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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Nov 12. 2023

반짝이고 있어, 지금도

노리플라이(no reply)로부터의 리플라이

어떤 노래는 들을 때마다,

어떤 지나온 시간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첫 유럽 배낭여행에서 기차를 타고 도시를 이동할 때마다 김동률의 'replay'를 계속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그 노래를 들으면 유럽의 차창 밖 겨울풍경이 떠오른다. 제목처럼 자동적으로 머릿속에 어떤 장면리플레이되는 신기한 현상.



미래에 대한 부푼 기대와 어른이 되었다는 낯선 자신감에 혼란스럽던 대학생 시절, 나는 고등학생 때와 별반 다르지 않게 동기들과 학교 근처 오락실의 동전 노래방 가는 것을 좋아했다. 그때 동기 중 하나가 인디음악을 많이 알고 있는 친구였는데, 그 친구가 노래방에서 부르는 노래들은 운 데다 가사도 적인 것들이 많았다. 덕분에 좋은 노래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그때 알게 된 아티스트가 노리플라이(no reply)였다. 당시 노리플라이의 노래들을 아주 열심히 그리고 오랫동안 듣게 되었는데 그래서인지 그들의 노래를 들을 때면 노래가 다시금 나를 순수하다 못해 순진했던 20대 초반의 대학생 시절로 데려다주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오랜만에 노리플라이의 새 앨범이 나왔다. 타이틀곡 [사랑이 있었네]를 몇 번이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오로지 음악에만 몰입해서 들었다. 이유 없이 뭉클했다. 예전과 달리, 요즘엔 유튜브는 물론 음악 앱에서도 앨범이나 곡 하나하나 댓글을 달 수가 있는데 그들의 음악에 나처럼 지난 20대가 떠오른다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많은 사람들의 젊은 날에 그들의 음악이 있었던 듯.


그리고 떠오르는 지난 추억 중에 좋았던 날보다 힘들었던 때의 기억이 더 많이 떠올라 그들의 노래를 듣는 일이 벅차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노리플라이의 '내가 되었으면'이란 곡을 참 많이 좋아했었는데, 그 노래는 내 힘든 일상을 위로받음과 동시에 내가 의지했던 노래이기도 했다. 20대엔 그 젊음과 비례해 아프고 벅찬 순간이 많았다. 지금만큼의 굳은살이 없던 시절, 범퍼카처럼 참 많이도 부딪쳤는데 미성숙한 탓에 회복도 더뎠으니.


노리플라이 새 앨범 [사랑이 있었네] 커버 (출처: VIBE)


올 7월, 입사 10주년을 맞이해 나 홀로 계획한 10주년 리츄얼은 '한 달 치 분의 월봉을 의미 있는 곳에 기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10년 뒤엔, 그 시점의 월봉으로 기부를 하고 그렇게 10년마다 그때의 월봉만큼 기부하는 일을 나만의 리츄얼로 삼기로 했다. 평소 소액이라도 도움이 필요한 곳에 틈틈이 기부하려 노력하는 편인데, 어떤 방향이든 좋은 일에 쓰이는 돈은 언젠가 더 큰 행운으로 나에게 돌아올 거라 굳게 믿기 때문이다. 일단 첫 10년 차의 스타트를 끊어야 하는데 적다면 적고, 크다면 큰 이 금액을 어디에다 기부해야 할 것인가 고민이 많았다. 7월이 되자마자 실천하고 싶었지만, 마땅한 기부처가 떠오르지 않아 연말까지 숙제처럼 미뤄뒀었다. 그러나 이제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고 더 이상 미룰 수 없었기에 얼마 전, 괜찮은 기부처를 검색해 보기로 했다.




반갑게도, 검색된 기부처의 목록 중에 나의 대학교 3학년, 1년간 전액 장학금을 지원해 준 어느 장학재단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3학년 진학을 앞두고 있던 겨울, 당시 집의 경제상황이 좋지 않았던 데다 동생 대학진학 앞두고 있었다. 게다가 그 지금과 같은 국가장학금이 없던 때였고, 조금 막막했던 나는 진지하게 휴학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 할 수 있는 데까지 뭐라도 해보자는 심산으로 학과 사무실을 찾아가 조교선배에게 내 상황에 대해 말씀을 드렸다.


선배는 장학금을 신청할 만한 장학재단이 있는지 알아봐 주겠다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배로부터 회신이 왔다. 그렇게 선배가 추천해 준 재단으로 부랴부랴 장학금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다행히 장학생으로 선정되어 1년간 해당 재단으로부터 전액 장학금을 지원받아 학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장학금을 받고 다녔던 1년간, 보답하는 마음을 담아 열심히 공부했고 그 결과대학생활 중 그해에 가장 좋은 성적을 받았다. 마지막 학기가 끝나고 재단에는 감사편지도 보냈다.



바로 그 재단이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그곳 이름. 의미도 있는 데다, 다행히  재단은 기부금 수입의 90% 정도를 장학금 지원금으로 쓰고 있었기에 기부처로도 믿음직스러웠다. 나 또한 수혜자 중 한 사람이었고. 드디어 고민의 말이 보이는 듯했다. 살짝 방향을 틀긴 했지만.


기부금을 내려니, '일시후원'과 '정기후원'이라는 선택지가 보였다. 당초 계획은 일시후원이었는데, 잘 생각해 보니 앞으로 10년간 매월 소액으로 정기후원을 하면, 일시 후원으로 하려 했던 금액보다 총액으론 조금 더 많은 금액으로 기부를 할 수 있을 듯했다. 그리고 별다른 이슈가 없는 한 10년이 지나기부는 이어가겠지. 사실 입사한 후에 정기후원을 시작해서 계속 기부를 하고 있는 기부처가 하나 있는데, 지금처럼 이렇게 10년에 하나씩 기부처를 늘려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그렇게 결과적으로 당장의 뜨거움보다, 꾸준하고 오래 따뜻한 온도로 방향을 틀었다.


드디어 올해의 숙제를 끝냈다


아마 3학년을 끝마친 내가 당시 재단에 보낸 편지에는, 졸업 후에 꼭 훌륭한 사람이 되어 나 또한 어려움에 처한 누군가를 도와주겠다는 말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장학금을 받던 장학생에서 장학기금에 작은 성의를 보탤 수 있는 사회인으로 성장하게 되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덕분에 그때의 다짐도, 나 홀로 리츄얼도 모두 실천할 수 있었으니.




노리플라이의 새 앨범을 매일 듣고 있는데, 앨범 트랙 중에 [반짝이고 있어]라는 곡이 있다. (지금도 그 노래를 들으며, 글을 쓰고 있다.)


두근거리는 피아노 소리와 설레는 첫 가사.

반짝였었네
푸르던 날들


노리플라이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다시 어설픈 대학생으로서의 내 모습이 그려진다. 분명 범퍼카처럼 자주 부딪치고 먼지처럼 지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오랜만에 듣게 된 노래의 목소리나에게 마치  가사처럼 그말해주는 듯하다. 몰랐겠지만, 너도 푸르던 날들 속에 반짝였었다고.



그리고 이젠 그들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아련하고 풋풋던 20대의 내 모습과 더불어, 보람된 지금을 함께 떠올릴 수 있을 것 다.


그리고 거만하게 들릴 수 있겠지 것도 같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반짝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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