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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렉싱턴 Mar 09. 2016

우리에게 신념, 혹은 종교의 의미는

옥성호, <낯선 하루>

사회에 나와 무엇인가 일자리를 갖게 되면 처음의 마음과는 달리 점점 매너리즘에 빠지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업무도 어느 정도 손에 익게 되면, 내가 서 있는 위치가 어디인가 숨 돌릴 여유도 생기고, 주변을 둘러보게 되죠. 일을 하고 돈을 버는 행위는 많은 사람들에게 지루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직장 생활에서 성공한 선배들, 혹은 자기계발의 전도사들은 말합니다. "매일 매일이 새로워!", "나는 자기 전에 내일 아침이 빨리 오기를 바라면서 잠자리에 들어!" 모두가 새롭게, 만족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냐 만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을 마주합니다. 덕분에 요일이나 날짜 개념도 가끔 흐릿해지기도 했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 새 많이 흘러가버린 시간에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처음에 이 책을 접했을 때, 범법을 저지르거나 혹은 도덕적으로 완전히 무너진 목사가 특별한 하루를 겪고 회심하는 내용이라 지레짐작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시카고뿐 아니라 한국 어디에도 있을 법한 목사의 모습입니다. 사실, 어디에도 그가 불성실하다거나, 불법을 저지른다거나 하는 내용은 없습니다. 오히려 매일 매일 힘들지만 성실하게 목회에 임하며, 새벽기도도 본인이 직접 참석하고 교회 내의 그 어떤 부목사보다 자신이 성도들을 잘 알고 잘 챙긴다고 여기는 사람입니다. 교회 성도들도 그를 좋아하고 따릅니다. 척박하기 그지없는 이민 1세대의 미국 생활에서, 자신의 일터에 맥도날드 커피를 들고 방문하는 목사를 환영하지 않는 신도는 없을 것입니다.


시카고에서 300명 정도가 출석하는 한인 교회의 개신교 목사가 그 주인공입니다. 자신이 목회 하는 교회의 성도들을 끌어안고 가기 위해, 또 한 사람이라도 본인의 교회로 오게 하기 위해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가정을 위해, 교회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그 날이 그 날 같은 하루를 보내왔는데, 평소와는 너무도 다른 일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맞닥뜨리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새벽기도 때부터 하루를 마감하는 날까지 계속됩니다. 본인과 큰 상관없는 문제라면 모르겠으나, 터지는 일마다 본인의 목회와 신앙의 근본까지 흔들어버리는 일들입니다. 하루에 하나만 마주쳐도 정신이 혼미해질 듯한데, 이 '낯선 하루'는 주인공을 가만히 놓아두지 않습니다.


물론 그저 성실한 목사에게 닥친 험난한 하루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 교회가 갖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해온 저자의 이전 책들에서처럼, 한국 교회에 대한 블랙 코미디가 곳곳에 등장합니다. 새벽 기도 참여를 높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드러내고 마는 기복 신앙적인 요소, 헌금 많이 내는 성도가 갖는 큰 발언권, 본인의 신앙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믿는 신앙의 헛됨. 이것은 한국 교회와 개개인의 성도들에게 끊임없이 지적되어온 문제들입니다. 


저자는 개신교계에서는 너무도 유명한 故 옥한흠 목사의 아들입니다. 저자의 다른 책으로는 <아버지, 옥한흠>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얇은 책이었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해서, 목회라는 것에서 많이 생각할 계기가 되었습니다. <낯선 하루>에는 교회 일에 너무 바빠, 가정에 신경을 많이 쓰지 못하는 목사가 나옵니다. 개신교계의 큰 추앙을 받는 옥한흠 목사님도 정작 가정에는 신경을 많이 쓰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바쁘게만 돌아가서 자신과 주변 사람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한국 사회처럼, 한국 교회도 그저 열심과 헌신, 희생을 먹고 성장하다 보니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에는 정작 소홀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은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읽고 그 감동의 조금이라도 전할 수 있는 글을 자신도 쓸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물입니다. 책 이름은 여러 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솔제니친이라는 작가가 한 사람에게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칠 정도로 대단한 작가인지는 몰랐습니다. 이 책을 읽고, 솔제니친과 그가 쓴 글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 졌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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