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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Oct 29. 2023

'회계'망측 탈출기

수험생이 된 광기의 직장인

한국나이로 스물아홉이었던 그 해. 친구들이 우르르 결혼을 했다. 한 둘도 아니고 그 해에 마치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한꺼번에 떠났다. 다들 인생의 다음 여정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만 뒤처지는 느낌. 조급한 마음이 밀려왔지만 그렇다고 결혼이란 게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나. 그때의 나는 다른  없이, 혼자서라도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성취가 필요했다. 그리고 고민 끝에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지원한 전공은 지원자가 적었고, 면접 분위기도 교수님과 면담하는 느낌의 편안한 분위기였다. 형식적인 질문들이 끝나고 교수님이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 다른 계기가 있냐 물으셨다. 그때에 나는 나도 모르게 숨은 진심을 내뱉었다. 친구들이 결혼이라는 다음 단계를 향해 다 나아가는데, 그리로는 못 갈지언정 개인적인 성취로나마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싶고.


나의 답변을 들은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앞으로 선생에게 공부하는 즐거움을 알려주도록 하지."



그렇게 그다음 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첫 학기는 퇴근하고 부랴부랴 버스를 타고 수업엘 갔다. 수업을 마치면 9시나 10시. 자상한 아빠는 퇴근 후 지친 몸으로도, 엄마와 드라이브를 한다는 핑계로 수업이 있는 날마다 학교 앞에 날 데리러 왔다. 나의 피곤함도 물론이거니와 나이 든 자식이 공부한다고 부모님께까지 폐를 끼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때, 처음으로 운전을 배워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첫 학기가 끝나자마자 차를 사고 운전연수를 시작했다. 무서웠지만 방학 내내 열심히 연습을 해서, 2학기부터는 운전으로 수업을 오갔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바로 다음 해에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남은 학기는 모두 비대면으로 마무리. 운전을 하기로 한 계기는 무색해졌지만 지금도 확신하는 것은, 내가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았더라면 영영 운전을 시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비대면으로 진행하는 대학원 수업은 오프라인 수업보다 백배는 더 힘들었다. 매주 출석을 대신하는 과제와 그 외의 과제도 내야 하다 보니, 주말 내내 노트북 앞에 앉아 머리를 쥐어뜯으며(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공부했다.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을까. 휴학하고 싶다. 애들이 결혼하면 결혼하는 거지, 뭘 또 얻어내 보겠다고 공부를 한다고 했을까. 어떻게든 졸업은 하자는 마음으로 매 학기를 겨우겨우 버텨냈고,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면, 다시는 회사 다니면서 공부하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건만, 어이없게도 딱 반년 정도를 쉬고 나니 마음이 다시 해졌다. 회사일 빼고 개인적으로 해낼 목표가 없다는 것, 애써 노력할 것이 없다는 것에 마음 어딘가가 좀 쑤시듯 가려웠다. 그때쯤 글쓰기 모임에 들어가면서, 글쓰기를 시작했던 것 같다.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 코로나 시국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배움이자 성취였다.


그리고 지난해 여름. 부서를 이동하며, 새로운 변화가 시작됐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회계 업무를 맡게 된 것이다. 회계의 흐름을 알기 위해선 1년을 오롯이 나야 하는데, 지난해 여름부터 올여름까지-  직생활을 하면서 자발적인 야근을 그렇게 열심히 했던(할 수밖에 없었던) 적이 없었다. 말 그대로 '회계'망측했던 시간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용어들과 원리를 다 이해하기 예/결산이라는 무시무시한 놈이 나를 쫓아오고 있었고, 전임자 분이 하시던 대로 답습하며 조금씩 수정해 나가는 것 말고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겨우 1년을 버텼을 버텼다. 그리고 찾아온 잠깐의 업무 비수기. 나는 결산으로 다시 바빠지는 겨울에 이르기 전에, 비수기를 활용해 회계 자격증을 따기로 결심했다. 고난도의 전문 자격증은 무리일 테니, 많이들 취득한다는 '전산회계' 시험에 도전하기로. 업무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괜찮은 성취타깃이었다.




다행히 옆 부서에 입사 전 전산회계 자격증을 취득한 직원이 있어서, 그 친구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8월부터 9월, 첫 달은 2급을 다음 달은 1급을 공부하기로 하며 두 달간 10월 초에 있을 자격시험을 준비했다. 거의 10년 만에 도전하는 자격증 시험이었다. 그러나 걱정과는 달리, 현업과 관련된 공부를 하니 꽤나 흥미로웠다. '이래서 그 결의서를 그렇게 만들었던 거구나.' 뭣도 모르고 따라 만들었던 결의서의 원리가 그제야 이해되기 시작했다.


재수 없게(?) 들릴 수 있겠지만, 지금 하는 업무와 관계가 낮은 파트들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공부가 좀 재밌었다. 만약 회계업무를 해보지 않고 취준생의 위치에서 이 공부를 했었다면, 머리를 쥐어뜯었을게 분명하다.


마침내 시험날이 다가왔고, 여느 수험생처럼 편한 복장에 백팩을 메고 시험장으로 향했다. 학교 일로 시험 감독만 10년 가까이하다가 수험생의 자격으로 시험장에 들어서니 사뭇 기분이 묘했다. 다소 무난히 2급을 르고 1급을 쳤는데, 1급 시험은 10년 전 토익 시험을 봤을 때의 집중력을 다시 느끼는 기분이었. 시험장을 나오며, 시험을 잘 치고 못 치고를 떠나 다시 발휘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집중력이 30대 되어서도 발휘됐다는 사실이 제일 뿌듯했다.


그리고 이번 주, 드디어 결과지를 손에 얻었다.



한 번도 모의고사를 풀며 받아본 적 없는 점수를 실전 결과로 받아 드니 기분이 묘했다. 합격도 합격이지만, 커트라인을 훌쩍 넘긴 점수에 성취감이 더 고조됐다. (1점은 아깝지만.)




앞으로 공부하는 즐거움을 알려주겠다던 교수님께서 대학원 면접날 그리 말씀하셨을 때, 나는 '죄송해요. 전 여태껏 공부를 해야만 해서 했지, 즐거워서 해 본 적은 없었어요. 여기서도 그럴 거예요.'라고 속으로 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나의 생각이 틀렸음을 안다. 교수님 말씀은 틀린 이야기가 아니었다. 내 성취욕의 시작엔 대학원이 있었으니.


회계공부에 도움을 준 옆 부서 친구에게 합격사실을 알리며, 조만간 고마움에 대한 보답으로 밥을 사겠다 했다. 그녀는 내가  회계공부를 시작한다 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


"과장님, 회사 다니면서 공부 그렇게 계속 걸 보니 과장님은 '광기의 직장인'이에요."



배우들은 '필모그래피'라고 해서 자신들의 경력을 꾸준히 쌓아가던데, 직장인인 나도 매년 한 줄 정도 (나만 알아주면 되는) 필모그래피를 한 줄씩 쌓아가고 싶어졌다. 앞으로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이력서에 추가할 수 있는 무엇이든 한 줄이라도 늘려가야지.



광기의 직장인. 그 표현이  마음에 든다.


그렇게 '회계'망측 탈출기를 뒤로하고.

광기의 직장인은,

또 다음 타깃을 물색하러 가보겠습니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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