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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Feb 04. 2024

랑도네 연극

관객에서 배우로

오랜만에 가보고 싶은 여행지였다. 아니, 여행지라기보다는 여행지의 프로그램이라고 해야 하나.


매주 토요일 아침마다 별일 없으면 챙겨보는 프로그램, <걸어서 세계 속으로>. 한참 전이었던 것 같은데, 어느 날 '프랑스 남부' 편에 '랑도네 연극'이 소개된 것을 보았다. 랑도네 연극은 랑스 알로쉬 지방, 과 초여름에만 볼 수 있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전통 있는 연극.

우선 이 연극을 보려면 짐을 꾸려야 한다. 등산이 될 수도 있으니 편안한 복장과 도시락은 필수다.


놀랍게도 이 연극의 무대는 자연이고, 배우는 자연을 배경 삼아 연기를 펼친다. 관객들은 배우와 함께 소풍 온 것처럼 들판이든 숲 속이든 주저앉아 연극을 즐긴다. 재미있는 점은 극의 흐름에 따라 연극의 배경이 바뀐다는 점이다. 배경을 바꾸기 위해, 배우는 이동한다. 당연히 관객도 이동한다. 장소를 옮겨 다니며 연극이 진행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린다. 8시간 정도.


햇살이 극의 조명이 된다. [이미지 출처: KBS1TV]


뮤지컬이나 콘서트에 인터미션(휴식시간)이 있는데, 오전부터 시작하는 랑도네 연극에는 '시간'이 있다. 점심시간엔 배우와 관객들 가방에 들고 온 도시락을 펼쳐놓고 소풍 온 것마냥 함께 식사를 한다. 배우와 관객의 벽은 없는 듯했다. 함께 이동하고, 함께 밥을 먹는다.


세상에 이런 연극이 있다니. 공연일정은 계절에 맞춰 한정적이 때문에 사전예약을  사람만 볼 수 있. 공연 중에는 노곤한 탓에 바닥에 누워 가방을 베고 자는 관객도 있다. 이보다 관람예절 자유로운 연극이 있을까. 거의 하루 대부분이 소요되는 이 매력적인 연극을, 나는 언젠가 꼭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언어의 장벽으로 극의 흐름을 제대로 이해하기엔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때가 되면 뭐. 지금 들리는 말을 실시간으로 자동번역해 주는 AI프로그램이 생기지 않을까.


세상의 흐름에 따라 발맞춰 함께 이동하며 눈높이를 맞추고 때론 잠시 벗어나 쉬어도 되는 이 연, 나는 삶의 여정과 비슷하다고 느다. 시공간의 흐름 발맞춰, 한 발 한 발 나아가야 하는 관객 중 한 사람이 된 것 마냥.




인사이동으로 먼 곳을 떠나와 새롭게 맡게 된 업무는 전국을 출장 다녀야 하는 일이다. 때론 냉정해야 하고, 때론 너른 이해심을 발휘해야 하는 감사(監査) 업무. 여러 곳을 다니며, 여러 이야기를 듣고, 여러 사람을 만나야 다.


그러고 보니, 이제 나는 관객이 아니었다.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지금 이 배경에서의 극을 이끌어가야 하는 배우로 그 역할이 바뀐 것럼 느껴졌다. 쩌면 두에게 처음부터 주어진 역할은 배우였을 텐데, 책임과 부담이 두려워 관객을 자처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극을 잘 이끌어갈 수 있을까. 즐길 수 있을 거라 말할 순 없겠지만, 확실한 건 이제 이 드넓은 무대에서 숨을 곳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그래도 다행인 건 극에는 분명 소중하기 그지없는 휴식시간 있고, 함께 있는 사람들과 곳곳에서 호흡하며 얻게 될 묘한 보람도 있을 거라는 것. 역시 일어나지 않은 일은 걱정보다 기대가 우선이다.


랑도네 연극의 시작.

이 극을 잘 마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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