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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Feb 11. 2024

역마살의 틈바구니

시간의 재구성

인사발령 후 첫 출장이었다. 업무 관련 연간 계획표를 살펴보니, 앞으로 한 달에 한 번은 무조건 타지로 출장을 야 할 것 같았다. 솔직히 한 번이면 다행이다. 어떤 선배는 한 달 넘게 사무실에 출근을 하지 못한 적도 있다고 했다.


2박 3일간 경기도와 충청도를 오간 뒤 명절을 쇠러, 집인 대구로 내려왔다.

며칠 연속으로 다른 지역, 다른 숙소에서 일찍 일어나는 일이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쉽사리 잠이 들지 않았고, 그새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까다로워진 이 몸은 이곳이 간지럽다가 저곳이 간지럽다가, 이곳이 불편했다가 저곳이 불편했다가를 반복했다. 출장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며칠 새 바뀐 샤워 물과 맞지 않는 바디용품들로 인해 등이고 다리고 몸 곳곳이 건조하기 그지없었다. 잠 못 잔 것도 슬픈데, 왜 이렇게 몸까지 별스러워진 건지.



출장을 나갔다고 해서, 출장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무실에서 해야 할 일도 틈틈이 원격으처리해야 했기 때문에 출장 업무가 끝나면 카페에서, 숙소에서 노트북을 열고 업무를 해야만 했다. 다소 비밀스럽고 조심스러운 감사업무의 사정을 모르는 다른 이들은 각자가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 내 사정과 관계없이 전화와 톡으로 다른 업무를 던져주곤 했다. 지친다, 버겁다기보다는 본디 사람이란 본인에게 당면한 일이 가장 중한 법이니, 나라도 분명 그리하였을 것이란 생각에 함부로 미워할 수조차 없었다.


거울 속 점점 더 까칠해져 가는 피부와 퀭해져 가는 눈빛의 나를 바라보며, 어차피 이 업무를 맡게 된 이상 이렇게 살아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무언가 이런 업무 형태에서도 해낼 수 있는 나를 지키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숙소에서 잠이 오지 않는 밤. 잠자리가 바뀌어 잠이 들지 못하는 건지, 앞날이 걱정되어 잠이 들지 못하는 건지 그마저도 파악되지가 않았다. 침대에 누워 가장 낮은 조도로 전자책을 켰다. 김겨울 작가의 <겨울의 언어>라는 책이었다. 확실히 대구가 남쪽이었던 건지, 북쪽의 날씨는 나에게 몹시 쌀쌀맞았기에 제목부터 겨울스러운 그 밤과 잘 았다.


시간을 견디는 경험이란 삶의 모든 순간을 받아들이고 의미 없는 삶에 의미를 부여해 보려는 노력이며, 흘러가는 감정에 집중하고 타인의 경험에 귀를 기울이는 시도다.


익숙한 곳을 떠나 먼 곳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나는 가까운 사람들과의 이별에 부록처럼 따라오는 '슬픔'이란 감정이 싫었다. 그래서 애써 눈물을 꾹 참거나, "아, 마지막이니 뭐니 다들 의미부여 금지!"하고 웃으며 애써 슬픔을 눌러버렸다.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내 결심마저 흔들릴 까봐.


고달픈 출장을 마치고, 대구로 내려오던 버스에서 한 시간은 거의 기절하다시피 곯아떨어졌다. 낯설고 조금은 낡기도 했던 숙소들보다 고속버스의 조그마한 이 자리가 가장 편했던 모양. 앞으로 얼마나 많은 기차와 버스를 타며, 전국을 오가게 될까. 한 시간의 숙면을 깨고 멀쩡해진 정신에 걱정만이 밀려오던 순간, 전자책을 펼쳤고 다시금 <겨울의 언어>를 읽어 내려갔다.


그들은 안락하고 정확한 여정이란 오로지 기차에서만 보장된다고 말한다. 자신들을 낭만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특권 역시 기차를 내리는 순간 끝난다고도 말한다. 길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없다는 안도감은 이렇게나 잠시 동안만 허락된다. 사지를 추슬러 자리에서 일어나 길을 걷는 순간부터 인생의 혼란은 제자리로 돌아온다.


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없다는 안도감. 수없이 오르내릴 버스와 기차가 서글프면서도, 그 시간만큼은 길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없다는 안도감이 허락된다고 했다. 슬픈 이야기 같지만 역으로 생각했을 때 어쩌면 나에겐, 스스로 안도하는 시간이 앞으로 잦아질 수 있다는 처럼 들리기도 했다.




대구로 온 날 밤, 바쁜 일정 탓에 송별회를 하지 못하고 떠난 것을 아쉬워했던 후배들이 고맙게도 귀한 저녁 시간을 내어주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와 장난스러운 농담들이 오가는 가운데, 대화에 참여하고 있지 않아도 그들을 지켜보는 마음 만으로도 이 시간이 고마웠다. 나의 빈자리를 조금이라도 아쉬워해 준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엄청난 위로가 됐다. 의미 부여는 외려 내가 했다.



전국을 돌아다니는 고달픈 일정에, 유일한 재미라도 얻고자 휴대폰 메모장에 맛집 리스트를 만들기로 했다. 그래. '수학'책보다 빨간 줄이 그어져 있어도 너덜너덜한 '수학익힘책'이, '자연'책보다 막 지우고 써도 되는 '실험관찰'책이 편하게 느껴졌듯이(나 좀 나이 많아 보이네.) 업무 외에 마음대로 펼치고 다시 썼다 지우기 좋은 부록책을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어떤 의미부여든 스스로 만들어내야만 버텨낼 수 있을 것만 같아서.


그리고 업무가 끝나면 어떻게든 두 발로 숨이 가쁠 정도로 걸으며, 그곳의 공기로 그곳의 나뿐만 아니라 다음 행선지에서의 나를 위해서 잠시라도 운동을 하기로 했다. 이번 출장에서도 업무 이후의 시간에 최대한 걷고 움직이려 애썼다. 낯선 곳일수록 숨지 말고, 더 분주히 나를 챙겨야 한다.


이렇게라도 '담당자'라는 책임의 이면에 있는 원래의 나를 지켜내고 그 시간을 견뎌보려 한다. 의미를 부여해 경험에 색을 입혀 볼 것이다. 바쁘고 부산스러운 가운데, 짧게 허락된 안도의 시간 속에 얻을 수 있는 무언가는 반드시 존재할 것이기에.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글을  것이다.

나를 꾸준히 기록하고 기억해 야 한다.


그렇게 자꾸 나에게 질문을 던질 것이다.

'요즘은 어때? 괜찮니?'하고,

여기서만큼은 아주 다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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