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슬바람 Mar 29. 2021

산재 요양급여가 접수되었습니다.

  회사에 산재를 신청하겠다고 말한 뒤, 분당 차병원 원무과에 전화를 걸었다. 산재를 신청하기에 앞서 산재 신청 과정을 묻기 위해서였다.

병원에 와서 서류를 받아가면 된다는 산재 담당 직원의 말을 듣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앞으로 벌어질만한 상황을 떠올리며 '이럴 땐 이렇게 대처하고 음.. 그래! 이렇게 물어보고.. 좋아, 좋아. 할 수 있어' 하며 나를 다독였다.


  본관에 위치한 원무과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바로 여자 직원분이 보였는데, 그분이 산업재해 담당자였다.

나보다 먼저 와 상담을 받는 아저씨와 직원의 대화를 들으니 많이 긴장됐다. 내편이 없는 자리에서 스스로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큰 모양이었다.

"안녕하세요. 산재 신청이 처음이라 뭘 물어봐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요. 어.. 의사한테 가서 소견서만 작성해달라고 하고 서류 제출하면 되나요?"


"네. 저희가 서류를 드릴 테니까 이 부분은 환자분 본인이 작성하시면 되고, 뒷장은 교수님께 요청하시고 저희한테 주시면 병원에서 접수해드리고요. 아니면 환자분 본인이 직접 접수하시면 됩니다."


  정말 간단한 안내를 듣고 사무실을 나왔다. '그래, 여기선 내가 스스로 해내야 해' 또 한 번 나를 다독이며 복잡한 서류를 들고 산부인과가 있는 여성병원으로 향했다. 보통 당일 접수를 하면 대기시간이 굉장히 길기 때문에 사람이 너무 많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산부인과 접수처로 향했는데, 당일 진료 접수가 끝난 시간이었다. 심지어 오전/오후 진료를 나눠서 하는데 오전진료고 끝난 상황이라고 한다. 언제나 미리 예약을 잡고 왔기에 당일 접수의 상황을 몰랐다. 어쩔 수 없이 다음날로 다시 진료 예약을 잡고 돌아 나왔다.


 다음 날 병원으로 향하기 전 내가 작성해야 할 서류를 작성하기 위해 내용을 천천히 읽어봤다. 그리고 문제를 발견했다. 바로 "첫 재해일", "다친 경위", "산재를 신청하는 과"가 문제였다.


첫 번째, 다친 시기가 애매했다.


나의 경우는 현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 허리 디스크라는 질병이 있었다. 그렇기에 "첫 재해일"을 명확하게 짚어내기가 어려웠다.

2011년 스쿼트로 인한 둔근 통증으로 입원

2014년 지속적인 요추 통증으로 각종 치료를 받아오다 허리디스크 진단

2019년 허리 디스크 시술 2번.

아파온 기간이 길기에 재해일을 적기 어려웠다.


두 번째, 업무를 수행하다 다치지 않았다.


정확히 얘기하면 '기존에 있던 디스크가 업무를 수행하면서 디스크가 이전보다 더 빠져나왔다'가 맞는 표현이다.

현 회사에서는 3년 동안 근무했으며 이전에도 동일업종에서 1년간 근무했다. 반복적인 노동이 발생했고 2018년에 찍은 MRI에서는 허리의 근육이 할머니의 몸처럼 근육이 없으며 디스크는 더 빠져나왔고  2019년에는 허리를 45도로 굽히고 다닐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산업재해가 무엇인가?

업무상의 사유로 발생하는 노동자의 신체적·정신적 피해가 아닌가.

취업 전부터 있던 질병이 어떻게 업무상의 사유로 발생한 신체적 피해인지를 서술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세 번째, 현재 산업재해를 신청하려는 질병이 '허리디스크'가 아니라 '자궁 선근증, 골반 울혈 증후군'이기 때문이다.


허리디스크로 인한 질병상 휴직을 하고 있는데 왜 선근증을 진단받은 산부인과에서 산재신청을 하려고 하느냐도 큰 문제였다. 2020년 2월부터 산부인과 진료를 받으면서 허리, 골반 통증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렇기에 통증이 있으면 한의원에 가서 침 치료를 받았고 정형외과에서 디스크 관련 치료를 받지 않았다. 치료를 안 받은 기간이 길기 때문에 정형외과에 가서 산재신청을 위한 소견서를 부탁할 수 없었다.


  그렇다한들 산부인과에서 산재신청을 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산부인과에서 신청을 한 이유는 스트레스로 인하여 내분비계 이상, 자율신경계 이상, 면역계의 이상을 초래하고, 정신/신체적인 여러 증상(우울, 불안, 분노, 불면 등)과 여러 질병을 야기할 수 있다고 의사는 말했다.


  업무로 인한 육체적 노동과 정신적 스트레스로 우울증까지 온 상태였기에 업무로 인한 산재를 인과관계를 조금은 설명이 될 거 같았다.  


  


  병원으로 가는 길에서 의사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대본을 적고 암기를 하고 자연스럽게 말하기 위해 계속 중얼거렸다. 다행히도 의사는 나의 얘기를 천천히 들어줬고 바로 서류를 작성해 줬다. 당황했던 건 경력이 많은 의사는 산재 서류를 처음 봤다고 한다. 산부인과로는 산재 인과관계를 심사하기 어렵다고 하던데, 그래서 많이들 신청하지 않나 보다.


  살면서 굳이 겪지 말아야 할 것을 겪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큰 산을 넘었고 앞으로 다가올 것들이 어떤 스트레스를 갖다 줄지 모르지만 일단 공단에 접수를 완료했다.

작가의 이전글 내게 올 이득은 무엇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