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렉싱턴 Sep 11. 2015

아이폰 6s 출시 기념

월터 아이작슨, <스티브 잡스>

  한국시간으로 10일 새벽, 신제품에 대한 애플의 발표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던 아이폰 6s였지요. 아이폰 5 유저로서, 저도 오랜 시간 발표를 기다렸습니다.  한국이 1차 출시국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빨리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스티브 잡스 평전을 읽은 것은 2012년 언젠가였을 겁니다. 이미 애플의 제품이 한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 때였습니다. 아마 아이폰 4나 4S가 팔리고 있었을 거예요. 그때까지 저는 애플에 대한 알 수 없는 반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mp3 하면 아이리버였는데, 아이팟이라는 물건을 감히(?) 출시하여 아이리버를 힘들게 한 기업이라는 생각을 좀 했더랬죠.


  스티브 잡스가 대단한 사람이란 건 시중에 너무 많은 책들이 말하고 있었고, 저는 '이 사람들이 언제부터 스티브 잡스에 관심이 있었다고...'라는 생각으로,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생각은 항상 갖고 있었습니다. 잘 나가던 아이리버에게  한 방을 먹인 스티브 잡스라는 사람에게 어떤 두려움마저 느끼고 있었습니다.


  시간을 좀 더 거꾸로 돌려 보면, 애플의 제품 중에 처음으로 제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1998년 출시된 아이맥이었어요. 커다란 데스크탑이 모니터의 아래, 혹은 옆에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던 제게, 모니터와 본체가 합쳐진 근사한 곡선의 물체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생경했습니다. 무채색의 금속, 혹은 단단한 플라스틱 느낌의 모니터나 본체 재질만을 봐오다가 맞닥뜨린 반투명 청록색 모니터(그땐 본체가 모니터와 일체형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는 충격적이기까지 했지요. 그때 남긴 강렬한 인상은 시간을 지나고 지나 2012년 언저리, 이 책을 통해 되살아났습니다.


  이 책을 읽을 때까지도, 제게 애플 제품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잡스가 세상을 떠난 뒤 2013년, 아이폰 5를 구매하면서, 어쩌면 스티브 잡스가 가장 적게 개입한 아이폰을 처음으로 갖게 됐습니다. 그때 저는 그동안 쓰던 폰에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2004년에 처음 구매한 슬라이드 폰으로부터 시작해, 제가 잘못된 제품을 뽑은 건지 험하게 쓴 건지 1년에 하나씩 폰을 바꾸었지요. 직전에 쓰던 스마트폰은 저절로 재부팅이 되고 배터리가 갑자기 다 닳아 버리고 카메라에 먼지가 껴서 서비스센터에 주기적으로 먼지 닦으러 가는 게 일이었습니다. 스마트폰이 밤에 갑자기 꺼져서 알람이 울리지 않는 것은 무척 짜증이 나는 일이었습니다. 새로 장만한 폰에 기대하는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맞춰 놓은 알람이 안 울리는 일이 없을 것. 카메라 성능이 점점 나빠지지 않을 것. 그리고.. 내가 어떻게 쓰든, 약정 기간 동안 잘 버텨줄 것. 최근 나온 폰들은 전반적으로 품질이 좋아져서 아무 문제가 안될지 모르겠지만, 당시의 저에게는 큰 문제였습니다. 1년마다 폰을 바꿔서, 더 이상 위약금을 내는 것도 싫었어요.


  2013년 5월에 구매한 아이폰 5는 지금도 아침마다 알람을 울립니다. 회사에 지각하지 않게 하는 가장 큰 요인입니다. 카메라도 훌륭하고요. 약정 24개월은 이미 만료되었고 30개월째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때 아마 갤럭시를 샀더라도 지금까지 만족하며 썼겠지만, 어쨌든 이토록 오랫동안 사용한 폰은 저에겐 아이폰입니다. 애플의 다른 제품도 써보고 싶어서 아이패드 에어를 구매하여 잘 쓰고 있기도 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영광을 계속 지켜보지 못했습니다만, 그가 인정한 기록물이 후세에 전해질 수 있게 됐다는 것은 다행한 일입니다. 꽤 두께가 있는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스티브 잡스라는 인물에 대해 꽤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체 내부 부품이 보이는 아이맥의 반투명 케이스처럼, 그도 언젠가는 자신을 대중들에게 슬쩍 내비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신화화되지 않은 이야기를 통해, 스티브 잡스도 한 인간임에 안도합니다. 그는 결코 완전무결한 성품에, 완전무결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불완전한 한 인간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디자인을 입혀 완전하게 통제하고 싶다는 집착으로 어떻게 이렇게 오래 기억될 제품을 내놓았는지 알았습니다.


  애플 제품을 통해, '애플'같은 존재감을 갖는 다른 어떤 회사가 있을까 찾아 보게 됩니다. 똑같은 제품을 내놓더라도 회사만의 분위기, 고집이 느껴지는 제품 말이에요. 그런 제품을 만나면 반갑습니다. 작게는 제품부터 시작해서 포장, 서비스, 매장까지 하나의 철학이 감도는 회사. 디자인에서부터 회사의 시그너처임을 알 수 있는 회사.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미친 생각으로 똘똘 뭉친 회사. 그런 회사 제품은 돈이 아깝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안도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없지만, 세상엔 그 같은 집착을 가진 사람이 있다. 애플 제품을 처음 뜯을 때,  사용할 때 느낀 기쁨을 다른 제품에서도 느낄 수 있을 때 기쁩니다. 잡스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도 할 수 있다. 본인의 이름을 달고 나가는 모든 제품, 산출물에 혼을 쏟아부어 만들어 내는 것. 나도 할 수 있다고. 지금은 많이 부족하지만 글을 쓸 때도 나만의 향기가 푹푹 풍기도록 쓰자. 적당히 읽히는, 소비자의 기준이 아니라 내 만족과 내 기준을 통과하는 글을 쓰자. 그렇게 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삶의 관점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