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은 돈으로 육각형 박스에 담긴 꼬깔콘이라는 신상 과자를 사 왔는데, 아버지는 왜 그렇게 양도 적은 비싼 과자를 사 왔냐고 나무랐다. 나는 뭐라 반박하지는 않은 채, 방구석에서 손가락 마디마디에 고깔을 씌워 흡족하게 빨아먹었다. 그전에 좋아했던 인디언밥처럼 바삭하고 고소했는데, 그보다 더 진한 향이 풍겼다. 그래 양보다 질이지. 그런데 요즘 서점에 가면 꼭 시집을 한 권씩 고르게 되는데, 그때마다 꼬깔콘이 생각나는 건 무슨 조화일까.
대학 때 인명구조법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가장 기억나는 한 가지 가르침은, 함부로 뛰어들지 말고 최대한 밧줄을 던지는 것이었다. 이 수업은 자신을 먼저 구조해내기 위한 거라는 것. 나는 물과 더 친해지지는 못했지만, 먼 뒷날 시가 내게로 온 뒤에, 가장 먼저 포기한 것은 시를 쓰는 일이었다. 글 쓰는 게 두려울 때마다 눈앞에 물이 펼쳐져 있다.
와인 수업을 듣는 동안, 내면의 기억에 푹 빠져 있었다. 꼬릿 꼬릿 하고 깊고 복잡한 와인일수록 꼬불꼬불한 기억의 경로를 잘 파고들었다. 알코올로 통로를 넓히고, 산도로 씁쓸함을 지우고, 달콤함으로 슬픔을 중화시켰다. 수업의 목적은, 내가 좋아하는 와인을 고르기 위한 것이었다. 2~3년 이상 숙성된 달콤한 오크향과 가죽 냄새 가득한, 여름날 비가 막 내리기 시작할 때 땅에서 풍겨 나는 콤콤함까지 어우러진 향. 마시는 장소, 상황, 사람에 따라 다르게 전달되는 해석.
라프로익 10y으로 위스키에 입문한 것은 나에게 어울리는 우연이었다. 깊은 생각을 우려내는 피트 향이 겨울과 잘 페어링 되었다. 저렴이와 블렌디드를 건너뛰고, 라프로익보다 더 강한 피트와 CS(Cast Strength)까지 파고들고 나니, 내 취향을 좀 더 잘 알게 되었다. 위스키 선생님은 와인도 좋아했고, 커피도 잘 만들었는데, 취한 다음날 아침 손수 내려 주시는 게이샤 블렌디드 원두의 드립 커피가 가장 좋았다. 전날 읇조렸던 시구들이 해석이 되는 순간이었다.
겨울 아침이면 습한 바닷가 도시 상하이의 고속도로엔 비상이 걸린다. 짙은 안개가 뒤덮으면, 차들이 엉키어 수많은 사상자를 낸다. 그런 겨울 아침이면 모호함 속에 숨어드는 것이 좋았다. 공격받고 싶지 않을 때, 자존감이 낮아졌을 때, 마음을 숨기고 싶을 때 그러했다. 그리고 그 속에는 그러다가 틀 킨 마음을 변명하는 비상구까지 있었다.
시를 한 편 읽는 동안 느끼는 감정은, 참으로 다양해서 좋다. 잊은 기억을 되살리고, 두려움과 슬픔이 중화되고, 진한 와인 향기에 젖고, 위스키처럼 취하다가, 잔잔한 수면의 호수 같은 마음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과정은 육체적 짧은 절정과 그 이후에 이어지는 여운과도 닮아 있다. 많은 시인들이 진하게 우려 놓은 한 글자 한 글자를 가벼이 여길 수 없어서, 고이 모셔 두고 읽고 또 읽기를 반복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