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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사르 Aug 31. 2023

사람들은 다 어디서 돈이 나는 걸까.

30대 신입사원의 내돈 내산 인생살이





‘사람들은 다 어디서 돈이 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서 사람들을 구경하는 추리닝 차림의 30대 신입사원.      


주말 오후, 터미널에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터미널 한가운데에 위치한, 대형 서점에는 사람들이 자리를 하나씩 잡고 앉아 책을 즐기고 있다. 은은한 노란 조명 빛 아래서 천천히 넘겨지는 수십, 수백 장의 책장들에서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에세이 코너에서 책을 빼드는 30대 신입사원은 피곤에 찌들어있지만.     


‘이젠 네가 피어날 차례야’ 

‘서툰 어른 처방전’     


어쩐지 위로를 건네는 책들에 손이 간다. 그러다,     


‘회사는 나를 책임져주지 않습니다’ (그렇긴 하지)

‘비낭만적 밥벌이’ (솔깃하다)     


이런 책들에 마음이 간다. 그리고 나도 이런 책을 쓰고 싶다,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나를 책임질 수 있는 밥벌이가 될지도 모른다며 짐짓 희망을 품는다. 하지만 책을 읽던 30대 신입사원은 어깨에 메인 백팩의 무게를 버틸 힘도 없다. 에잇, 하며 백팩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무겁다. 아, 백팩만 무거운 게 아니었다 싶다.     


한편, 서점 앞으로는 곧 한쪽 연인을 버스에 태워 보내는 장면이 연출될 법한 커플들이 서로의 손을 꼭 잡고 터미널을 배회하고 있다. 친구들과 밝고 가볍게 수다를 떠는 학생 무리도 심심찮게 보인다. 하루에 수 백 명은 다녀갈 법한 이 터미널에는 먹을거리, 구경거리,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이곳을 떠나는 이들에게 참 친절한 도시라는 인상을 남길 만큼.      


그 안에서 저마다의 표정으로 터미널을 걷고 있는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시간과 돈을 내어서 행복과 여유를 채우고 있다.     


그에 반해, 취업 1년 차 신입사원은 터미널 카페 한편에 앉아 ‘음료가 얼마, 주차비가 얼마, 얼마를 합하니 꽤 얼마….’ 그런 계산을 하고 있다. 평일 내내 일에 찌들어서 스트레스를 풀겠다며 동료들과 밥을 사 먹고, 차를 굴리더니 주말 오전부터 터미널까지 와서 돈을 쓰고 있다니. 스스로가 한심스럽다. 이어서 ‘내일은 엄마가 먹고 싶다는 장어를 먹으러 가야 하는데, OO까지 기름값이 얼마, 장어가 얼마….’ 돈 걱정을 하고 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아주 날 때부터 돈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았다. 오해하진 않길. 집에서는 쥐어짜 낼 여윳돈도 없을 만큼, 팍팍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이렇게 없이도 살아봤는데, 앞으로 뭐가 무섭겠냐, 그런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무엇보다도 학교 성적도 나쁘지 않았고, 뭐든 열심히 했으니까 미래에 대한 걱정도 없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백수가 되어 벌이가 없는 날들이 계속되었는데, 그때까지도 그렇게 괴롭지 않았다. 취업만 하면 얼마든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신입사원이 된 지금은.     


“내 차는 기름을 너무 많이 먹어.”      


기름값 한탄을 하고 있다.      

생애 처음 몰았던 차는 18만 킬로를 여행한 XG였다. 친척에게서 양도받아 주행연습용으로 몰았었다. 낡은 차였지만, 크고 길쭉한 자태가 차에 오르내릴 때마다 어깨를 으쓱하게 했다. 클래식해 보였다고나 할까. 동생은 ‘이 차를 젊은 여자가 타고 다닐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 할 거라’고 얘기했었다. 실제로 골목길에서 뿅 튀어나온 오토바이의 운전자가 다짜고짜 나를 “아저씨!”라며 불러 세웠던 적도 있었다. 나는 정말 아저씨가 된 것처럼 “뭐요!”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1년 정도 틈틈이 몰았던 XG의 정기 검사날, 질소산화물 초과로 불합격 판정을 받게 되었고, 합격으로 가기 위한 수리 비용이 차량가액만큼 나오는 바람에 폐차를 결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차를 만나게 되었다. 아는 사람을 통해 중고로 샀는데, 이때부터였다. 고난의 시작이. 매달 차 할부를 갚고 나면 한 달 치 월급은 반토막이 나 있었다. 덕분에 말 그대로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통장은 차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내가 고른 차가 하필 사고차량이었다. 이건 접촉사고로 차를 정비소에 맡기면서 알게 되었다. 정비소 직원은 질책하는 듯한 말투로 “차 사고가 이전에도 나셨네요?”라고 말했다. 차를 양도받던 날, 서류에 문짝 교체 이력이 있길래 중고차 딜러에게 물어봤을 땐, 분명 사고 난 게 아니라고 했었는데 말이다. 그 말에 내가 흥분하기 시작하자 정비소 직원은 조용히 눈치를 보며 큰 사고인 건 아닌 것 같다며 나를 달랬다. 뭐, 정황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내 잘못이 크다. 앞으로 적어도 10년은 내 단짝으로 지내야 할 자동차가, 사고가 났었고, 언덕을 오를 땐 끙끙대고, 덜커덩거린다. 함께 해도 괜찮을 걸까,라는 생각이 드는 차에 매달 피 같은 월급을 붓고 있다.


고민은 그뿐이 아니다. 진정한 고유가 시대에 출퇴근에만 휘발유 2L를 쓴다. 여기에 점심이나 저녁 외식을 하면 금세 바닥이 난다. 그런 히스토리를 모르기 때문인 건지, 차를 태워달라고 은근히 조르는 사람도 있다. 내 차는 공유재가 아님에도 말이다. 몇 번은 그러려니 하다가 태워줄 테니 커피를 사달라고 해본다. 그러면 치사하다는 식으로 나온다. 그 후엔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본인 돈은 아깝고, 내 돈은 안 아까우시겠다?’ 그런 생각. 하지만 아무래도 옹졸한 생각인 것 같다. 이 모든 옹졸함을 불식시킬 만한 건 역시 돈일까, 아니면 내 돈을 지키기 위한 끝없는 디펜스인 걸까. 그 중간지점을 찾아가는 게, 앞으로의 몫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자연스럽게 보답을 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겐 오히려 배우게 된다. 이쯤 되면 차는 곧 돈이고, 사람 간의 배려와 신뢰를 들춰보는 치트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 고작 차 하나일 뿐인데, 이토록 깊게 들어갈 줄이야. 내 돈 내 산 라이프의 시작이 생각만큼 유쾌하지는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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