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본적 없어 몰랐을 뿐 사랑이 필요 없는 아이는 없다

❀tiny mini flowers❀ 서른 번째 이야기

by Autumnlim

레단으로 향했다. 외부에서 진행된 세미나가 레단 근처여서 E에게 끝나고 조금만 시간을 내 달라고 했다. 요즘 E는 아주 바빠서 시간 있냐고 물어보는 것도 미안하다. E는 흔쾌히 함께했다.


도로 옆 길을 따라 걸어가다 보니 작고 귀여운 여자 아이를 만났다. 처음 만나는 아이였다. 아이는 길가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구걸하고 있었다. 7살쯤 되어 보였는데, 웃는 모습이 참 예뻤다.


이런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면 반응이 보통 셋 중 하나다. 쓰레기를 주우러 다니거나 놀고 있는 아이들은 보통 경계를 한다. ‘뭐지? 왜 말 걸지?‘하는 표정으로 몸을 멀직히 하며 살핀다. 구걸하는 아이들에게 말을 걸면 갑자기 슬프고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뭔갈 달라며 손을 내밀거나 과하게 환한 웃음을 보이며 결국 손을 내민다. 아이들의 슬픔과 웃음이 돈벌이가 된다는 것을 일찍히 체득해 버린 아이들이다.


그 아이는 환심을 사려는 억지웃음까지는 아니었지만 처음 만난 낯선 사람에게 겁도 없이 그렇게 예쁘게 웃어준다는 것이 좋아 보이지만은 않았다. 웃었을 때 구걸이 잘 되는 아이들은 잘 웃는다. 그래서 웃을 때 예쁜 아이들이 잘 웃어준다. 그걸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날은 부채 만들기 세트를 가지고 갔다. 우기가 한창이던 때엔 비가 계속 오고 흐려서 부채는 가져가기 좀 그랬는데, 이제 슬슬 비가 덜 오는 것 같아 부채를 선택했다.


로켓이 그려진 부채를 보여주며 같이할래? 물어보니 여전히 예쁜 미소를 띠고 좋다고 한다. 옆에 함께 쪼그려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색칠했다.



몇 살이냐 물으니 ‘한 살’이란다. 다시 물어도 한 살이라고 대답하는 걸 보니 몇 살인지 모르는 것 같다. E가 ‘한 살이면 여기 이렇게 앉아 있을 수 없는데?’라고 이야기하자 아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를 쳐다봤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 옆이라 이 아이 한 명만 얼른 하고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는데 금세 아이들이 모였다. 처음엔 한 두 명 정도 더 오길래 그래 이 아이들까지만 하고 가야지 하며 길가에 최대한 구겨져 쪼그려 앉았는데 무릎이 박살 날 것만 같았다. 퇴근하고 바로 나온지라 배낭 무게도 있고 십분 이상 쪼그려 앉아 있으면 온 다리가 다 아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절절 매고 있다가 에라이! 그냥 나도 같이 앉자! 하고 길바닥에 철퍼덕 앉았다. 이렇게 시멘트 바닥에 앉은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생각도 안 난다. 어릴 때나 이렇게 앉아 놀았겠지 싶다.


바지야 빨면 되지! 마음 편하게 먹고 털썩 앉아 버리니 몸도 편해졌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 가에 우리 집 안방 마냥 아이 두 명과 가부좌를 틀고 앉아 신나게 부채를 색칠하며 이야기 나눴다.


앉아서 아이들과 낄낄대고 있는데 남편과 지인의 어디냐는 카톡이 거의 동시에 와서 깜짝 놀랐다. 설마 나를 봤나…? 길바닥에 앉아 있는 나를 보면 남편이 싫어하겠다 싶어 움찔했고, 그렇게 가깝지 않은 지인이 날 이상하게 보고 있는 걸까 싶어 당황했다. 몇 마디 해보니 다른 용건으로 연락한 거라는 것을 알게 돼서 다시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봐도 내가 너무 꼬질해서 좀 당황했다…


아무튼 이 몇 명만 하고 진짜 다음 장소로 가려고 했는데 소문을 들은 아이들이 더 몰려들었다. 하다 보니 이제는 우리가 앉아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는 인원을 넘어서는 것 같아 길 안쪽으로 아이들을 앉혔다. 정신없이 정리하고 나눠주다 보니 어느 순간 처음 만났던 아이가 없어졌다. 주위를 살펴보니 구걸하는데 방해가 된다 생각했는지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구걸을 하고 있었다. 혼자 오도카니 앉아 부채질을 하고 있는 아이가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너무 예뻤다.



아이들이 계속 모이더니 여섯 명까지 늘어났다. 길 안쪽에 쪼르르 앉혀 놓으니 귀여운 콩알들 같았다. 아이들은 벽돌 한 두 장 정도 높이의 경계석을 책상 삼아 열심히 부채를 꾸몄다.



E가 아이 중 한 명에게 이름을 물었다. 아이는 대답을 하지 않고 E를 빤히 쳐다봤다. 종종 보던 아이였는데 언제나 표정이 없다. 다시 물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다른 아이들에게 물어도 잘 모른단다. 이름이 없는 건 아닐 텐데, 7-8살은 족히 되어 보이는 아이가 본인 이름도 말할 줄 모른다니 당황스러웠다.


이 날따라 자기 나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아이들을 만났다. ‘나’라는 윤곽의 초석이라 여겨지는 이름과 나이가 당연하지 않은 아이들과 한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에 큰 이질감이 느껴졌다.


미얀마를 다니다 보면 생일을 모르는 아이들이 정말 많다. 나의 시작을 알지 못하는 거다. 생일 축하라는 것을 받아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아이들이 실제로 존재할뿐만 아니라 아주 많다. 아이가 어려서 모르나 싶어 부모에게 물어도 몇 살쯤 됐을 거다, 언제쯤 태어났을 거다 짐작할 뿐이다. 그 출생을 기억할 부모조차 없는 경우도 많다.



얼추 색칠하기가 끝나가길래 책을 꺼냈다. 다 끝내지 못한 아이도 이야기가 흥미로웠는지 펜을 든 채로 집중하기 시작했다. 책을 읽어주는 것이 우리의 주 목표 활동인데 막상 이 시간이 되면 한국인인 나는 할 것 없이 주위만 둘러보게 된다. 이 때도 나는 다른 아이들은 없나 주위를 살피고 있는데 혼자 자리를 옮겨 앉아 있었던 이날 처음 만났던 아이가 보였다.


아이는 우리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그 작은 손으로 이쪽으로 오라고 까딱까딱 손짓을 했다. 나도 입모양과 손짓으로 네가 이리로 오라고 했더니 아이는 주위를 살폈다. 그러다 한 곳을 향해 멈칫하고는 그쪽을 향해 조용히 손가락질하며 자기는 갈 수 없다고 우리 보고 오라고 했다. 말은 오가지 않고 입모양과 표정, 손짓으로만 소통했지만 대화가 명료하게 잘 됐다. 그만큼 야무지고 똑똑한 아이였다. 보아하니 누군가 그 아이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까도 우리와 계속 있지 못하고 자리를 옮겨 구걸을 이어갔나 보다.


E가 한창 책을 읽어주고 있던 터라 나 혼자 아이에게 갔다. 겁도 없이 책을 한 권 꺼내 들고 아이 옆에 쪼그려 앉았다. 천천히 읽을 수는 있지만 아이를 집중시킬 만큼 유창하게 스토리 텔링할 언어 실력이 못 돼서 괜히 그림을 가리키며 이건 뭐야? 무슨 색이야? 묻기 시작했다.


자기 나이도 모르던 이 아이는 색깔도 잘 알지 못했다. 파란색도 초록색도 빨간색도 아이는 머뭇거리며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이 아이를 지켜보고 있는 그 사람은 아이에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다보다.


아이들에게 책을 다 읽어준 E가 구세주처럼 우리에게 다가왔다. 아이는 다가오는 E를 슬쩍 보더니 책을 살짝 빼서 E에게 건네주었다. 역시 나랑 읽는 건 재미없었구나… 미안하다…ㅋㅋㅋ



재미나게 읽어주는 E의 솜씨에 아이는 집중했다.


처음 본 아이였는데 물어보니 레단에 자주 나온다고 한다. 역시나 학교는 안 다니고 말이다. 우리가 자주 못 나온 사이에 아이들이 좀 바뀐 것 같기도 하다. 웃는 모습이 참 사랑스럽고 예뻤다. 이렇게 예쁜 웃음을 구걸하는데 쓰고 있다니 아깝고 슬펐다.


얼마 전 내 생일이었다. 남편과 근사한 저녁을 먹고 여기저기에서 축하 메시지를 받았다. 엄마는 매년 나를 낳을 때 더워 죽을 뻔했다는 이야기를 해주신다. 내가 태어났을 때 이야기, 나를 키울 때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는 어릴 때는 이런 아이였구나, 그때부터 이랬구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언젠가 맞이할 나의 죽음도 최소한 내 남편과 자식은 기억해주겠지 싶다. 역사에 남지는 못해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남아 있을 것이란 걸 당연히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당연한 것이 아닌지 길 위의 아이들을 보며 알게 된다.


얼마 전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람의 소식을 들었다. 일면식도 없는 분이지만, 충격이 컸다. 어쩌면 내 주위에도 외롭고 힘든 사람이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을 알던 분이 가슴 아파하시며 좀 더 챙길걸 아쉬워하셨다.


길 위의 아이들 생각이 났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만 같다. 이름도, 나이도 없는 아이들을 누가 그렇게 찾을까 싶다. 계속 생각하다 보니 이 아이들은 따뜻한 포옹과 사랑을 알까 하는 생각까지 이어졌다. 종종 빈민가 아이들을 만나면 이유 없이 앵기는 아이들이 있다. 괜히 내게 와서 웃어 주고 나를 만지고 안아달라고 하는 아이들이 꽤나 많다. 처음엔 이상한 애들인가? 싶었는데, 외로워서 그렇다고, 자신에게 친절히 대해주는 어른이 없어서 조금이라도 친절과 사랑을 베풀면 그렇게 앵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것을 알고 난 후부터는 최대한 받아주려고 했던 것 같다.


한 번은 빈민가 아이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단기로 왔던 한국인 팀과 신나는 시간을 보내고 그들에게 굿바이 인사를 하는 인터뷰였는데, 무뚝뚝해 보이는 7살 배기 남자아이가 무뚝뚝하게 이야기를 하다가 울컥하면서 커다란 눈에 고인 눈물을 떨어뜨리지 않으려 애쓰며 '또 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휩쓸려 버려 한동안 힘들었었다. 그 아이의 가정 상황을 나중에 들었는데, 집에는 제대로 된 어른이 한 명도 없었다. 엄마는 정신병이 있고 아빠는 도망갔으며 할아버지가 국수를 팔아 간신히 키우고 있는 아이였다.


잠깐 왔다가는 외국인들과의 시간이 뭐 그렇게 의미가 있을까 싶었는데, 평생 관심과 사랑이 고프게 자라온 아이들에겐 그 찰나마저도 감동이고 감격이라는 것을 그날 보았다. 때로는 그런 불우한 상황 속에서도 당연히 여기고 묵묵히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면 괜찮은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지만 바랄 줄 안다는 것은 받아봤다는 뜻이다.


그 속은 들여다보려 해도 감히 다 보이지 않는다. 받아본 적이 없어 바랄 줄 몰랐던 것일 뿐, 사랑과 돌봄이 필요 없는 아이들은 없다.



같은 세상을 살아가지만 나의 당연함이 너의 당연함이 아니라는 것을 배워가는 요즘이다. 어쩌다 보니 길거리의 아이들에게서도,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배우고 있다. 아직 나는 내가 살아온 인생이 전부인 것만 같아 나와 다른 것이 이해가 잘 안 가고 어떤 때는 짜증이 먼저 불쑥 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의 이 미성숙하고 얕은 모습에 자괴감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부딪히며 조금씩 지경을 넓혀가다 보면 더 많은 사람들을 안아줄 수 있는 품을 가질 수 있겠지 싶다.


다음에 아이들을 만나면 안아줘야겠다. 엉성한 포옹 말고 나의 마음이 전해질만큼 힘을 다 해서. 길거리 아이들과 신체적 접촉을 하는 것은 사실 꽤나 큰 용기와 각오가 필요하다. 정말 지저분하기 때문에 어떤 병균이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돈 벌어와라 시키고 길바닥에 앉혀 눈치나 보게 만드는 어른이 아니라 너를 안아주고 기쁘게 해 주려고 노력하는 어른도 있다는 걸 한 번쯤은 경험시켜주고 싶다. 이 아이들의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한 번은 진한 포옹과 사랑을 받아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