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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렉싱턴 Aug 15. 2015

기록하는 나에 대한 기록을 꺼내어

김민철,<모든 요일의 기록:>

  (큰)서점에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책을 많이 읽는다는 뜻은 아니에요. 책을 많이 읽는 분이라면 도서관에 가지 않을까요. 서점의 다소 어수선한 틈바구니 속에서, 얼마 전 나온 잡지 표지는 어떤지, 베스트셀러는 뭔지, 소설, 에세이, 건강, 경영경제, 건축, 등으로 분류된 카테고리들을 쭉 둘러 봅니다. 그러다 몇 권의 책을 골라, 계산을 하고, 비싼 책값에 마음이 좀 무거워지고, 다음부터는 e-book이나 인터넷 서점을 이용해야지, 라는 다짐을 조금 한 다음, 서점에 까페가 있다면 커피를 한잔 하면서 책들을 읽다가 집에 옵니다.


  나름의 힐링인것 같아요.


  보통 그렇게 사온 책들은 집에 오면 책장에 처박히기 일쑤입니다. 대체로 조금 읽다가 지루해지면, 아, 나는 여러 책을 동시에 읽는 사람이지! 라며 다른 책을 좀 보다가.. 결국엔 모두가 책장에 꽂히게 됩니다. 조금 읽었다 하는 책이라도, 마치 피자 바깥쪽 도우는 남겨 놓는 사람처럼(저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만) 끝 부분은 조금 남겨놓고 맙니다. 그래도, 브런치에 쓰게 될 책들은. 꼭 다 읽고 쓰는 겁니다.


  오늘 말씀드릴 책은 근데, 인터넷 서점에서 산 겁니다. 하하 ^^; 인터넷 서점의 장점이 있는데요. 값이 싸다는 점, 미리보기로 책을 조금 볼 수 있다는 점, 이미 읽으신 분들의 평가를 볼 수 있다는 점, 입니다. 서점에 직접 가는 것만은 못하지만, 인터넷 서점에 가도 조금 힐링이 됩니다. 인터넷 서점  관리자 분들이 추천해주신 책들은 재미가 있더군요. 어쨌든 저에게는 힐링의 시간입니다.


  책을 고른 이유는 흰색 표지에 또박또박한 검은 글씨로 쓰여진 표지 때문입니다. 기록하는 걸 싫어해서 '기록 잘 하는 법'류의 책도 싫어합니다. 그래서 읽은 책에 대한 기록이나마 남기자는 저이기에, 여기 표지에 또박또박 쓰여진 글씨를 제대로 읽었다면 저는 이 책을 사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날카로운 아이디어는 뭉툭한 일상에서 나온다!"

"모호해진 '나'를 자극하는 크리에이티브한 일상 활용법" (책 표지글 인용)

(여기서 굵은 글씨체는 제가 부담스럽다고 느낀 단어에요...)


  왠지 '아이디어 잘 내는 법'에 관한 책의 느낌을 주는데, 책을 다 읽고 난 마당에 다시 읽어 보니 괜시리 웃음이 납니다. '날카로운 아이디어','자극','크리에이티브','활용법' 관련된 얘기는 조금 나와서 좋았습니다.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을 가진 저자가, 자기계발의 전도사처럼 "이렇게 하면 회사에서 아이디어 잘 낼 수 있다", "회사다니는게 정말로 즐겁다", "회사 외의 너의 일상은 이렇게 활용하면 된다", 라고 말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대신 본인이 훌쩍 떠난 여행과, 책과 음악, 사진,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해서 좋았습니다.


  그녀는(아, 이름과는 다르게 여자분이셨어요) 본인이 읽고, 듣고, 찍고, 배우고, 쓴 이야기를 담담히 전합니다. 직장생활에서 사춘기를 겪는 듯이, 흔들렸던 때도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흔들림에도 불구하고 치열하게 살아낸 삶을 똑바로 바라봅니다. 주변 환경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습니다. 글을 쓰는 삶이든 아니든, 우리 모두는 삶을 살아가면서 그 기록을 남깁니다. 종이에 남기지 않더라도요. 눈에 담아 두던지, 뇌에 새겨 두던지 말입니다. 일의 기록과 일 외의 기록이 켜켜이 쌓여 우리네 삶이 되고, 쌓인 기록은 우리가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는 용기를, 잠시 쉬며 뒤를 돌아볼 때는 삶의 긍정을 선사합니다.


  책의 몇 가지 구절을 소개하면서 마치고 싶습니다. 아래는 전부 책 본문 인용입니다.


  "나는 지중해로 떠나버린 나의 그 만약을 알지 못한다. 좋았을 것이라고, 상상보다 더 행복했을 것이라고, 다만 짐작할 뿐이다. 거기에 다녀온 나도 꽤 괜찮았을 것이라고 믿어볼 뿐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도, 그 모든 선택의 결과물인 나도 꽤 괜찮다고 생각한다.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그 선택들이니까."p91


"그리고 최근에서야 나는 알았다. 좋아서, 행복해서 울어본 경험을 한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걸. 넘치도록 그런 경험을 해본 나는, 정경화를 좋아하는 나는, 그래서 행복하다."p140


"그러나 회사를 9년이나 다닌다는 계획은 대안에 끼지도 못했다. 그러므로 내 인생에 한 달짜리 휴가는 없을 터였다. 난 장담했다. 하지만 9년이 흐른 후, 나는 한 달짜리 휴가를 얻었고, 어느새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 안에 앉아 있었다."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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