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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텀민 Oct 10. 2023

어쩌다 엄마

아기를 왜 낳죠?

 결혼생활을 시작한 지 벌써 햇수로 5년 차. 우리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나는 결혼할 때도 그랬지만 아이를 가지는 데에도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다. 사소한 결정에도 많은 시간을 들이는 나에게는 이런 인생의 중대사를 결정해야 하는 시점들이 매번 고난으로 다가온다. 도저히 결정할 수 없을 것 같은 때는 미룰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미뤄버리고는 될 대로 돼라, 혹은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을 가져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선택을 미룬다는 것은 곧 고민이 계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뭐든 결정해 버리면 고민이 끝날 텐데, 미련하게도.


 아이를 가질까, 말까.

아이를 가지면 좋은 점은 무엇이고 나쁜 점은 무엇인가. 아이가 없는 입장에서 이 질문에 대한 우리의 답에는 나쁜 점만이 수두룩히 적혀 내려갔다. 워킹맘 다이어리라는 미드에 보면 주인공인 앤과 남편이 세 번째 아이를 가지는 데에 pros and cons를 화이트보드에 적어 내려 가는 장면이 나온다. (앤은 셋째이기는 하지만) 이 pros and cons가 대부분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아이가 있는 삶과 없는 삶은 정말 송두리째 다른 삶이 아닌가. 무한한 고민의 날들이 이어지며 든 생각은,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큰 결정을 그렇게 쉽게 할까, 혹은 왜 고민해보지 않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할까-라는 것이었다.

 결혼하고 나서 아이를 낳은 주변의 몇몇 선배 부부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아기 왜 낳았어요? 낳으니 좋아요? 나의 질문에 대부분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듯이 모호한 대답을 했다. 결혼을 했으니 당연한 수순을 따랐을 뿐이라는 듯이. 혹은 단골 대답 중 하나인 '나중에 외로울까 봐'. 어느 쪽도 나의 답은 아니었다.


 아이를 낳는다는 건 부부 둘의 의견이 일치하거나 타협을 통해 가능한 것이겠지만 나의 남편의 경우 오롯이 내 의견에 따르겠다고 말했다. 임신과 출산은 전적으로 여성의 몫이고, 커리어 측면에 있어서 육아휴직을 하며 공백이 발생하는 것도 (보통은) 여성이 대부분이며, 육아의 경우에도 어쩔 수 없이 엄마가 더 큰 지분을 가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남편의 의중을 이해는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결정에 도움이 안 된다. 배려하는 것 같으면서도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 여성의 입장에서 이렇게 많은 대가를 치르고 희생을 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가기로 결정한 건 전적으로 너니까 힘들어도, 희생한다 해도 감수해야 해!

- 앞으로 예상치 못한 어떤 문제가 생길지 나는 몰라(생각하기 싫어), 그렇지만 네가 하자는 대로 했으니 네가 해결해.

물론 남편이 이렇게 말하진 않을 것임을 알지만. 배려라는 이름으로 인생에서 이렇게 무겁고 큰 결정을 내 어깨에만 짊어지도록 하는 것 같아 서운하고 부담스러웠다.


 나는 남편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고민과 결정에 나서주길 바랐다. 어떤 길을 선택하더라도 뒤에 따라올 결과들을 나뿐만 아니라 남편이 같이 감내할 수 있을지 확신이 필요했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에 따르기만 하겠다고, 그로 인한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남편에게 '아이가 있는 삶'을 살게 됨으로써 겪을 우리 인생의 변화를 낱낱이 알려주고 싶었다. 모든 상황에서 worst scenario를 머리에 그려보고 행동하는 나처럼 남편도 최악의 시나리오를 항상 염두에 두었으면 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로 인해 겪게 될 행복의 새로운 지평선도 알았으면 했다. 그래야 우리가 결정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아이를 가져본 적이 없는 내가 아무리 상상의 나래를 펼쳐봐도 '아이가 있는 삶'의 장점이라는 것을 찾아낼 수는 없었고 '아이가 있는 삶'에서 우리가 포기해야 하는 것들만 떠오를 뿐이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여행, 캠핑, 힙한 장소와 카페 찾아다니기, 여유로운 독서 생활, 늘어지게 쉬는 것, 커피 향과 재즈가 흐르는 조용하고 루틴한 주말 등. 나는 몇 년에 걸쳐 남편에게 아이를 가지면 우리가 포기해야 될 많은 것들에 대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어려운 순간들이 올 수도 있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언젠가부터 나는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나의 말 속에서 내가 우리 둘 뿐 아니라 어떤 다른 존재를 항상 가정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중에 애기 있으면, 이라는 말로 대화를 시작할 때가 많았다. 남편은 웃으며 우리 애기 갖는거야? 라고 되묻곤 했고 나는 얼른 말을 얼버무리곤 했다. 어느 순간 나는 -언젠가는- 내가 아이를 가지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특별한 계기랄만 한 것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답은 정해져 있었다. 하고 싶은 게 많은 나에게는 딩크로서의 삶이 더 적합하다고는 생각하지만 그와 동시에, 무엇이든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내가 여성으로 태어나 한번은 누려볼 수 있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선택지를 외면할 리도 없었다. 선택했다가, 아닌 것 같으면 go back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니라는 것이 다만 문제였을 뿐이다.


 그러니 나는 그저 나만의, 내가 납득할 수 있는, 훗날 다시 되돌아봐도 고개가 끄덕여질 어떤 계기를 만들어놓고 싶었을 뿐이다. 내가 포기해야만 하는 많은 것들을 되새겨 보며 마음의 준비를 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시점에 대해서는 아직도 알 수 없었다. 마냥 미루고만 싶었다.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마음의 준비가 될 때까지.



 그러다가 덜컥 아이가 찾아왔다. 그날 나의 감정은 한 마디로 설명할 수가 없다. 아니 언제? 어떡하지? 이 두 문장만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질주했으며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어쩌다 엄마가 되어버린 탓에 허들처럼 넘기 어려웠던 ‘마음 먹기’가 자동으로 해결되어 버렸으니.


 아직도 내가 엄마라거나 나에게 아기가 있다거나 하는 실감은 나지 않는다. 부모가 된다는 것에는 또 다른 많은 마음의 준비들이 필요하리라. 이미 머릿속에서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우리가 포기해야만 하는 많은 것들을 제외하고도, 이 아이와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많은 것들이 있으리라.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행복을 찾아낼 것이라 믿는다. 엄마와 아빠가 오랜 시간 동안 많은 고민을 한 만큼 아이가 더 큰 행복으로 찾아오기를, 한 순간 죽을 만큼 힘들어도 다음 순간 아이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사르르 녹아버리는 그런 일상들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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