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팰리스> (Dream Palace, 2021)
원시에서부터 오늘날까지 인류에게 단 하나의 본능이 있다고 한다면, 집을 마련하는 것이 아닐까. 살아가기 위해서 머무를 ‘안전한’ 공간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다. 그렇지만 서글프게도 <드림팰리스> (Dream Palace>를 보고 있노라면 더 이상 우리의 ‘홈 스위트 홈’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딜레마의 딜레마의 딜레마. 삶이 웬만한 영화 못지 않게 복잡다단한 걸 알지만서도 정말 관계도도 그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게 얽히고 설킨 실뭉텅이처럼 툭, 눈앞에 놓였을 때 우리는 그만 아득해진다. 영화의 시작에서 주인공 혜정은 이삿짐으로 널린 집에서 벽에 못을 박는다. 월세와 전세, 그러니까 남의 집은 아니라는 얘기다. 혜정은 ‘내집마련’의 꿈을 이룬 듯하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수돗물을 틀자마자 녹물이나 흙탕물이래야 할 오수가 쏟아져 나온다. 부엌의 수도관이 아니라 땅에 뿌리 박힌 어딘가에서부터 시공이 잘못돼 생긴 일이다. 한참 수도꼭지를 틀어 놔도 오물은 끊이지 않고 나온다. 영화는 한 개인이 들어내서 뒤엎지 못할 뿌리깊은 부실함에서부터 시작하리라는 걸 암시한다.
산업재해로 남편을 떠나보내고 한동안 시위 진영에 머물렀던 혜정은 결국 기업과 합의했다. 그런데 아들은 농성장으로 자꾸만 향해서 그들과 교류한다. 드림팰리스의 녹물 사태 이후로 입주민들에겐 괜한 소문 내서 집값 떨어뜨린단 눈총을, 농성장에 가선 아들이 기업에 방화를 했단 오해를 받으면서 혜정은 이리저리 치인다. 모두 분양이 완료되면 녹물 보수 신청을 할 수 있단 모델하우스 측의 말에 혜정은 드림팰리스 홍보에 나선다. 그러다 같이 시위를 했던, 함께 남편을 잃은 수인이 방화죄로 구속됐단 얘기를 듣는다. 그리고 상황은 복잡해진다. 한 시간 오십 분의 러닝타임을 함께 해야 모든 이해관계의 엮임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집의 녹물을 고치기 위해 시작한 이 아파트 홍보에서부터 모든 불씨가 초래한다. 영웅심에 했던 단순한 거짓말이 너무나 큰 응징으로 돌아온 <어떤 영웅>(2021)이나, 사자의 코털을 건드려 동네가 불길로 번지게 된 <레 미제라블>(2019)가 떠오른다. 영화들은 변변치 않은 이득을 좇다 미끄러지는 얘기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다. 그게 너무나 작은 이득이어서, 혹은 나쁜 의도도 아니어서 벌어진다는 걸 생각할수록 비정한 현실감이 훅 다가온다.
구속된 수인의 자녀를 보살피면서 쌓인 오해를 풀은 혜정과 수인. 한동안은 괜찮은 듯보인다. 수인도 결국 기업과 합의하기로 한다. 나와서 농성장에 남은 사람을 향해 오열하지만, 혜정은 그런 마음이 없어질 것이라고 이제 다 괜찮아질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혜정이 선의로 집을 소개했던 일이 수인이 입주를 하지 못하고 떠돌게 됨으로 이어졌을 때 둘은 정말 회복할 수 없는 경지에 다시 이른다. 혜정은 입주민 시위대와 싸우고, 농성장의 대표가 죽음을 맞이한 후에 차에 테러를 당하고, 그리고 실의에 빠진 채 수인에게 향한다. 그리고 우리 둘의 사이만 괜찮아지면 좋겠다며 호소한다. 여태 선의로, 혹은 별 이유 없이 저질렀던 일이 너무나 불어서 해결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자 혜정은 무너진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 때문에 길거리에 나앉게 된 수인에게 호소하는 순간에서부터 혜정의 도덕적 정체성은 흔들린다. 그녀는 사태를 피했고 혹은 방관했고 혹은 모든 일의 기원에 있으면서도 이게 다 괜찮아지면 좋겠다는 마법적 소원을 빌고만 있기 때문이다.
<드림팰리스> 속 인물들은 꼭 지정된 행동을 해야만 하는 비극의 인묻들처럼 움직이고 상황에 처한다. 모두가 좋지 않은 끝을 마주하리라는 걸 안다는 듯이 체념하거나 혹은 이유모를 분노에 크게 휩싸여 있는 듯하다. 영화는 인물 사이와 사이를 교묘한 이해관계로 엮어냈다. 그물에 잡힌 물고기에게는 그대로 배로 끌려 올라오는 것 말고는 별다른 수가 없듯 모든 인물은 자꾸만 심연으로 빠져든다. 서로가 서로를 혐오하고 미워하게 된다. 그 그물을 던진 존재자에 대해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꾸만 심연으로, 그렇게 끝으로 향한다.
이미지 출처 I 다음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