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ny mini flowers❀ 스물아홉 번째 이야기
지인의 대부분 나의 직업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tiny mini flowers 일은 알지 못한다. 혹시나 관심을 갖는 사람이 있으면 이야기해 주지만, 관심을 가질 만큼 보이는 일이 아니기에 그런 일은 거의 없다.
그래서 이 일을 응원해 주는 몇몇의 사람들이 더 고맙다. 나의 엉성한 글들을 구독해서 봐주시는 한 분은 내가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을 때 기다렸다고 전해주셨다. 아이들과 할 활동 물품들을 살 때 보태라며 후원금도 주셨다. 살까 말까 고민하던 것들까지 신이 나서 샀던 기억이 있다.
지난 몇 개월간 한 달의 절반은 출장을 다녔다. 그래도 양곤에 있을 때면 종종 길거리 아이들을 만나러 나갔다. 유창하게 책을 읽어줄 수는 없어서 말이 많이 필요 없는 만들기 활동을 주로 가지고 나갔다. 두 달 전 한국에 갔을 때 새로운 활동물품들을 사 왔다. 응원해 주는 언니가 몇 가지 활동물품들을 선물해 주었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감사하고 힘이 되었다.
이 일이 어찌나 얇은지 하고 있는 나도 띄엄띄엄이고 무척 바쁜 E는 요즘 거의 함께하지 못하고 있다. 이 얇음을 어떻게 도톰하게 만들어 갈지 그것이 요즘 나의 큰 숙제다. 시간은 흘러 벌써 일 년이 넘었는데, 어떻게 발전을 시키며 안정화시킬지 그것이 참으로 문제다.
내가 ‘어떻게든 나가야 해!!’ 하고 힘을 내지 않으면 금방 흐지부지 사라져 버릴 것만 같다. 우리는 점점 더 바빠지고 있고 몸과 마음의 여유가 많지 않다. 미얀마엔 길거리 아이들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피고 돌봐야 하는 아이들이 너무나 많다. 그래도 매번 이동 길에 차 창문 너머 길에 있는 아이들을 보면 애틋하다.
7월 중순에 오랜만에 E와 함께 거리로 나섰다. 함께 시간 맞출 수 있는 날이 없어서 둘 다 휴가를 내고 나왔다. 마음 잡고 나온 김에 레단과 다공 모두 가야겠다 싶어 활동 물품을 50개나 챙겨 나왔다.
우리가 만난 장소가 다공과 더 가까워서 다공으로 먼저 갔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가서 그런지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평소엔 그렇게 많이 보이면서 왜 찾으면 안 보이는지... 여기저기 골목과 공원을 아무리 다녀보아도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레단으로 가야 하나 생각하며 택시에서 내린 곳으로 다시 돌아갔을 때, 보석같이 작은 두 아이들이 보였다.
남매 같았다. 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는 얼굴만 봐도 개구쟁이에 귀염상이었다. 우리가 말을 걸고 다가가자 조금 쭈뼛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왔다. 동물 가면을 몇 장 보여주며 고르라고 했더니 동생은 토끼를 골랐고 누나는 나비를 골랐다.
미얀마에서 구하기 힘들어 한국에서 사 온 색깔 유성매직을 꺼내주고 색칠하게 했다. 꾸미기용 보석 스티커들도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얼마나 열심히 하던지, 새로 꺼낸 유성매직이 다 망가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남자아이에게 넓은 곳은 색연필로 칠하는 게 더 쉽다고 보여주었지만, 진하게 색이 나오는 게 더 쾌감이 있는지 매직을 고집했다. 맘대로 해라~ 하고 두었더니 금방 흥미를 잃고 스티커를 붙이기 시작했다. 누나는 집중력이 좋았다. 흰색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주 꼼꼼하게 색칠을 하고 스티커도 잔뜩 붙였다.
다 만들었다고 내미는 가면을 얼굴에 씌워주니 아이는 무척 기뻐했다. 사진을 찍어 지금 네 모습이 이렇다고 보여주니 더 좋아하며 사진을 계속 보여달라고 했다.
아이들이 모여 좋아하고 있으니 어디선가 다른 아이들이 와서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너도 할래?"하고 건네면 절반은 그 말만을 기다렸다! 냉큼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오지만 절반은 "나 할 줄 몰라요"라고 말하며 망설인다.
미얀마에서는 "할 줄 몰라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무척 많다. 길거리 아이들 뿐만 아니라 일반 아이들 중에서도 이렇게 반응하는 경우가 참 많다. 경험이 없다 보니 겁이 나고 정말 말 그대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가 보다. "그냥 네가 색칠하고 싶은 색을 골라서 칠하면 돼. 도와줄게."라고 하면 조금 마음을 열고 다가온다.
그래도 안 한다고 고개를 쌩하니 돌리며 계속 우리 곁을 맴돌던 아이가 있었다. 누가 봐도 같이 하고 싶은 눈치인데, 자존심인지 정말 이런 건 처음이라 겁이 나는지 관심 없는 척 하지만 계속 옆에 앉았다 일어났다, 이걸로 해라 저걸로 해라 훈수를 두고 있었다.
‘하나 같이 하자~ ’하며 불러 세워 가면 몇 개를 얼굴 앞에 들이 미니 못 이기는 척 호랑이 가면을 골라 앉았다. 그런데 자기는 호랑이를 어떤 색으로 칠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내게 호랑이 사진을 보여달라 했다. 휴대폰으로 찾아 보여주니 잠깐 보다가 주황색과 검은색을 골라 자리를 잡고 앉아 누구보다 열심히 집중하며 칠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디가 검정인지 헷갈리면 다시 내게 호랑이 좀 보여달라고 하며 말이다.
인도계 가족처럼 보이는 아이들이 지나가다 우리를 보고 관심을 가졌다. 청소년이거나 갓 성인이 된 것 같은 사람도 있었고, 야무지게 생긴 3~4살 되어 보이는 아이도 있었다. 옆에 재촉하는 다른 어른들이 있었는데, 결국 길을 가다 돌아와 우리의 활동에 참여했다.
미술학원인인가 싶은 순간이었다. ㅋㅋ
10명가량 되는 아이들이 둘러앉아 색칠을 하고 스티커를 붙이고 무슨 색 주세요, 저도 스티커 주세요를 외치며 여기 도와주면 저기서 도와달라고 하고... 시시해할 것 같아 보이는 큰 아이도 가면 하나 받아 들고 앉더니 옆에서 누가 뭐라고 하던 끝까지 집중하는 걸 보니 귀엽기도 하고 짠하기도 했다.
집중하는 아이들과 가면을 쓰고 웃으며 장난치는 아이들, 이것저것 질문하며 종알대는 아이들, 멀리서 보면 이상한 광경이려나 싶지만 이 안에서는 알록달록 다채롭게 기뻤다.
뭘 아는 건지 나도 달라 칭얼거리며 다른 아이들의 가면에 손을 뻗던 가장 어린 아기에게도 가면을 씌워주니 좋아했다.
다공에서 거의 두 시간 정도를 머물렀다. 아이들을 찾아다니던 시간도 있었지만,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서 만든 시간만 한 시간 반은 되었다. 근처에 있던 아이들까지 모두 가면을 만든 후에야 활동이 마무리되었다. 원래는 가면을 만들고 책을 읽어주려고 했는데, 먼저 만든 아이들은 훌쩍 가버리고 만들고 있는 아이들은 계속 뭔가를 요구하며 우리를 불러대니 도무지 읽어줄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레단에도 가야 하는지라 다음을 기약하며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레단에 가니 3시 정도였다. 습하고 더워서 땀이 줄줄 났다. 아이들도 안 보이는 걸 보니 낮시간이라 더워서 어딘가 들어가 있나 싶었다. 우리도 잠깐 땀 좀 식힐 겸 아이스크림이나 하나 먹자! 하며 가게에 들어갔다. 가게에 들어가 앉아 무심코 밖을 봤는데 유리문 너머로 조그마한 아이가 보였다. 문 옆에 앉아 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얼른 아이스크림과 음료를 털어 마시고 나왔다. 아이들이 마침 가려하길래 불러 세웠다.
우리를 아는 아이들이었다. "세야마(선생님)!"하며 반기더니 오늘은 무얼 가지고 왔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새로 사 온 가면을 꺼내 보여주며 "이거 가져왔는데 같이 할래? 친구들은 어디에 있어?" 물으니 저~기 있단다. 아이가 큰 소리로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처음엔 한 명 한 명 만나러 다녀야 했는데, 이제는 아이가 아이들을 모아준다.
아이들이 모였다. 아이 한 명을 만나면 두 명 세 명 만나는 건 쉬워진다. 아지트처럼 우리가 모여 활동하곤 하는 후미진 골목이 있는데, 이 날에도 그곳으로 갔다. 통행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아이들과 함께 길에 앉아 활동하기가 수월하다.
가방을 뒤적이며 가면과 매직을 꺼내는 나를 모든 아이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선물 보따리를 푸는 기분이 들었다.
레단에서도 여러 아이들이 우리를 만나고 갔다. 준비해 간 가면들을 거의 다 썼다. 알록달록한 가면을 쓰고 돌아가는 발걸음이 모두 기뻐 보였다.
우리가 알던 아이들이 많이 왔다 갔다. 그중에 작고 표정이 별로 없어서 유독 기억에 남았던 아이가 한 명 있었는데, 표정은 거의 없지만 '나도 하고 싶다.'는 의사표현은 확실했다. 짧은 다리를 접어 앉고 작고 끈적한 손으로 매직을 쥐고 이리저리 마구 칠하는 모습이 참 귀여웠지만, 우리의 시선이 계속 멈춘 곳은 아이의 다리였다.
다리가 온통 상처 투성이었다. 고름이 고여있고, 딱지가 찢어져 곳곳에 피가 나고 있었다. 간지러운지 아이는 까맣게 때가 낀 손톱으로 상처를 계속 긁었고, 딱지가 떨어지며 또다시 피가 났다.
보는 내가 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아파 보이는데 아이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나만 이게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보다. E가 이 아이는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 게 아니냐고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길에서 지내는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서 소독을 하고 연고를 발라준들, 이게 나을까? 어차피 또 이렇게 될 텐데? 꼬질한 길거리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면 받아주긴 할까? 이 애가 우리를 따라 병원에 갈까? 데리고 가다가 유괴로 오해받으면?(요즘 그런 문제가 많다고 하니...)
아이가 가면을 만드는 시간 내내 별 생각을 다 하며 갈등했다. 갈등 끝에 '그래, 그냥 오늘은 병원에 데려가보자.'로 결론을 내렸다. 상처 치료가 될지, 이후에 또 이렇게 될지 그것 까지는 알 수 없어도 당장 내 마음이 아파서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같이 있었던 언니에게 동생을 병원에 데려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아이는 대뜸 '돈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돈은 우리가 내주겠다고 부모님이나 보호자가 근처에 있으면 허락을 받고 병원에 데려가자고 하니 아이는 조금 고민을 하다가 근처에 큰 언니가 있다며 가서 허락을 받겠다고 했다.
근처에 구걸하고 있던 큰 언니에게 가서 허락을 받고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큰 언니는 20대 정도 되어 보이는데, 대체 어떻게 첫째와 막내 나이 차이가 이렇게 많이 날 수 있는 건지, 진짜 가족이긴 한 건지 의문이 들었지만 묻진 못했다. 어디에 병원이 있는지도 몰라서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작은 의원 같은 곳을 찾아갔다. 미얀마에서 병원은 매우 비싸기 때문에 동네 작은 의원을 주로 간다. 우리가 간 곳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아이 이름을 적고 접수를 하고 밖에 앉아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책도 읽어주고 Super book 영상도 보여줬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다. 지금까지 별말 없이 무표정으로 잘 앉아 있던 아이가 갑자기 엄청난 힘으로 떼를 쓰고 울기 시작했다.
맙소사... 너도 병원을 아는 거니?
정말 진땀이 났다. 달래고 달래다 결국 내가 번쩍 안고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의사로 보이는 사람이 길거리에서 만난 아이냐며 이런 아이를 봐주기엔 다른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안 된다고 했다. 아니... 길거리 아이라고 돈 안 받는 것도 아니고 우리도 순서를 기다렸는데 왜 안 봐주는지?
대충 보더니 어차피 이런 아이들은 치료해 줘도 상처가 또 나고 반복될 거라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옆에 있던 어떤 아줌마는 E에게 “어디서 이런 애들을 데리고 온 거야 정말!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니?!"라고 말하며 못 말리겠다는 듯 혀를 차며 우리를 바라봤다. 나는 E랑 아는 아줌마인가 했는데 E도 처음 보는 아줌마였고 매우 당황했다고 했다.
결국 우리는 금방 그곳을 나왔다. 아니 약간은 쫓겨났다. 처방이라고 써준 종이를 들고 옆에 있는 약국에 갔다. 거즈와 소독약, 연고, 먹는 약을 주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발라줘야 할 것 같아서 라텍스 장갑도 몇 장 샀다.
아직 눈물이 그렁그렁한 아이에게 장갑을 끼고 다가가니 아이는 또 자지러졌다.
아기상어 노래를 틀어주며 유치원 선생님이었을 때를 생각하며 혼신의 힘을 다 해 아이의 주의를 끌고 E에게 아이를 꽉 잡으라고 한 뒤 어찌저찌 소독약을 부어 소독을 했다. 하도 움직이는 바람에 바닥에 콸콸 흘려서 소독약 반통을 순식간에 다 써버렸다.
온몸에서 땀이 났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우리를 쳐다봤다. 소리만 들으면 우리가 애한테 해코지하는 줄 알았을 거다...
결국 약은 내가 못 발라주고 아이 언니가 발라주었다. 언니가 이건 안 아픈 거라고 몇 번을 이야기하며 보여주니 좀 믿을만한지 움찔움찔 눈물을 닦으며 약을 발랐다.
시간을 보니 6시였다. 아이는 엄청나게 울었고, 언니는 우리를 도와준다며 동생을 열심히 붙잡고 있었으니 배가 고프겠다 싶었다. 근처에 보니 음식점이 하나 있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메뉴 중에 아이들이 먹겠다고 한 볶음밥을 시켜주고 음식이 나오는 사이 언니에게 약 설명을 해줬다. 씻고 상처에 소독약 뿌리고 약을 발라주라고. 먹는 약은 밥을 먹고 눈금만큼만 담아서 주라고 했다. 아이에게 여러 번 되물으며 이해했는지 확인했다. 혹시나 소독약을 먹이거나 먹는 약을 바를까 봐 걱정되었다. 주문한 볶음밥이 나왔고 아이들이 먹기 시작하는 걸 보고 인사를 했다. “다음에 또 보자!” 아이들은 손을 흔들며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돌아가는 길에 온몸이 축 처졌다. 하루가 길었고 막판에 아주 스펙터클 했다. 아이를 병원에 데려갔지만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근본적인 치료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그 상처들은 계속 덧나고 새로 생길 것이다. 그런 상처는 길거리 아이들에게 아주 흔하다.
정말 얇은 일이다. 아이들의 근본적인 문제에는 접근은커녕 잘 알지도 못하고 현상 주위를 맴돌며 어쩌다 짬이 나면 아이들을 만나 책을 읽어주거나 만들기 활동을 하고 또 어쩌다 병원에 데려가는 것이 전부다. 의원에서 만난 의사와 아줌마처럼 이게 무슨 소용이냐고 묻는다면 대단하게 할 말이 없다. 그냥 상처가 나고 곪아 터져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길거리 아이들에게 잠깐이라도 아이다운 천진난만한 시간과 약간의 돌봄의 경험을 선물하고 싶을 뿐이다.
많지는 않아도 우리를 응원해 주는 소중한 사람들도 있음을 기억한다. 그 일은 어떠냐 물어봐주고 헤어지는 길에 별건 아니라며 꺼내 주던 물품들과 책값 하라며 쥐어주던 그 몇몇의 마음들에 '결과보고입니다!'하고 내세울만한 것은 딱히 없지만 '과정 보고' 차원에서 이렇게 근근이 글로 남긴다.
보고 계신다면, 오늘의 글은 이 일을 응원해 주시는 감사하고 소중한 당신께 선물하고 싶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