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utumn dew Oct 26. 2022

[Teaser] 진갑 즈음에

그가 말한 아버지에 대한 유일한 기억은, 아주 오래된 집 마당 안에서 외출 나간 어머니를 대신해 아버지가 자신을 업고 있던 장면이라 했다. 이따금씩 아버지는 톡톡 엉덩이를 두드렸고, 등 뒤로 넘겨주던 누룽지를 그는 곧잘 받아먹었다고 했다. 그리고 마루에 앉아있던 형이 나도 달라며 징징댔던. 그것이 아버지에 대한 처음이자 마지막 기억이라고 했다.

나의 아버지는 5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를 잃었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자세한 병명은 기억나지 않지만 일종의 심장질환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아버지를 잃은 5살 소년은 자라면서,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에서 자연스레 터득 가능한 삶의 지혜들을 배우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고 그 어떤 것이든 내 자식에게 알려줄 수 있는 지혜가 되리라 고되게 경험하며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살아냈다.
그렇게, 그도 아버지가 되었다.

나의 할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라 하기에도 애매한)도 5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할머니 댁에 갔을 때 벽에 걸려있던 할아버지 얼굴. 사진이었는지 초상화였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액자 속 얼굴을 보며, 그 나이에도 '우리 아빠랑 많이 닮았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도 아빠랑 똑 닮았으니, 언젠가 저 얼굴이 나한테서도 나오겠구나 하는 것도.


며칠 전, 아빠는 62세 생일인 진갑을 맞았다.
선물은 주말에 따로 사드리기로 하고, 당일엔  저녁식사로 그 축하를 대신했다. 화려하지 않은 소박한 막창집에서 온 가족이 함께.
기분 좋게 취한 그는, 저녁을 먹고 난 뒤 들어간 카페에서 모두의 손을 일일이 잡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 인생을 살아보니, 대단한 지위나 어마어마한 부는 아니더라도 생일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모여 축하받고 기분 좋게 밥 한 끼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성공한 인생처럼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퇴근 후 아빠와 단 둘이서 저녁을 먹은 적이 있다. 그때 그가 말하길,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탓에 나도 그만큼 밖에 살지 못하는 거면 어떡하나 걱정이 많았다고. 마침내 아버지의 나이보다 더 살아냈을 때, 그제야 안심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버지보다 훨씬 더 오래 살고 있으니 언젠가 아버지를 만나게 됐을 때, '나는 아버지보다 더 책임감 있고 성실한 아버지로 살아왔다'고 당당히 말하겠노라고. 나는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고민을, 그는 몇십 년을 안고 살아왔었단 걸 그날에서야 알았다.




생신날 아빠가 케익과 함께 찍은 사진을 직장 후배에게 보여주며 '내 미래 모습 한 번 볼래?'하고 농담을 덧붙였다. 역시나 유쾌한 후배님답게 나와 똑 닮은 그의 얼굴을 보며 말하길, "과장님 환갑잔치 사진 아니에요?^^ 축하드려요!"라고. 그래, 내가 봐도 존똑이긴 해.

할아버지는 아들에게 중년, 노년의 삶에 대한 기대를 그려주지 못했을지 몰라도 나의 아버지는 나에게 건강하게, 열심으로 살아낸 어른의 모습을 그려주고 있다. 어쩌면 그의 열심인 하루는 내 기대수명을 알차게, 하루씩 더 연장해 나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생일은 나에게 있어 축하해야 할 날임과 동시에 그의 생을 통해 매년 내 생의 예고편을 갱신하는 날이다.

고맙습니다.
건강히, 잘 살아내주고 계심에.

나도 언젠가 할아버지를 만나면, 내가 알고 있는 아빠의 고생스러웠던 인생사를 늘어놓으며 사는 동안 받아보지 못한 아버지로부터의 칭찬을 지금이라도 해주라고 으름장을 놓을 테다.






그런데 대신에 아빠.
세수하고 나오면 로션도 꼬박꼬박 바르고, 가뜩이나 머리숱 적은데 머리 감을 때 제발 살살 좀 감아줘요. 아빠를 닮긴 닮더라도 덜 주름지고, 더 풍성한 머리숱으로 살고 있는 내 노후를 상상하고 싶으니까.


                    

작가의 이전글 처음 뵙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