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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Oct 26. 2022

비로소 하찮아질 테니

2019, Summer, Niagara Falls, Canada

그리 오래 산 삶은 아니지만 내 인생 가장 경이로웠던 순간을 꼽자면 2019년 여름, 나이아가라 폭포 앞이었다. 그 해 캐나다 여행의 주목적은 사실 '퀘벡'이었다. 퀘벡은 내 버킷리스트였고('도깨비'보다 내가 먼저였다.) 나는 프랑스보다 퀘벡을 가기 위해 불어공부까지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먼 곳을 가서 퀘벡만 보기엔, 들인 시간과 경비가 아까웠기에 토론토와 몬트리올을 그 경유지들로 넣었고 그중 하나가 나이아가라 폭포였다.

그렇게 여정의 일부로 찾아간 그 앞에서, 나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앞의 광경에 압도된다는 느낌을 살면서 처음 받았다. 실로 엄청난 장관에 넋을 잃을 뻔했고, 가장 충격(이렇게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적이었던 장면은 유람선을 타고 폭포에 가까이 다가가 물세례를 맞았던 순간이었으리라. 전 세계에서 온 국적도 나이도 제각각인 여행객들과 함께 폭포수를 맞으며 동시에 소리를 지르던 그 순간의 짜릿함이란. 알아듣지도 못하는 언어로 각자 감탄사를 표현하며 눈이 마주칠 때마다 서로 환하게 웃었다. 돌이켜보니, 그날이 나에겐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였다. 모든 사람이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벅차는, 함께 함박눈을 맞으며 즐거워하는 듯한.

사실 나는 눈물이 났다. 폭포의 물세례를 맞아 눈물이 눈물처럼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지.
그때엔 오로지 두 가지 감정만이 나를 지배했다. 나는 세상의 별 것 아닌 미물들 중 하나인 느낌. 그리고 이러한 미물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 장면을 보기 위해 지금껏 30년을 살아왔구나 하는 벅참. 그리고 다짐했다. 서른 살에 찾아왔으니 만 60, 환갑이 됐을 때 이것을 보러 다시 오겠다고. 그때에 또 너를 보기 위해 지금껏 그만큼의 세월을 건강히 잘 살아, 다시 네 앞에 섰다고 말하고 싶었다.




토요일 아침, 아침을 먹고 TV를 켜서 최애 프로그램 중 하나인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봤다.
코로나 펜데믹 이후 지난 방송을 편집한 스페셜 방송만 계속 방영했었는데 얼마 전부터 다시 PD들이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이번 주는 '아르헨티나'편이었고 그중 이과수 폭포를 방문한 장면이 있었다. 역시나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인 그 폭포에서도 많은 이들이 물세례를 맞고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레이션으로 PD가 말하길, 이 폭포 앞에서 내 걱정과 고민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얼마 전, 인사이동과 바뀐 업무로 인해 요 근래 없었던 두통이 매일같이 밀려온다.
해봤던 일이 아닌 데다가 일의 무게도 적지 않아 부담감에 벌써 지쳐버린 듯하다. 신입이면 차라리 실수할 수 있다 생각하고 패기롭게 일을 헤쳐나가겠는데 이젠 무시할 수 없는 경력과 징징댈 수 없는 직급으로 잔뜩 포장이 된 이 미물에게 있어 요즘은, 고된 하루의 연속이다. 업무가 바뀌고 맞이한 이번 일주일이 올해 들어 가장 긴 일주일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맞이한 주말, 폭포 앞에 선 그의 이야기에 마음이 동했다.
그래, 그 앞에선 모든 것이 하찮았다.
열심히 살아낸 30년이 마치 그 앞에 서 있기 위함이었던 것처럼 하찮아지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다시 떠올랐다. 그 폭포 앞에서의 나의 다짐이. 30년을 열심히 살아내 다시 네 앞에 서겠다던 그 다짐이.

그리하여 하찮아질 지금 나의 이 고민들에 많은 에너지를 뺏기지 않으리라.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것들로 30년의 인생을 잘 싸매고 가 그 앞에 다시 섰을 때, 포장지가 벗겨지며 별 것 아닌 것들만 잔뜩 가지고 왔구나-하는 그의 응답을 들으리라.
그러니 나이아가라 앞에서 물세례를 맞으며 즐거워하던,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를 되뇌이며 다시 길을 나서자. 그의 앞에 섰을 때에 지금의 이 고민들은 가소로운 이야깃거리이자, 결국엔 시간이 해결해 준 무용담에 불과할 테니.


삶도 그런 것이다.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 간다.
그러니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 마라.
삶은 농담인 것이다.

- 은희경, '새의 선물'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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