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ny mini flowers❀ 스물여덟 번째 이야기
매일 보고 듣고 일하는 것들이 온통 우울하고 슬픈 것들뿐이라 글을 쓰기가 싫었다. 무거운 글을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힘들 테니까. 내 글을 가장 많이 읽는 사람은 나일거고 말이다.
지진피해 지역을 다니며 아이들을 만났다. 어디를 가든 비릿한 물냄새, 악취가 났다. 배는 흔들렸고 집이라 불렸던 것은 잘못 밟으면 부서질까 무서웠다.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절망스러운지, 그들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 보고 듣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상황을 현실로 살아가는 그들 앞에서 잠깐 와서 고작 보고 듣는 정도인 내가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미안한 그런 시간들이었다.
대부분 출장을 가면 일정 내내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 여유가 없는데, 한 번은 다른 메인 일정을 서포트는 하는 일을 맡아 여유가 좀 있었다.
그러다 보니 보이는 것이 더 많았고,
아이들과 잠시 눈 마주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몇 달간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힘들다 힘들다 하고 싶지 않았지만 정말 힘들었다. 이쯤 되면 괜찮아져야 하는데 싶은 시간들이 여러 번 지났음에도 점점 더 가라앉는 내가 야속했다. 거의 매주 다른 지역에 다니며 집 떠나 있는 것도 체력적으로 어려웠다. 면역반응인 건지 손에 수포가 올라오고 집에 가면 가라앉고 나가면 올라오고를 반복하고 있다.
예전만큼 열정적이지 못하고 예전만큼 긍휼한 마음이 들지 않는 나를 보며 자괴감에 빠졌다.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이 지겨웠고 열악한 환경에 내가 잠깐이라도 있는 것이 점점 더 힘들었다. 이 일을 계속하다 보면 익숙해져서 점점 아무렇지 않아 질 줄 알았는데 더 힘들고 더 고통스러워지는 나를 보며 대체 왜 이럴까 속상했다. 길거리 아이들을 만나는 것도 더 이상 내게 기쁨이 되지 못했다. 그 답 없어 보이는 인생들을 만나는 것이 나도 그쪽으로 끌어당겨지는 느낌이었다.
한편으로는 죄책감이 가득했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그들은 개도국의 가난한 동네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발생하는 우연이라기엔 너무나 큰 격차와 내가 느끼는 이 이질감들에 부끄러웠다. 나는 하룻밤도 이렇게 지낼 수 없는데 왜 그들은 이렇게 평생 살아도 되는가. 3개월 전 정신 차리자는 기합이 가득한 글을 썼었는데, 결심한 대로 몸과 마음이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지난 3개월간 나는 여전히 고통스러웠다.
돌아보니 이게 바로 인도적 지원팀에서 이야기한 재난상황 트라우마라는 건가 싶기도 하다. 내 이야기를 듣고 상담을 권한 분도 계셨다. 특히 만달레이가 내게 의미 있는 지역이라는 것도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어떤 기관에서는 재난 발생 지역에 연이 있는 직원은 트라우마 관리 차원에서 일부러 투입하지 않는다는 얘기도 들었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시간들을 한참 보내다가 이제야 진짜 정신을 차리고 힘을 내고 있다. 두 번의 작은 대화들이 나의 긴장된 생각과 마음을 조금씩 깨어주었다.
한 달 전에 현지인 팀장님과 직원 한 명이 한국에 교육을 다녀왔었다. 팀장님께 한국은 어땠냐 물어보니 본인은 지금까지 developing country들만 다녔었는데 처음으로 developed country에 다녀온 거라며 확실히 다르다는 얘기를 했다. 길이 너무나 깨끗하고 대중교통 시스템이 잘 되어 있고 자동화되어 있는 것들이 많고... 여러 이야기 끝에 '왜 한국인들이 그렇게 깔끔한 것에 예민한지 알게 됐어'라는 말을 했다. 한국을 보고 오니 한국 사람들이 미얀마에서 사는 것이 왜 힘든지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문득 '그래! 나는 태어난 이래로 우리나라가 developed country가 아니었던 적이 없었어!!' 하는 약간의 억울함과 해방감이 섞인 미묘한 쾌감을 느꼈다.
평생을 developed country에서 살아온 사람이 developing country에 정착해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게 맞다는 것을 깨달았다. (ㅋㅋㅋ)
요즘 E도 나도 출장이 잦아지면서 서로 겹쳐서 만날 일이 없었다. 늘 가장 가깝게 있던 사이었는데 각자 할 수 있는 것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함께할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그러다 한 번 겹치는 출장에서 일과 이후 시간에 따로 만나 이야기할 시간이 있었다. E에게 이런저런 내가 느끼는 죄책감과 미안함에 대해 고해성사처럼 이야기했는데, E가 "고마워요"라고 했다.
지금까지 내가 한 말들을 잘 이해를 못 한 건가? 머릿속으로 물음표가 뜨며 "엥, 왜?"라고 물어보니 "외국인이 이렇게 우리나라를 위해 생각해 주고 도와주는 게 정말 고마워요."라는 대답을 들었다.
'아... 맞네. 나 미얀마 사람 아니지.' 너무나 당연한 거라 어이가 없지만 이 또한 정말 문득! 깨달았다.
이 두 사건을 겪으며 내가 너무 과하게 몰입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긍정적인 의미의 몰입이 아닌 과한 몰입.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나의 삶과 미얀마를 구분하지 못해 왔던 것 같다. 최선을 다 한다는 것이 현지인들만큼 살아내고 어떤 상황에서도 모든 일을 거뜬하게 해내야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가스라이팅을 하며 나를 갈아 넣고 돌보지 않았음을 반성했다.
저번 달에는 한국에 잠시 다녀왔다. 병원 예약을 더 미룰 수가 없어서 지진 전에 비행기표를 사뒀던 거였는데 날짜가 다가오니 이런 상황에서 자리를 비우는 것이 맞을까 부담스러웠다. 아무도 부담을 주지 않는데 왜 혼자 세상 부담 다 지고 사는지 참 어이없지만 아무튼 그런 마음이었다.
병원이 메인이었던지라 그냥 갔다. 그리고 좀 분리되고 싶었다. 내가 살던 내 나라, 엄마아빠 집에 가서 익숙한 집밥을 먹고 싶었다.
한국은 너무 좋았다. 하루는 친구들과 원래 가려던 곳에 웨이팅이 너무 길어서 길을 걷다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밥을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밥을 먹고 길을 걷다가 후식으로 츄로스도 먹었다. 깜깜한 저녁이었는데 빽빽한 가로등 덕분에 길은 환하고 갖춰 입은 멀끔한 사람들이 하하 호호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길을 활보하고 츄로스는 말도 안 되게 맛있고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꽃향기가 나는데 울컥했다. 정말로 눈물이 삐쭉 나왔다. 이렇게 평화롭고 아름다울 수가.
이 밤에 이렇게 안전하고 눈을 크게 뜨고 봐도 길은 깨끗하고 숨을 깊게 쉬어도 쓰레기 냄새가 안 날 수 있다니. 한국에 살 때는 정말 별것도 아니었던 당연한 것들이 이제는 특별한 것이 되었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길이 그렇게 가기 싫었다. 이렇게 돌아가기 싫은 건 처음이었다.
존경하는 분이 내게 해주신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내가 좋아서 사랑하는 것은 모두가 할 수 있지만 내가 싫을 때도 사랑해 주는 것이 진짜 사랑이라고. 부부 사이,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진짜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싫어도 맘에 들지 않는 것이 보여도 사랑해 주고 곁에 있어 주는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려 애쓰는 진짜 사랑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며 내게 위로와 응원을 건네주셨었다.
이 나라에 산지 5년이 꽉 찼다. 그리고 늘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했다. 5년이면 권태기 한 번 올 법한 때이긴 하다. 끝이 없는 가난과 고통, 질병과 재난이 지겹고 힘들었지만 더욱 사랑하기 위한 일종의 과정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성장통 없는 성장이 없듯, 나의 이 고통의 끝에 성장이 있기를, 깊은 사랑이 있기를 기대한다.
이 나라에도 끝 없어 보이는 이 고통 끝에 반드시 밝고 안전하고 평화로운 날이 오기를