갉아먹는 것
4월 29일 회사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어려워하고 눈치를 많이 본다.
그래서 회사생활은 내게 큰 고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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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전화를 당겨 받았다.
서류 하나를 발급해달라는 전화였다.
민원인은 서류가 언제 발급이 되는지, 5월 1일이 근로자의 날이고 이 날 출근을 안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 전까지 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
내 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발급시간을 정확히 말해 줄 수 없었다. 하지만 모른다고만 할 수 없기에 최대한 친절하게 답변했다.
전화를 끊고 담당자에게 메모를 남긴 후, 내 자리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었다.
이후 담당자가 와서 내게 물었다.
담당자: 선생님이 증명서 오늘 발급된다고 그랬어요?
나: 아뇨. 최대한 빨리하겠다. 노력하겠다. 그렇게 얘기했는데요.
담당자: 근데, 이 사람은 오늘 발급해준다고 말했다는데?
나: (고개를 갸우뚱하며) 아뇨, 그렇게 말 안 했는데요.
담당자의 표정은 어두워진다.
담당자: 선생님이 무슨 의도로 그렇게 얘기했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대화는 이렇게 마무리됐다.
담당자가 제자리로 가버리고 그 자리에 남은 나는 내가 무슨 얘기를 한 건지 되짚어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된다고 안 했는데, 뭘까? 내가 오해할만하게 얘기를 한 걸까?
그러다 퇴근길에 화가 솟구쳐 올랐다.
의도라니? 아니 내가 무슨 의도를 갖고 있다고? 단계별로 화가 솟구쳐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단어 하나가 내 마음을 이렇게 갉아먹다니, 정말 이렇게 미쳐가나 싶었다.
호흡을 고르고 마음을 진정시킨다. 하지만 화, 미움, 분노는 의도라는 단어에 물을 뿌리고 햇빛을 쐬게 해 내 마음에서 자라나 날 갉아먹고 있었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중 익준이 이런 말을 했다.
"저도 와이프 바람나서 이혼했어요. 밤새 병원 일하고 애보고 열심히 살았는데 와이프가 자기 친구 남편이랑 바람이 났어요. 처음에는 자존심이 상하고 그리고 남들 보기도 창피하고 아 인생 왜 이렇게 꼬이나 싶어 죽겠더라고요. 근데 어느 날 갑자기 시간이 아까웠어요.
걔 때문에 내 인생 이렇게 보내는 게 시간이 아깝더라고요.
미움은 날 갉아먹는다.
오늘 하루도 날 갉아먹느라 많이 힘들었을 자신을 위해 호흡을 내뱉고 웃어보자.
삶은 주어진대로 살아가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