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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진 Jul 13. 2021

경춘선, 엠티(MT)의 추억_서울생활사박물관

전시후감


선배님, 안녕하셨어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저는 지금 서울 화랑대역 근처 '경춘선 숲길'에서 선배님께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SNS 때문에 수십 년간 멀리해온 편지지에 볼펜으로 한 자 한 자 쓰려니, 이거 정말 힘드네요. 

그런데, 궁금하시죠? 오랜만에 뜬금없이 연락하는 데다가 아날로그 편지라니 말입니다. 



저는 방금 '서울 생활사박물관'에서 '경춘선' 전시를 보고 나왔습니다. 전시를 보는 내내 선배님 생각이 났어요. '경춘선' 전시는 우리들의 대학 시절, MT의 추억을 보여주고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선배님을 처음 뵈었던, 학과 전(全) 학년 강촌 MT를 떠올렸습니다. 



그날 몇 시였던가요? 청량리역 시계탑 아래서 30명 정도 우르르 몰려들었던 때가요. 저는 풋내기 신입생이라 같은 수업 듣는 1학년 동기들과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뵈었던 몇몇 선배님 외에는 얼굴을 모르니, 수십 명이나 되는 선배님들이 낯설고 어려웠어요. 특히 군복 바지 입고 나오셨던 예비역 선배님요, 지금 생각해봐도 대체 왜 그러셨는지 모르겠어요. 혹시 빤스(죄송해요, 옛날 말 쓰겠습니다)도 사각, 난닝구는 반소매였을까요? 


'경춘선' 전시에 청량리역 시계탑 사진이 있어서 혹시나 그 당시 우리 얼굴이 있나 찾아봤는데, 다행히 없더라고요. 우리들 모습은 없어도 그 시절의 사진을 보니 참 반가웠습니다.  



지금은 'ITX청춘’이라는 새마을호급 기차가 다니지만 그때는 '무궁화호’였잖아요? 역무원 아저씨가 기차표를 집게로 찰칵찰칵 찍어 주셨는데, 지금은 제 폰으로 '툭' 대면 '삑' 하니, 세상 참 좋아진 건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건, 그 시절에는 ‘낭만’이 있었다는 거죠. 


기차 여행의 낭만 하면 무엇보다 카트에서 팔던 ‘삶은 계란’이죠. 함께 소금도 내어 주던 그 삶은 계란이요. 선배님, 생각나세요? '삶은 계란에는 사이다야' 하시면서 그 비싼 칠성 사이다도 몇 병 사 주셨지요. 그때 정말 고마웠습니다. 가난한 대학생이 삶은 계란 사 먹기도 벅찬데 사이다까지 마셨으니까요. ‘아바나' 찾고 '아아' 찾는 요새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 했다가는 꼰대 취급당하겠습니다만…


삶은 계란과 사이다를 담은 카트 모형과 기타 치는 대학생 사진, 통기타, 워크맨, 가수 전영록 씨가 모델로 나온 뱅뱅 청바지 포스터 보니까 마치 지금 무궁화호를 타고 강촌으로 가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나이 들긴 들었나 봅니다. 허허허. 



선배님, 강촌 민박집 기억나시는지요? 다른 집보다 평상이 좀 더 넓고 주인 아주머니께서 술 마시고 방에다 제발 토해 놓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시던 그 집이요. 그 집 지금도 그대로 있을까요? 아마도 모텔이나 펜션으로 바뀌었겠죠? 에이, 참, 그놈의 부동산 개발이 뭔지요. 집이 깨끗해지는 거야 좋지만, 주인 아주머니 잔소리는 이제 들을 수 없잖아요. 그 잔소리에는 푸근한 정(情)이 들어 있었는데 말이죠. 


아 참, 그날 선배님께 처음 인사드렸던 영숙이 기억나세요? 자기는 집이 춘천인데 MT를 왜 강촌에서 하나며, 다음 MT는 서울에서 하자던 그 영숙이요. 


그 영숙이를 며칠 전, 거리에서 우연히 만났어요. 근처 카페에서 잠시 커피 한잔하면서 이야기 나눴는데요, 영숙이는 춘천에서 작은 카페 운영하고 있답니다. 영숙이도 선배님을 기억하고 있던데요, MT 갔던 그 시절에 영숙이가 선배님을 좋아했나 봐요. 그런데 고백 한 번 못하고 세월이 흘러갔다네요. 


'경춘선' 전시물 중에 민박집에서 이야기 나누는 학생들 미니어처가 있는데요, 그걸 보면서 그 시절 영숙이가 생각났어요. 우리도, 영숙이도 같은 노래 또 부르고 또 부르며 무슨 그리 할 이야기가 많아 밤을 새웠는지 모르겠습니다. 선배님, 조만간 저와 영숙이네 카페에 가시죠. 제가 삶은 계란과 사이다 사 들고 'ITX청춘' 기차로 모시겠습니다. 



선배님, 오랜만의 편지가 길어졌습니다. 


지금은 운행하지 않는 철길, 경춘선 숲길에서 선배님을 추억하니 기분이 참 좋습니다. 선배님께서도 서울 생활사박물관의 '경춘선' 전시 관람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서 제가 추억하지 못하는 그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더욱더 좋겠습니다. 


선배님, 건강 유의하시고 잘 지내세요. 또 연락 드리겠습니다. 



□ <경춘선> 전시 정보

- 기간 : '21.6.8.~10.3.

- 장소 : 서울 노원구 동일로 174길 27 서울생활사박물관 4층 기획 전시실 

- 시간 : 일 3회, 회당 2시간 관람 가능 

    *1회차, 10시~12시 / 2회차, 13시~15시 / 3회차, 16시~18시

- 예약 : https://yeyak.seoul.go.kr (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 

- 입장료 : 무료

- 문의 : 02-3399-2900 / http://museum.seoul.go.kr/su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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