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철, <작은 차 예찬>
어렸을 때부터 자동차를 좋아했습니다,라고 말하기엔 조금 멋쩍은 일이지만 저도 자동차를 꽤 좋아하는 편입니다. 어렸을 때 가지고 놀았던 태엽 장난감, 건전지와 모터로 달리던 미니카의 기억. 몇 번 가보진 못했지만 놀이공원 범퍼카에 앉을 때의 묘한 긴장감과, 희열. 대학에선 기계공학을 전공했습니다. 도로 위에서 기름을 태우며 달리는 자동차는 기계공학의 산물이죠. 수능 치고 따 둔 운전면허는 별 생각 없이 입대한 군에선 운전병이라는 보직을 덜컥 받았습니다. 명색이 기계공학도라지만 제대로 된 기계 하나 뜯어 본 적 없는 얼치기였는데, 군대에서 기름 때 묻혀가며 자동차 뱃속을 뒤적거린 경험은 제겐 꽤 소중합니다. 그러고 보니 해외의 멋진 자동차들 사진을 제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한 장 두 장씩 모은 기억도 있군요.
책을 쓰신 박규철님은 국내 1세대 자동차 칼럼니스트라고 하십니다. 예순이 넘으셨지만 아직도 현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신 분입니다. 이번 달에 교보문고에 들렀다가 자동차 잡지를 샀는데, 거기에 이 분이 쓰신 글이 나오더군요. 이 책을 읽고 난 뒤 발견한 이름이라 반가움이 더 컸습니다.
자동차, 익숙하긴 하지만 기술은 점점 발달하고 있고, 일반인들이 자동차에 대해 제대로 알기란 참 어렵습니다. 요즘은 특히, 간단한 점검에서부터 타이어 교체하는 것까지, 차주가 직접 하는 경우는 점점 더 보기 힘들어지고 있지요. 인터넷의 자동차 시승기를 읽어 봐도, 전문 잡지를 읽거나 책을 읽을 때에도, 어느 정도 관심이 있지 않고서야 처음 접할 때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자동차 시승기나, 향수 시향기나.. 제겐 직접 겪어 보지 않는 이상 이해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적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어쩌면 자동차는 이미 물과 공기처럼,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지만, 자동차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점점 더 적어지는 것 같습니다. 자동차도 꽤 똑똑해져서, 자동 주차나 크루즈 시스템 같은 경우는 차주에게 앞서 말한 점검이나 정비 외에 순수 '운전'이라는 분야마저 빼앗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뭐, 제가 어느 정도 정비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운전도 좀 할 줄 알아야 되고..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건 아닙니다. 재미있는 자동차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아무렇지 않게 이용해왔던 자동차라는 존재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고, 친숙하게 느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입니다.
이 책을 쓰신 박규철 님은 아마 자동차에 대해 국내 다른 어떤 기자보다 전문성을 갖고 계실 겁니다. 전 세계 부호들의 슈퍼카에 대해하실 말씀도 많으실 테고요. 하지만 이 분이 쓰신 첫 책은 작은 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주변에 흔히 보는 자동차가 많이 나옵니다. 마력이나 토크, 차체 강성에 대한 이야기는 접어 두십니다. 대신 어린 학생이나 자동차에 막 관심을 갖기 시작한 사회 초년생을 본인의 차고에 초대해서 본인의 기억, 차에 얽힌 이야기를 해 주시는 느낌이에요. 커피 한잔 내주시면서요. 독자들은 따뜻한 커피잔을 감싸고 편하게 듣기만 하면 됩니다. 야, 오일 쇼크 이전에 나온 차가 진짜 자동차지. 니가 이때 로망을 아냐? 요즘 나오는 건 차도 아냐. 라는 느낌과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이야, 요즘에 나오는 쪼그만 차들 엄청 예쁘네. 처음엔 이 차 이랬거든. 여기 와서 핸들(스티어링 휠..이라는 표현이 맞겠지만요. 친숙한 느낌으로) 한번 잡아봐. 지금도 느낄 수 있어. 작고 꽤 멋진 차야. 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책에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자동차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저렴한 차, 값비싼 차, 수명이 짧았던, 혹은 자동차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차. 하지만 공통점은 비교적 '작은 차'라는 게 되겠지요. 작은 차는 연비가 좋고, 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할 수 있고, 환경 파괴를 덜하니까 작은 차가 좋다는 것만은 아니에요. 큰 차만큼, 작은 차에도 낭만이 있고. '재미'가 있다는 것. 한국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큰 차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요. 이런 문화에 한 권쯤 읽힐 만한 책이지 않나 합니다.
책을 덮고 나면 작고 오래된 차가 있는 차고에서 불쑥, 나와버린 느낌이 듭니다. 뭐든 추억이 켜켜이 쌓인 것들은 소중한 것 같아요. 그때 쓰던 향수, 그 때 듣던 노래, 같은 것 있잖아요. 자동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때 타던 자동차'앞에서 연비니 뭐니 하는 건 다 의미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립니다.
저도 나름, 차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차가 없었거든요. 8월에 폭스바겐 비틀을 출고했답니다. 책 리뷰를 쓰면서 제 근황도 전할 수 있어서 브런치가 정말 좋네요! ㅎㅎ 저도 이제 카 매니아 소리 좀 듣고 싶고요, 차와 함께 추억을 쌓아가려고요. 오래 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