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 (Late Autumn, 2011)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계절과 사랑을 흘려 보냈을까? 계절은 청각처럼 온다. 매미 소리가 울리기 시작하면 내내 여름이란 걸 알아야 하는데, 꼭 소리가 멎고 나서야 계절을 그러쥔다. 까무룩 잊고서 몇 번이고 어긋남을 반복한다. 보내고 나서 애타하는 마음. 어긋나야 우리는 무언가를 그리워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만추>는 어긋난 마음을 접붙인다. 흘려 보내기보다는 그러쥐면서.
살인죄로 칠 년째 복역 중인 애나는 어머니의 장례를 위해 삼일 간 바깥으로 나오게 됐다. 으레 오랜만의 외출이란 게 그렇듯이 바깥은 생경할 정도로 변해있다. 버석거리는 피부와 관리안된 곱슬끼의 머리. 조금 단촐한 모습으로 버스에 앉은 애나는 차비를 빌려오는 훈을 만난다. 갚을 때까지 꼭 갖고 있으라며 손목에 시계까지 차게 된다.
훈은 능글맞고 촐싹이는 남자다. ‘서비스’를 한다는 훈은 일종의 호스트다. 데이트를 하고 어쩌다 몸도 섞는다. 지금은 어딘가에 쫓기는 눈치다. 전화가 울리고 한참을 얘기하다 끊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갑자기 툭 튀어나온 훈이 어색하고 불편한 애나는 시계를 자꾸만 돌려주려 하지만 실패한다. 버스에서 내리고 애나는 훈의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내버린다. 아마 그러면서 작별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이별과 만남은 늘 원치 않는 방식으로 일어난다. 애나는 이미 크게 엇갈린 사랑을 한 적이 있다. 드넓은 시애틀에서 애나는 그곳에 맞지 않음을 스스로 체감한다. 자신이 죄를 대신 뒤집어쓰게 한 옛 사랑을 마주할 때면 크게 눈동자가 떨린다. 잠깐 일상으로 복귀한 것 같다가도 전화가 울리면 허겁지겁 꺼내들어 수감 번호와 위치를 대는 순간 자각한다. 그리고 훈을 다시 우연히 마주한다. 그리고 데이트를 한다.
문 닫은 놀이공원. 멀리 보이는 다투는 두 남녀에 훈은 대사를 덧입히다. 그러다 애나도 함께하기 시작한다. 어떻게 변할 수 있냐고, 나를 보던 눈은 어디갔냐고, 따져 묻는다. 연애는 참 상투적이라서 거의 인류가 똑같이 뱉고 들었을 말로 가득하다. 그렇지만 그게 나의 일이 되면 너무나 사적이고 특별한 일이 되어버린다. 감정이 고양된 애나는 질주한다. 멀리, 멀리. 그리고 엇갈림의 역사를 털어놓는다.
도망가고 싶은 사람과 도망 다니는 사람이 만나면 둘이 함께 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아주 짧은 찰나일 수밖에 없다. 각자의 길로 달아나야 하니까 손 잠깐 스치고 입 짧게 맞출 시간만 겨우 날 테니까. 그래도 작별이 아니라 이별이라 말한다. 도망하다보면 언젠가 길이 겹쳐서 다시 마주칠까 싶어서. 끝에서 내내 커피잔을 매만지며 열고 닫히는 문을 바라보는 애나의 모습은 애처로우면서도 어딘가 담담하다. 모든 것이 쥘 수도 없이 흘러 가버리니까 모두가 각자의 삶에서의 도망자인 셈이다. 우연찮게 문이 열리고 내가 그 안에 있어서 만날 수도 있겠지만, 엉뚱한 문을 열어 내가 아닌 남을 만날 수도 있는 거다. 그래서 애나는 담담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숱한 어긋남을 뚫고 가니까. 그래도 어긋남 속에 접합이 있는 거니까.
이미지 출처 I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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