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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Sep 24. 2023

귀찮지만 좋아하는 일

그게 어쩌면 잘하는 일일지도

4년 전, 캐나다 동부여행 하이라이트 중 하나 나이아가라 폭포다. 계획 당시 토론토는 나에게 단지 내 꿈의 목적지였던 퀘벡가기 전에 지나경유 중 하나,  토론토 여행을 계획하중 나이아가라 폭포꼭 한 번 보고 싶. 그러나 토론토 도심에서 다소 어져 있던 그곳 와 동생 같은 뚜벅이 여행족이 찾아가기엔 여정만만치 아 보였, 그러다 우연 '마이리얼트립'이라는 앱을  여러 투어 프로그램을 별 신청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분에 우리는 우리의 일정에 맞 나이아가라 폭포 한국인 가이드의 프라이빗 투어를 미리 신청할 수 있었다.


비용이 얼마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아침에 가이드 분이 숙소를 찾아와 우리를 픽업한 다음 나이아가라 폭포와 그 주변의 관광지까지 다 돌아보고 저녁이 되기 전에 다시 토론토로 돌아오는 당일치기 일정이었다. 앱으로 예약을 하니, 얼마 안돼 가이드 아저씨(닉네임이 영어이름으로 된 '(블라블라) 아저씨'였던 걸로 기억한다)로부터 톡이 왔다.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즐길 수 있는 액티비티를 미리 예약해 두라는 연락이었다. 아저씨가 알려주시는 대로 한국에서 미리 예약을 진행했고, 무리 없이 캐나다로 떠났다. 그렇게 투어를 하루 앞두고 아저씨는 재차 숙소의 위치를 확인했는데, 마침내 당일 정확한 시간에 아저씨 본인의 차량을 가지고 숙소 앞에 나타났다. 한국에서 예약해, 외국에서 마주하는 만남이 실제로 성사되니 조금 신기하기도 했다. 아저씨는 젊었을 때 캐나다에 이민을 와 가족분들과 살고 계신 분이었고, 가는 길에 이런저런 본인의 인생사를 편하게 늘어놓으셨다.


고속도로 위에서 두런두런 아저씨의 캐나다 이민기(記)를 듣다 보니 어느새 나이아가라 폭포 주차장에 당도했다. 이윽고 아저씨는 그곳을 어떻게 돌아보면 좋은지, 이후에 어디서 점심을 먹으면 좋은지, 식사를 끝내고 몇 시까지 어디로 오면 되는지를 알려주신 뒤 홀연히 사라지셨다. 우리는 아저씨가 말해준 대로 자유여행과 점심을 만끽한 뒤 다시 를 만났고, 아저씨는 또 다른 근교 여행지로 우리를 데려다주셨다. 그리고 틈틈이 셀카모드가 아니고선 좀처럼 찍기 힘든 동생과의 투샷 사진도 여러 장 찍어주시며, 자유여행을 즐기는 데에 전혀 방해되지 않는 느낌으로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며 마지막까지 우리를 책임져 주셨다.



그리고 술을 잘하지 못하는 우리가 자유여행이었다면 절대 가지 않았을 법한 코스, 와이너리에도 방문했는데 아저씨가 권하는 와인은 마시는 족족 다 맛있었다. (발그레해진 얼굴로 돌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약간의 커미션(?)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도 의심의 여지없이, 홀린 듯 와인도 몇 병 사게 되었다. 물론 맛있었기에, 한국에 돌아와서도 가족들과 거이 나눠 마셨. 지금 생각해 보면 아저씨의 투어 덕분에 일생에 한 번 보기 힘든 광경들과 무난하게 마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폭포의 장관, 아름다운 마을의 풍경, 와이너리에서 마신 와인, 한 프레임에 담긴 우리 등등.




동기들과 친한 선후배들이 전국에 산재해 있는 관계로, 종종 나는 가이드를 자처해 내가 사는 곳이나 다녀오고 좋았던 곳에서 약속을 잡고 만남을 이어나가곤 한다. 그리고 대체로 손님들께서 만족했던 걸로 보아, 크게 실패한 적은 없었다. 이렇듯 지인들을 위해 일정을 계획하고 데리고 다니기를 좋아하는 나로서, 당시 아저씨의 삶은 꽤나 멋져 보였다. 대단한 수입원은 아니지만 그와 관계없이 매번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두렵지만 설레고 보람된 일. 그날 아저씨의 차에서 토론토로 돌아오던 길, 잠든 동생 옆에서 창밖을 바라보던 나는 '나도 언젠가 이런 일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여행에서 돌아오고 한 2년 정도가 지난 코시국의 어느 날. 당시 참여했던 글쓰기 모임에서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주제로 글을 써오기로 한 적이 있었다. 그때에 나는 '상상화(話)'라는 제목으로, 핀란드 헬싱키에한국인을 대상으로 '마이리얼트립'에 투어 프로그램을 올려두고 손님을 받는 개별 가이드로서의 상상 속 내 삶을 적어냈었다. 헬싱키는 지금껏 내가 다녀온 도시 중에서 가장 낮은 채도의 느낌을 갖고 있는 도시였고, 덕분에 어느 색의 사람이든 품어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유명하고 개성이 강한 관광지는 아니었지만, 단지 쉼이 필요한 누군가에게는 도시를 스치고, 스며들기 좋을 것도 같아서.


코시국의 한가운데였던 탓에, 당시 글을 쓰면서 상상만으로도 굉장히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헬싱키에 사는 젊은 청년이 된 내가 진행하는 투어의 이름은 '게으른 여행'. 그 안에서 나는 학업과 일을 병행하며 아르바이트로 가이드 활동을 하는 유학생으로 분해 있었다. 가상의 글이었음에도 경험을 바탕으로 여행 루트를 짜며, 몇 번 트램을 타고 어디를 가면 좋을지를 그려냈고, 글의 일부엔 가상의 친구 '비르타넨'(글을 쓰던 당시  2010년도 기준, 핀란드 10대 성씨 중 1위 (출처:위키백과)라는 정보를 얻었기에)이라는 등장인물도 있었다. 즐겁게 써간 그 글을 모임에서 사람들과 공유했을 때 왠지 모르게 기분이 묘했고, 소설을 쓰는 소설가들의 마음이 이런 느낌일까 하는 생각 들었다.



얼마 전, 국외출장을 앞둔 지인이 출장 일정을 제외한 남은 여가 시간에 투어를 다니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나에게 물어왔다. 해외여행을 한동안 다녀보지 않은 그는 걱정이 많아 보였다. 나도 그간 접속하지는 않았었지만 지난 경험을 살려 내가 사용했던 앱을 그에게 소개해줬고, 방문 예정인 도시의 적당한 일정에 후기가 괜찮은 투어를 찾아보고 신청해 보라 안내해 주었다. 그렇게 안내를 해주면서 나도 모르게, "아, 나이 들면 나도 이런 가이드 일을 해보고 싶었는데"하고 무의식 중에 말이 튀어나왔다. 갑자기 그 말이 왜 온 건지.


근데 그러고 보니, 맞아.

나 이런 일 하고 싶다고 했었지. 언젠가 마음에 드는 곳에 정착해 그곳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안내하는 일. 누군가를 어느 곳에 스치듯 스며들게 만드는 일을, 나는 하고 싶어 했다. 토론토에서 만난 아저씨의 차 안에서 했던 생각을 그간 잊고 살았던 것이다. 정년까지 일한다 해도, 요즘 60면 팔팔한 나이인데 은퇴하고 뭐 해야 하나. 그나저나 정년까지 일할 수나 있을까 생각하던 순간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저출산으로 사양이 되어가고 있는 교육계를 떠나게 되면, 무얼 하고 싶은지 그동안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지인의 앞에서 무심코 속마음을 내뱉고 나서야 다시금 깨달았다.




이번 달까지는 따 하고 있는 공부가 있는 관계로 그것부터 마무리하고 10월부터는 뭘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되지도 않는 영어지만 열심히 내뱉으며 살았던 때가 있었거늘, 어느새 원하는 바를 한국어로 말하기에도 어색해진 나 자신을 종종 마주한다.


우연한 계기로, 잊고 있었던 인생 이모작(?)의 꿈을 다시금 발견했다. 운이 좋다면 중년이 될 때까지는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장년, 노년이 되어서는 지금처럼 살 순 없을 테니 내가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을 하나 둘씩 찾아놔야지. 아, 그리고 모름지기 평점이 괜찮은 가이드라면 어색함을 풀어줄 수 있는 과하지 않 시기적절한 유머 능력을 갖춰야 하는데, 내 주변보통이 아닌 드립력의 지인들이 많으니 이들과 관계를 잘 유지해 나가야겠다. 그래야 지속적으로 절제된 유머 실력을 연마해 나갈 수 있을지 모른다.


요즘 선뜻 먼저 나서지는 못하면서 모고 싶어 하는 지인들이 있는데, 조금 귀찮지만 가을을 앞두고 그들과의 모임일정을 계획해 봐야겠다. 매번 내가 먼저 나서야 하는 게 귀찮다가도, 먼저 나서서 내 맘대로 계획할 수 있는 것이 한편으론 괜찮은 것도 같았다. 그리고 편안하고 유쾌한 아줌마 가이드의 꿈을 계속 품고 있다 보면 언젠가 혹시나 정말로 그렇게 살아볼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틈틈이 준비... 까지는 아니더라도 종종 모의테스트를 하며 조금씩 구체화해 보기로 한다.


귀찮은 것 치고는 좋아하는 일이니까.



그래, 그러고 보니 귀찮아도 좋아했던 일이야 말로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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