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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Oct 26. 2022

처음 뵙겠습니다

처음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필연은 우연을 가장하여 온다'는 말을 살면서 크게 믿지는 않았다. 운명적이라 생각하며 만났던 사람이 없었고, 모든 것은 그저 내가 걸어온 길 위에서 일어난 현상일 뿐이라 생각했으니. 대신 나는 그 길을 다채롭게 만드는 일을 좋아했다. 가만히 있을 땐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있더라도, 떠나야 할 때와 나서야 할 때에는 최선을 다해 떠났고 도망쳤다.

코로나 펜데믹 이전까지만 해도 1년에 한 번 나는 멀리, 아주 머-얼리 떠나야 하는 사람이었다. 내 궤적의 반경을 넓히는 것이 내가 남들보다 조금 다르다 느낄 수 있는 특별함이라 믿어왔기에. 그래서 멀리 떠나더라도 점점 남들과는 다른 경로를 택했다. 왜 굳이, 거길, 일부러 가냐는 질문들에 응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굳이, 거길, 일부러 가서 만날 장면들이 나를 특별하게 만들 거라고 믿는데, 그것이야말로 '굳이' 타인에게 납득시킬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코로나 펜데믹이 시작되며 나의 여정은 잠시 정지된 상태. 이제는 어느 정도 순응하며 살고 있지만, 2년 전의 나는 답답함에 몸서리를 쳤었다. 그러다 '여행스케치'라는 펜 드로잉 클래스를 알게 되었고, 다양한 여행사진 풍경을 직접, 그럴싸하게 그려볼 수 있다기에 용기를 내 신청을 했다.

처음에는 선생님이 보여주시는 사진 위주로 그리다, 'pinterest'라는 이미지 앱을 통해 건물이나 풍경사진을 찾아내 그리기 시작했다.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다양한 이국의 모습들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손으로 직접 그리는 걸로 궤적의 반경을 넓히는 일을 대신하려 했다.

그러나 몇 달 지나지 않아, 업무가 바빠지면서 그마저도 그만둬야 했다. 그 이후로는 이전처럼 퇴근 후 그간의 여행 사진들이 저장돼 있는 핸드폰 갤러리를 찾아보며 다시 나 홀로 모노드라마의 n회차 관람객으로 돌아갔다.

2018년, 그 해 여름의 나는 발트에 있었다. 핀란드를 여행하다 당일치기로 다녀온 에스토니아가 마음에 들어, 발트 3국 중 남은 두 나라도 다음에 가보겠다 마음먹은 것을 기억하고 2년 후 그곳으로 향했던 것이다.
여느 유럽의 나라들과 비슷하지만 다른, 여행객의 흔적이 드물었던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 곳곳을 누비 나는 역시, 굳이, 여길, 일부러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퇴근 후, 다시 핸드폰 갤러리를 뒤적였다. 그 해 발트에서의 사진을 한 장 한 장 확대하며 찬찬히 살펴보다, 나는 어느 사진에서 멈춰버릴 수밖에 없었다. 어느 골목 풍경을 찍은 사진, 그리고 그 골목 끝에 빛을 받아 환하게 보였던 건물 하나. 펜 드로잉 시간에 앱에서 찾아 우연히 그리게 된 바로 그 건물이었다! 괜히 잘 그려진 것 같아, 카톡 프로필 사진까지 해두었던. 알고 보니, 그 건물의 모습이 이미 내 갤러리 한 켠에 있었던 것이다.

스치듯 안녕했던 풍경과 다시금 마주했다.
앱이 추천한 그 수많은 사진들 중 하필 내가 그린, 그것도 그럴싸하게 그려졌다 생각한 그 피사체를 내가 지나갔었다니. 라트비아의 리가, 크게 유명하지 않은 어느 도시의 골목에 위치한 어느 건물 앞에, 내 궤적이 있었을 줄은.

알고리즘이 내 마음을 읽은 건지, 필연적으로 내가 그 건물 사진에 이끌려 그림을 그렸던 건지 알 수 없다. 다만, 만나야 할 것들은 언제 어느 시간에 어떤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것을. 드라마의 흔한 클리셰와 같은 일은 실제로 일어난다는 것을. 그날 반갑게 마주한 사진과 함께, 나는 믿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제 나는 오늘 만난 풍경이 처음 본 풍경이라고, 오늘 만난 당신이 초면이라고 확신하며 말할 수 없다. 모두 언제, 어느 시간을 거쳐 지금 마주하고 있는지 알 수 없으니 어쩌면 처음 본 누군가에게 "처음이 아닐 순 있겠지만 처음 뵙겠습니다."라는 인사가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바라건대 우연을 가장해 찾아올 필연을 언제, 어느 때에 맞이할지 모르니, 다가오는 모든 장면의 등장인물과 배경을 내가 환대할 수 있기를. 굳이, 일부러, 이곳에 오길 잘했다는 그때의 내 시선이 이 재회의 반가움을 더 극대화시켰으니까.

리가가 알려준 인연의 고찰은 끝나지만, 앞으로 더 극적이고 반가운 재회가 이어져 이 글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길 바라며.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김광섭, '저녁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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