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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렉싱턴 Aug 13. 2015

당신의 위트가 부러워요.

무라카미 하루키, <더 스크랩>

  책 날개에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생년을 보고 말았습니다. 1949년입니다. 그의 글을 몇 편 읽으면서 그의 나이를 가늠해 본 적은 없는데요.. 새삼스럽게 그가 태어난 해가 묵직한 느낌을 줍니다. 그만큼 글이 젊다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면 단지 그의 젊었을 적 글이기  때문에,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그가 태어난 해를 고려해 봤을 때 젊은 글을 쓰는 작가라는 느낌을 준다'라고 두리뭉실하게 표현해 둘게요.


  부러움에 몸서리칠 때가 있습니다. 운동 선수가 말도 안 되는 신체 능력을 보여 줄 때? 멋있다, 대단하다,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인간은 역시 불가능은 없구나,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뭐 이런 느낌은 듭니다만  '부럽다'라는 생각이 들진 않습니다. '내가 저렇게 될 수는 절대 없을 것  같다'라는 느낌이랄까요. 어쩌면 나와 전혀 다른 존재를 보는 듯한 기분입니다. 그런데 '박학다식'하거나 '위트'있는 사람은 부럽습니다. 내가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다를 떠나 그렇게 되고 싶습니다. 누가 있을까요. 음.. 뭔가 인간계를 초월한 사람으로는 토니 스타크가 떠오르는군요. 능력 있고, 공학 지식도 풍부하고, 위트 있죠. 심지어 재력도 갖춘.. 쿨럭.


  글 쓰는 쪽으로는 무라카미 하루키입니다. 원래 글을 잘 쓰려면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 아닌가 합니다. '박학다식'과 '위트'말이에요. 그의 소설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없는 그의 모습이지요. 꼭꼭 숨겨두기도 했거니와 소설으로 느끼는 하루키는 무척 진지하게만 느껴졌거든요 하지만 그의 에세이는 다릅니다.


"나의 본업은 소설가요, 내가 쓰는 에세이는 기본적으로 맥주 회사가 만드는 우롱차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맥주 회사에서 나오는 우롱차가 어떤 맛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려니 하면서도 왠지 웃음이 나옵니다. 어떤 식으로든지의 소설가로서의 본인의 에세이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쓸데없이 진지한 생각도 해보게 되고요.


  '더 스크랩'은 1982년부터 1986년까지 연재한 글을 엮은 것입니다. 연재하는 것을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4년이나 연재를 계속한 것은 이 글들을 쓰는 게 꽤 즐거웠던 모양입니다. 한 달에 한두 번 미국 잡지를 왕창 받아서 읽고, 흥미로운 기사가 나오면 일본어로 정리하여 원고를 쓰는 것. 무라카미 하루키는 '정말로 거저먹기였다'라고 말하지만, 저에게는 쉽지 않은 일 같아 보이긴 하네요. 잡지를 정리한 글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다양한 내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긴 하겠지만, 잡지의 글을 베이스로 본인의 글을 쓸 때에는 그의 박학다식함이 좋은 첨가제가 되었으리라 짐작합니다. 그의 재즈, 스포츠, 미국 문화에 대한 깊은 조예는 짧은 글들이 더욱 맛깔나게 읽히도록 돕거든요. 1980년대 미국 잡지의 글이라고 하면 2010년대 한국의 독자들에게 어필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지 모르겠지만, 일단 짧고, 쉽게 읽히고, 생각보다 재미있습니다. 물론 모든 글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런 글들은 그냥 슬쩍 넘겨 버려도 상관없습니다. 재료가 된 글은 모두가 '잡지'에서 따온 글이니까요. 잡지의 글을 평가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잡지의 글자 하나 하나까지 다 읽을 필요는 없잖아요. (잡지에 글 쓰시분들께는 경의를 표합니다)


  그가 첫 소설을 발표하고 몇 년 후, 그러니까 서른 몇 살 때의 그의 글을 정리해서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인 저에게는 크나큰 즐거움입니다. 그의 팬이 아니더라도, 그의 글이라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읽더라도, 하루 반나절 가끔 웃으면서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더불어 아, 이런 글의 토막을 엮더라도(물론 무라카미 하루키니까 가능한 일이겠지만) 책이 될 수 있겠다 싶었고, 이런 느낌으로 브런치에 써보면 좋을 것 같다는 영감을 준 책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 브런치에서의 첫 번째 책 이야기로 적절했다고 느껴지고요. 앞으로도 이런 느낌, 이런 분량으로 쭉쭉 가보려고 합니다. 이상으로 두 번째 제 소개이자, 첫 번째 책 이야기를 마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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