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이윽고 슬픈 외국어>
내년 가을부터 미국에서 공부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올 겨울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고, 지금은 유학 시험 준비를 하고 있어요. 덕분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이 늘었습니다. 사람들도 거의 만나지 않고 혼자서 영어 공부를 하고 책을 읽습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좀 더 나 자신과 가까워지는 것 같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무엇인지, 하나하나 꼽아 가면서 생각해 보게 되고요. 크게는 나는 어떤 일을 하면서 행복할지 진지하게 돌아보게 되고요. 작게는 저의 작은 취향들, 예를 들어 좋아하는 음악이라든가 가수, 혹은 영화에 대해 꼽아 보기도 합니다. 이러한 시간이 무척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남이 시키는 일을 하는 건, 지금 생각해 보면 무척이나 지루한 일인 것이었습니다. '내 생각'을 할 겨를도 없고요. 물론 나중에도 저는 월급을 받는 생활을 하게 될 확률이 크지만 월급을 받기 위해 일하는 것과, 그저 월급은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것에 불과(하지만 꽤 중요한) 것이라는, 두 가지 관점 중에 후자의 관점을 기준으로 직업을 택하려 합니다.
유학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으니, 이왕이면 공부를 마치고 그곳에서 일을 해 보고 싶습니다. 이것도 나 자신을 증명하고자 하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내 삶을 일구어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는 것 말이죠. 뭐, 그런 욕망에 따라 다른 나라에서 공부하고, 살아 보는 것도 삶에서 나쁘지 않은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지금은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기간이라, 조금 긴장되고 초조합니다. 만, 잘 될 겁니다.
외국에서 살아 보신 적 있으신가요? 여행 말고, 음.. 아니, 여행이라도 한 곳에 한 달 넘게 살아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생각해보니 굳이 여권을 가지고 가야 하는 곳이 아니라도 상관이 없겠네요. 지금까지 주욱 살고 있던 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살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고향에서 대학까지 졸업하고 서울에서 직장을 구했어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외국의 다른 곳으로 파견 근무도 한 적이 있습니다. 9개월 정도 지냈네요. 뭐, 모든 경비는 회사에서 처리를 해 줬기 때문에 외국에서 사는 동안 뭔가, 삶을 일구어야 한다는 강박감은 전혀 없었습니다. 서울에서와 마찬가지로 주어진 일만 쳇바퀴 돌듯 하면 되었고, 한국인이기 때문에 얻는 이익이나 불이익은 별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있었는데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외국 거주 생활은 무척이나 생경했습니다. 만나는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가, 먹는 음식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굳이 기록해 두지 않아도 머리에 오래 남습니다.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그럼에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기에, 자비를 들여 외국 생활을 다시 하려고 하나 봐요.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1991년 즈음의 미국 생활을 에세이로 남긴 것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 사람입니다만 그의 국적을 자주 되새기게 되지는 않습니다. 그의 소설의 무대는 왠지 한국이라도, 중국이라도, 혹은 가상의 어떤 곳이라도 그다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미국은 자주 떠오르지 않지만, 음... (저는 가본 적 없는) 남유럽의 이름 모를 도시로 소설의 무대를 옮겨도 유난히 이상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저는 그의 글들이 특별히 어떤 문화적 바운더리를 강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말투나 음식이나 언어나, 가장 먼저 물씬 풍겨 나오는 것은 일본의 그것이지만 꽤 그 물이 빠져 있다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느낀 것은 그가 외국에서 겪으면서 겪게 되는 이(異)문화와의 낯선 만남입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거칠게 맞닥뜨리네요. 무라카미 하루키도. 그럴 줄은 몰랐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젊은 시절에 일본이라는 나라와 그 나라의 말과 문자에 대해 가능한 거리를 두고 싶어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젊었을 때,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조금이라도 일본이라는 상황에서 멀리 도망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하면 조금이라도 일본어적인 것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본문 292쪽)
그는 영미권 작가들의 소설을 먼저 접하게 됐고, 그에게 누구도 소설을 가르쳐 준 바 없지만 어쨌든 무라카미 하루키는 영미권 작가들의 글에게 첫 영향을 받게 되지요. 하지만 미국 동부, 어쩌면 미국 문화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흠뻑 빠진 후, 그의 일본인 다움은 오히려 단단해집니다. 이런 경험이 미국 생활을 마친 그에게 '언더그라운드' 등의 르포를 쓸 수 있게 해 준 다른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그 악전고투 끝에 내 나름대로 '타협점을 찾은'일본어 문장의 스타일을 조금씩 익혀감에 따라, 그리고 현실적인 문제로 일본을 떠나 지내는 세월이 늘어남에 따라, 나는 점점 일본어로 소설 쓴다는 행위를 좋아하게 되었다. (본문 293쪽)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은 어느 순간에서도 웃을 수 있는 분위기가 있다는 생각이었지만, 이번 책은 제목에서도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어떤 면에서는 살짝 시무룩하고 우울한 느낌도 듭니다. 단지 외국 생활의 고단함을 은연중에 보여 준 것일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1980년대 작품 활동을 계속해 보면서 얻게 된 피로감이 묻어 나온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작가로서의,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성장의 고백이었으리라 짐작합니다. 젊은 시절 그가 글을 쓰면서 가졌던 일본어, 일본 문화에 대한 생각, 그리고 외국 생활을 하면서 변했던 그의 시각들을 솔직하게 읽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제가 겪게 될 2017년의 미국은 어떨지, 그것도 기록에 남겨야겠다는 생각도 하고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