일상의 주름들을, 가장 나다운 삶의 궤적으로 보이도록 해주는 사람들.

나의 글은 그대들과 함께 늘 공기를 쐬고, 빛을 쬡니다. 고맙습니다.

마음의 보건실에서 또 뵙겠습니다.


모임을 결성할 때 찍은 사진, 참으로 순수하구먼


그렇게 오래 뭉근하게 따뜻했던 우리는 아주 잠시, 애틋한 휴식을 갖는다. 우리 중 귀여움을 담당하고 있는 '진'이 반년정도 아주 잠시 저어-멀리 타국으로 떠나게 된 것이다. 그녀가 떠나 있는 동안에도 우리는 그 시간 동안 글을 쓰는 일을 잊지 않고 고이 이어나가다, 다시 만나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을 우리는 '방학'으로 로 했다. 내년 봄이 되면 개학하는.


가을과 겨울, 두 번의 계절은 보건실이 없더라도 각자 응급처치를 하며 살아내기로 한다. 그 사이 많은 재료를 모으고 모아, 다시 만났을 때 더 완전히 그리고 따뜻하게 쉬어낼 수 있기를.


그렇게 다시 찾아올 봄의 그 어느 날,

마음의 보건실에서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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