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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Nov 05. 2023

언니들의 눈물

눈물의 예고편

직장생활을 한 지 10년이 넘어가니, 직장에서 만난 어른들에게 자연스레 너스레를 떠는 여유가 생겼다. (10년의 시간은 핑계고, 사실 한참 전부터 그러긴 했다.) 솔직히 처음에 입사했을 땐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직장에서 낯선 여자 선배들을 만났을 때엔 조금 무섭기도 가끔은 어렵기도 했다. 그러나 점점 친분이 쌓여감과 동시에 시간이 흘러가면서, 이제는 조금 약해져 버린 그들이 외려 나에게 의지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이들 중 조금 더 편하고 친한 여자 선배들을 무리 지어 지칭할 때에, 나는 그들을 '언니들'이라고 부른다. (물론, 1:1로 이야기를 나눌 때엔 직급으로 불러드린다.) 둘만 모여도 '언니들'이 된다. 우르르 사무실에 무리 지어 올 때엔 "와, 우리 언니들- 오랜만에 얼굴 뵈니까 좋네요!" 뭐 이런 식. 버릇없나 생각하기엔 이제 나도 연차며 나이며 두둑이 쌓여서 그런지 뻔뻔해졌고, 사실 언니들도 그렇게 불러드리면 나이 차가 적게 나는 것처럼 느껴지시는지 별로 꺼려하지 않으신다.




그런 언니들이 요즘 들어 이야기를 하다가도 수시로 울컥해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갱년기'라는 합리적인 핑곗거리를 들이대며 애써 눈물을 포장하곤 했지. 공교롭게도 지난 한 주 동안에, 언니들의 눈물을 자주 목격했다. 어떤 언니는 붉어진 눈으로 부친상을 치르는 와중에도 조문하러 온 나를 보고 눈물을 훔치며 농담을 건네는가 하면, 또 어떤 언니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뜬금없이 퇴직 이후에도 본인을 잊지 말고 한 번씩 불러달라며 딸 바라보듯 나를 바라보다 갑자기 눈물을 훔쳤다. 전부 눈은 울고 입은 멋쩍게 웃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들의 어깨를 쓰다듬고 기꺼이 팔짱을 내주며, 그들을 위로하는 것뿐이었다.



건물의 청소를 담당하는 여사님께서 한 달에 한 번씩, 밀대로 사무실 바닥을 닦아주신다. 현재 내가 있는 사무실은 나 홀로 쓰고 있기에, 여사님이 오실 때 종종 편하게 사담을 나누곤 했다. 다소 가을스럽지 않은 쨍한 날이었던 이번 주중의 어느 하루, 여사님은 밀대를 들고 내 방을 찾아주셨고 청소하시면서 땀을 흘리셨다. 냉장고에서 음료를 하나 꺼내드렸고, 내가 드린 음료를 드시며 숨을 고르시던 여사님과 그렇게 오랜만에 또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갑자기 그 얘기가 왜 나왔는지 모르겠는데, 여사님이 당신의 돌아가신 시어머니 이야기를 꺼내셨다. 여사님은 스물한 살,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신 분이었고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부터 여사님의 시어머니는 며느리인 자신과 이야기를 할 때마다, 자주 여사님의 팔을 쓰다듬으셨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여사님은 '아- 그냥 말만 하면 되지. 왜 내 팔을 만지.' 하고 생각하셨다. 본인은 아직 그렇게 친하다고 생각 안 하는데.


세월이 흘러, 시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여사님의 아들들도 다 결혼을 해 며느리를 맞으셨다. 그리고 어느 날, 자도 모르게 며느리와 이야기를 나누며 며느리의 팔을 쓰다듬 본인의 모습을 발견했다고.


"이제 보니까, 그때 어머님이 왜 내 팔을 만지셨는지 알겠는 거라."

"왜요?"



"예뻐서. 그냥 예뻐서."



그 말을 하시면서 여사님은 우셨다. 처음엔 갑자기 울컥해 휴지를 뽑아 눈물을 닦으시는 여사님을 보고 당황했다. 그러나 갑자기 시어머니 생각이 난다고, 참 잘해주셨었다며, 눈물을 닦아내는 여사님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자니 그 마음과 그리움이 전해지는 듯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저기요. 근데, 넌 아직 시어머니가 안 계시는데 왜.)


이렇게 또 다른 한 언니까지 눈물을 보탰다. 눈은 울고 입은 웃고, 갑자기 이야기하다가 울고. 언니들은 종잡을 수 없는 눈물패턴을 보였지만, 그들의 눈물 섞인 한 주를 보내고 나니 알 것 같다. 어쩌면 그 모습들이 내 미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걸. 나이 드신 부모님의 마지막을 지켜야 하는 자식으로서의 모습, 퇴직 후의 공허한 삶을 예상하는 직장인으로서의 모습, 이 세상에 없는 나의 어른들이 그리워질 모습까지. 나도 모르게 그들의 등을 토닥이고 어깨와 팔을 어루만져 주었다. 여사님의 시어머니가 그러하셨듯.


세월이 흘러야만 알게 되는 슬픔과 서글픔, 그리움과 후회. 그리고 나 또한 그것들을 크게 빗겨나가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 그래서 그들에게 울지 마시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올해도 두 달 밖에 남지 않았고, 내 의사와 관계없이 나이는 먹어간다. 토닥이며 바라봤던 그녀들의 모습이 눈 깜빡할 사이에 언제 내 얘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들보다 덜 슬프게 살아내고 싶다는 욕심은 없다.


다만 시간이 흘러 내가 저렇게 종잡을 수 없는, 뜬금없는 눈물을 흘릴 때에, 그저 내 어깨를 쓰다듬으며 위로해 줄 한 사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 그러니 그런 위로를 받을 자격을 얻기 위해, 짐작으로 나마 조금은 알 것도 같은 그들의 마음을 지금 잘 토닥여 주려한다.



아무쪼록 이렇다 할 슬픔들을 모두 뒤로하고, 친애하는 우리 언니들이 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또한 내 얘기가 될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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